• [장준환의 진짜 미국 AI 스토리] (1) 미국은 왜 사막에 AI 제국을 짓고 있나

    입력 : 2026.08.18 17:52:56

  •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사흘 전, 나는 뉴욕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피닉스로 날아갔다. “애리조나에 자원개발 투자 건이 있습니다.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철도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한 파트너의 전화 한 통이 시작이었다. 이 일은 전화로 끝낼 사안이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피닉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프라이빗 웰스, 투자, 부동산, 기업 구조 자문을 해왔다. 미국을 바깥에서 구경한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 안에서 일해온 셈이다. 동시에 한국 기업과 자본이 미국을 상대하며 무엇을 기대하고, 또 무엇을 오해하는지도 가까이에서 보았다. 이 글은 미국을 비판하거나 한국을 감싸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다시 짜고 있는지, 그 안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묻기 위한 글이다.

    피닉스는 처음이었다. 공항 이름은 스카이 하버, ‘하늘의 항구’였다. 렌터카센터로 가는 트램은 한참을 달렸다. 터미널과 렌터카 시설 사이로 광대한 부지와 인프라가 펼쳐졌다. 지금의 수요가 아니라 앞으로 밀려올 사람과 자본, 산업을 미리 계산해둔 도시처럼 보였다. 사막 위에서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전력망,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AI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물리적인 산업인지 그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AI를 여전히 챗GPT 같은 화면 속 기술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주는 소프트웨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도구쯤으로 여긴다.

    챗봇 뒤에 숨은 땅과 전기
    텍사스에 건설 중인 오픈AI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위한 데이터센터 <사진 오픈AI>
    텍사스에 건설 중인 오픈AI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위한 데이터센터 <사진 오픈AI>

    미국 현장에서 본 AI는 달랐다. AI는 클라우드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력망과 반도체 공장, 데이터센터 냉각 설비, 자원 개발 프로젝트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가 챗GPT의 성능에 감탄하는 동안 미국은 그것을 24시간 돌릴 땅과 전기, 칩을 확보하고 있었다. AI를 소프트웨어산업으로만 보는 나라는 이미 한 박자 늦었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영리한 알고리즘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그 알고리즘이 작동할 인프라를 장악한 나라일 수 있다. AI가 커질수록 더 많은 칩과 데이터센터,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가 끊기면 인공지능은 멈추고, 칩이 없으면 어떤 모델도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이 피닉스 사막에서 본 AI 전쟁의 민낯이었다. 내가 살펴본 프로젝트도 한때 중국 자본과 연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에너지와 인프라에 직결되는 사업을 중국 자본에 맡기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갈등은 이미 관세를 주고받는 무역 전쟁을 넘어 AI 패권과 공급망, 국가 안보의 문제로 이동했다. 미국이 경계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유출이 아니다. 중국이 미래 산업의 운영 체제 자체를 장악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갑자기 보호무역 국가가 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과거 강대국은 석유와 항만, 철도를 장악했다. 이제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전력망을 장악한다. AI 패권은 누가 먼저 챗봇을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전기와 칩, 땅을 쥐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설계와 클라우드, 빅테크, 달러 자본시장, 글로벌 동맹망을 갖고 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오픈AI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새 산업 질서의 표준을 만드는 플레이어다. 그렇다고 중국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에는 거대한 시장과 제조 역량, 국가 주도 투자, 기술 자립 의지가 있다. 미국의 규제는 중국의 속도를 늦추지만 동시에 자립을 재촉한다. 그래서 이 경쟁은 어느 날 종전 선언으로 끝나기보다 장기간 관리되는 대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제조업 재건과 첨단산업 투자를 정당화하고, 중국은 미국의 압박을 기술 자립과 국가 동원의 근거로 삼는다.

    따라가는 동맹에서 설계하는 동맹으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라는 선택에 갇힌다. 안보의 축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성숙한 동맹은 단순히 따라가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관계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넘어 “미국이 설계하는 AI 질서에서 어떤 핵심 파트너가 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K’라는 이름에 취해 있었다. K-팝, K-드라마, K-푸드, K-아트의 이름은 화려해졌지만, 그 이름이 올라탄 플랫폼과 자본의 규칙은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은 우리의 것인데 유통망과 가격표, 평가 기준이 남의 것이라면 그것을 온전한 성공이라 부르기 어렵다. AI 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경계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짜는 질서를 읽고 더 높은 단계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원전과 전력 인프라 기술, 조선과 건설, 엔지니어링 역량이 있다. AI 시대에는 이 모든 산업이 다시 전략 자산이 된다. 데이터센터가 늘면 전력이 필요하고, 전력 수요가 커지면 에너지와 인프라의 가치도 높아진다. 미국이 사막에 짓는 AI 제국의 약점이 전력망과 데이터센터라면,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원전·건설 엔지니어링을 묶어 그 하드웨어 지도의 뼈대를 놓는 동맹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피닉스에서 본 것은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이길 것인가의 답이 아니었다. 미국이 미래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있다는 사실이었다. AI라는 혁신의 언어 아래에는 땅과 전기, 물, 칩, 자본, 법, 안보가 깔려 있다. 한국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아니다. 충분한 역량을 갖고도 낮은 단계의 공급자로 머무는 일이다. AI 패권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 사이 누군가는 표준을 만들고, 누군가는 인프라를 장악하며, 누군가는 남이 만든 규칙 안에서 성실한 공급자로 남는다. 한국은 그 질서의 바깥에서 불평할 나라가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미래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기술이 놓일 판을 설계하는 나라의 것이다.

    장준환 변호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자 문화경제 전략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대학원·로스쿨을 마친 뒤, 뉴욕을 기반으로 프라이빗 웰스, 투자, 부동산, 기업 구조 자문을 해왔다. 〈장준환의 진짜 미국 스토리〉에서는 미국이 먼저 겪는 AI 시대의 산업·교육·부·취업 변화를 한국 독자에게 전한다. 저서로 <K가 죽어야 K가 산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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