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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환 칼럼] 소.부.장. 축적의 시간
입력 : 2026.07.27 17: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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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자립에 머물지 말고
ASML 노광장비 같은
글로벌 치트키 제품 나와야
눈앞의 성과보다는
장기적 안목의 지원책 필요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반도체주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주목하는 장비가 있다. 바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다.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 위에 새기는 게 노광장비인데, AI 반도체와 HBM(고대역폭) 메모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노광장비가 바로 EUV다. 부품 수는 무려 10만 개. 대당 가격은 한화로 약 5000억원에 달한다. 개발 기간만 20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인류가 만들고 현존하는 기계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장비를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본사를 둔 ASML이 사실상 글로벌 시장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과 같은 글로벌 메이저들이 모두 이 회사의 고객이다.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공정이 갈수록 고도화되면서 ASML처럼 독보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공급망 생태계를 쥐락펴락하는 기업들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 칩 제조업체들이 수백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벌어들이는 만큼 소부장 설비에 재투자하는 구조는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한국 산업계에 소재. 부품. 장비. 일명 소.부.장 산업이 본격 등장한 건 지난 2019년 일본이 반도체 수출 규제를 단행했을 때다. 7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성과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용 고순도 불화수소의 국산화라든지 포토레지스트, CMP슬러리(연마제)와 같은 핵심 소재의 국산 공급이 크게 확대됐다. 모든 분야가 자립한 건 아니지만 과거보다 공급망도 안정되고 기술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만의 독자적인 치트키 기술이나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한 기업은 아쉽게도 눈에 띄질 않는 다. 소.부.장은 기술 하나 개발하는 데 길게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소재나 장비를 개발해도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채택되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불가능하다. 반도체 공정은 수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조회사들은 이미 검증된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성과나 전략, 지원보다는 10년, 20년을 내다본 호흡이 긴 산업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빗대 한때 소.부.장 독립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겠지만, 그리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 길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소.부.장은 반짝 산업이 아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지원 정책이 달라지는 유행 산업은 더더욱 아니다. 신소재, 화학, 정밀기계 등 기초공학 분야의 인재를 꾸준하게 양성하고 설계(팹리스), 제조, 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클러스터 인프라 구축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여야 정치권도 밤낮 없이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반도체 특별법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서 전력망 확충, 세액공제, R&D 지원을 차질 없이 지원해야 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장비-재료 시장은 전년보다 7%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중국의 본토 시장 성장률은 무려 13%로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걸고 설계, 제조, 장비, 소재 전 분야에서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선언한 게 2014년이다. 미국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소리 없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