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은수의 인문학 산책] (59) 독학(獨學)이라는 세계

    입력 : 2026.07.16 10: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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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 살까지는 생계를 위해 필요한 돈을 버는 이외의 시간은 오직 혼자서 책을 읽으며 공부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눈팔지 않고 공부할 것이다. 스무 살, 이제 그곳으로 나는 배를 타고 떠난다. 저녁의 광장에 희미한 불이 켜지는 시간이면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펼칠 것이다.”

    배수아의 장편소설 <독학자>(레제 펴냄)에 나오는 말이다. 지적 호기심과 학문 탐구에 열정을 품고 대학에 갓 입학한 ‘나’는 정치 구호로 뒤덮인 데다 권위주의가 만연한 대학에 실망하고 방황한다. 그러던 중 수업에서 만난 친구 ‘S’, 그를 통해 소개받은 ‘P교수’와 어울리면서 지성의 세계에 깊이 매혹된다. P교수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나’는 스스로 대학을 세워서 자유롭게 공부하는 독학의 길을 걷기로 한다.독학자로 살기 위해 나는 완벽한 ‘워라밸’을 꿈꾼다. “노동이 삶의 수단을 제공”하는 건 허용하지만, 그 “노동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한다. 생계를 위한 노동 시간과 앎을 위한 독서 시간을 나누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분명한 어떤 존재”가 되리라 기대한다.

    ‘나’의 실존적 결단은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다. 그가 말하는 독학엔 훼손되지 않은 진정성이 담겨 있다. 온 세상 사람이 정보 폭풍에 휘말려 주의를 상실한 이 시대에 어떻게든 영혼의 존엄을 지키려는 청년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작가 시라토리 하루히코에 따르면, 독학은 “자신으로 사는 사람만 누리는 특권”이다.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만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

    독학은 스승을 모시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걸 말한다. 옛날엔 신분 문제, 사회 환경, 경제 사정 등으로 제때 배우지 못한 이들이 독학을 택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학(夜學), 학비를 스스로 벌어 공부하는 고학(苦學), 나이 들어 공부하는 만학(晩學) 등이 독학(獨學)의 형제자매에 속한다. 그러나 야학, 고학, 만학이 선생을 모시거나 제도교육을 이용하는 반면, 독학은 책읽기를 중심으로 공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독학자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적극적 호기심을 품고, 스스로 공부의 중심에 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을 쌓아간다. 공부의 주제, 내용, 형식, 방법 등을 스스로 정하는 자기 주도 학습이라 할 수 있다. <독학이라는 세계>(클랩북스 펴냄)에서 시라토리는 독학을 스터디(Study)라고 부른다. 선생을 두고 정해진 교과를 공부하는 배움(Learn)과 달리, 스터디는 “깊이 파고드는 행위”다. ‘Study’의 어원은 ‘몰두하다, 열정을 보이다’의 뜻이다. 온 마음으로 탐구에 헌신하면서 질문을 파고들 때 쓰는 말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독학자의 시대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질문에 답해주는 기계 백과가 항상 곁에 있다. 검색한 후 여러 문서를 뒤질 필요도, 여기저기 책을 찾으러 다닐 필요도 없다. 인공지능은 세상 모든 지식을 요점만 정리해 전해주고, 에이전트를 이용하면 관련 분야의 최신 지식을 정기 보고서로 받을 수도 있다. 정보 접근성의 한계가 사라진 셈이므로, 동영상 강좌, 전자 도서관 등과 결합하면 역사상 어느 때보다 혼자 공부하기 좋아졌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자칫 독학자를 망칠 수도 있다. 긴 시간 다져온 지식을 충분히 체화해 고급 문해력을 갖추지 않으면, 인공지능 특유의 환각 현상으로 인한 오류에 빠져들 수도 있고, 모든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스며들어 있는 편향에 무차별 휘둘릴 수도 있다. 설령 그런 오류나 위험을 피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빠른 정답과 간결한 요약에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상상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빠르게 약해진다. 읽기와 쓰기는 가장 강력한 사고 도구다. 글을 직접 읽고 요약하고, 스스로 써서 표현하지 않고 생각을 단련하는 방법은 거의 없다.

    시라토리는 독학을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책을 스승으로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은 빠르나 어설픈 지식에 만족하기보다 궁금한 게 생기면 그 분야의 최상급 책들을 이정표 삼아 자기 힘으로 대답을 찾아가는 데 더 큰 만족을 둔다. 그 과정에서 가설을 세우는 힘, 꼼꼼히 조사하는 힘, 끈기 있게 추론하는 힘, 다양한 각도에서 살피는 힘 등이 몸에 쌓인다.

    생각하는 힘은 문제와 답 간의 끈질긴 모색을 통해 길러진다. 문제를 파고들며 스스로 답을 구하는 탐구 과정이 빠진 앎은 단기 정보 수집에 불과하다. 그런 건 내 안의 지식이 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휘발한다. 인공지능만 사용하고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온갖 것을 자주 묻고, 생성된 답을 많이 들어도 몸에 쌓이는 건 거의 없다.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도 자신을 강하게 하지 못한다면 헛짓일 뿐이다. 시라토리에 따르면,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건 “공부로 얻은 지식” 자체보다 “공부 과정에서 길러진 능력”이다. 시대가 변하면 지식은 유효성을 잃을 수 있으나, 능력은 내 안에 영원히 남는 까닭이다.

    독학의 출발점은 일상에서 생기는 ‘작은 의문’이다. 이런 질문은 아이 같은 호기심을 품은 마음에서 찾아온다. 그 의문을 해결하려고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생기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은 다시 새로운 책으로, 거기서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이렇게 꼬리 물고 끈질기게 파고들면, 결국 자기 안에 거대한 지식의 강이 흐르게 된다. 이것이 독학자의 공부법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지 따지지 않는다. 그런 걸 따지기 전에 그는 이미 읽고 있다. 그는 책을 도구로 쓰는 대신 그저 책을 읽고 생각을 덧대며 앎의 지평선을 늘려갈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읽지도 않는다. 어려운 책과 부딪치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려운 책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사고방식과 지식이 들어 있”기에 굳이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겁먹지 말고 일단 들이댄 후 훑어보며 설렁설렁 넘길지라도,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사고방식을 체험하고, 나름대로 그 뜻을 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독학자는 책을 깨끗이 읽지 않는다.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밑줄 긋고, 여백에 떠오르는 생각을 단어, 구절, 문장에 명확하게 정리해가면서 능동적으로 공부한다. 그 공부의 끝에는 인간다운 삶의 바탕이 되는 교양이 있다. “교양이란,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힘”이다. 그것은 지식을 삶에 적용해서 더 나은 삶을 이룩하려 할 때 우리 안에서 발현된다. 독학의 진짜 매력은 스스로 공부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번창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스승이 없어도, 학교가 없어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약속만큼 매력적인 건 없다. 박형준 부산외대 교수에 따르면, 공부는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고, 독학으로 얻은 지식은 그 사람을 “고단한 삶에서 구원할 수 있는 꿈이자 희망”(독학자의 마음)이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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