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工-工-工-商의 나라

    입력 : 2026.04.27 14:29:54

  • AI시대 격차 극복하려면
    엔지니어가 우대받는
    사회풍토 조성이 급선무
    과학자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해 국민적 관심 키우자

    채수환 기자
    채수환 기자

    2019년 개봉한 영화 ‘천문’은 조선 초기 과학자 장영실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세종대왕이다. 사대부들의 반대와 견제를 뚫고 천민 출신인 장영실을 등용해 자격루(물시계), 측우기(강우량측정), 혼천의(천체관측) 등 생소한 과학기기들을 만들어냈다. 시대를 앞서 간군주 한 명의 통찰력이 백성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게 이 영화의 테마다.

    인류와 정보통신기술(ITC)이 공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특히 AI(인공지능) 헤게 모니를 누가 잡느냐에 따라 번영과 쇠락이 갈린다. IT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 정부가 직접 나서 Sovereign(주권) AI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가장 두려운 상대는 역시 중국이다. 세계화 패러다임 속에서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글로벌 제조공장으로 성장 발판을 구축하더니, 이제는 ‘테크노 굴기’를 앞세워 미국과 대놓고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2006년 과학입국 깃발을 꽂고 R&D(연구개발)와 엔지니어 투자에 올인한 뒤 꼭 10년 만에 국제학술지 SCI(과학기술논문) 인용 건수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지금은 통계로 반영된 모든 AI 경쟁력 지표에서 미국과 치열하게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딥시크가 불과 600만 달러라는 개발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내놓자 실리콘밸리는 경악했고 미국의 빅테크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AI 경쟁력 지표에서 글로벌 7~8위권이다. 결코 낮은 위치는 아니지만, 시시각각 진화하는 AI 시대는 선두 기업이나 국가 1~2곳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이다. 구글 알파고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국수 이세돌 9단을 꺾은 게 꼭 10년 전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에는 AI국가전략도 나왔다. 하지만 발표만 요란했을 뿐,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기업이나 실적, 기술은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AI판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러도 무방한듯싶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슬로건으로 무려 100조원에 달하는 투자 청사진을 내놨다. 과학기술부장관을 17년 만에 부총리로 승격시켰고 청와대에 AI 수석을 신설하며 실천 의지도 표명했다. 가장 절실한 과제는 우수한 이과 인재들이 공대를 외면하고 의대 진학에 몰빵하는 현재 교육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오죽하면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회장이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장영실 같은 위대한 과학기술자의 얼굴을 화폐에 새기자”고 제안했을까. 내친김에 매년 4월 21일로 지정돼 있는 과학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적 관심을 불러 모으고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진짜로 존경과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종대왕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후손 임금들의 무관심과 무능력으로 조선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회구조에 함몰된 채 국권을 상실했다.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이 뒤늦게 오원철 당시 경제2수석과 과학입국의 초석을 쌓았고, 김대중 대통령이 IT 고속도로를 깔며 글로벌 10대 경제 강국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이제는 과학입국에 머물지 말고 과학 성국으로 도약해야 후손들이 배불리 밥을 먹는 나라를 만들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는 K-상품의 제품력과 마케팅으로 ‘상’의 실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이제는 ‘사농공상’이 아니라 ‘공공공상’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채수환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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