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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에 부활한 80년대 부의 상징 ‘각 그랜저’ 원조 디자인 계승… 기술 더하고 예술 입혔다
입력 : 2022.10.27 16: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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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외관이 공개된 7세대 신형 그랜저 대기 고객이 8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7월 말 3만 명이던 대기 고객은 불과 두 달 사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신차 제원을 비롯해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반응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7세대 그랜저는 올 초부터 1세대 그랜저로 알려진 ‘각 그랜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 완성차 업계에서 불고 있는 ‘레트로(복고풍)’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업계는 차 반도체 부족에 따른 출고 적체 현상이 길어지면서 차를 조금이라도 빨리 받기 위한 수요가 합쳐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취향이 고급화되면서 그랜저는 쏘나타에 이어 국민차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6년 출시된 6세대 그랜저는 기존 대비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선보이며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에서 3040세대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도로 위를 다니는 그랜저는 총 151만3057대인데 이 중 6세대는 63만4759대로 42%에 달한다. 역대 그랜저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이기도 하다.
그랜저 6세대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승용 부문 판매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과거에도 판매량 부문에서 그랜저가 1위를 차지한 적은 있었지만 최근 추세처럼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린 적은 없었다. 국민차가 쏘나타에서 그랜저로 확실히 바뀐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그랜저는 올해도 베스트셀링카에 오를 확률이 높다. 지난 8월 판매량은 4893대로 7월 대비 36%가 줄었는데 이는 아산 공장에서 아이오닉6 생산에 따른 생산량 조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7세대 그랜저가 1세대 그랜저가 갖고 있는 특유의 ‘각’ 디자인을 얼마나 계승했는지 여부다. 최근 현대차가 공개한 7세대 그랜저 티저 이미지에는 직선을 강조한 도어와 수평으로 배치된 후면부의 리어램프 등이 드러나면서 각 그랜저로 잘 알려진 1세대 디자인을 계승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1세대 그랜저는 현대차가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차량으로 국내에서 최고급 세단으로 인기를 끌었다. 실제 위장막을 한 상태로 도로 위를 다니고 있는 7세대 그랜저의 사진이나 주행 영상 등이 이미 많이 노출됐는데, 스타리아의 앞모습을 연상시키는 헤드라이트를 비롯해 뒷좌석에 있는 C필러 부분이 1세대 그랜저를 연상시켰다.
19일 공개된 외관 디자인은 차량 후미에서 트렁크와 천장을 이어주면서 날렵하게 뒤로 뻗은 기둥(C필러)과 삼각형 창문, 독특한 스티어링 휠(운전대) 등이 1세대 그랜저에서 가져온 디자인 요소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각 그랜저의 이미지에 기존의 그랜저가 갖고 있던 젊은 감각을 가미해 6세대 그랜저와 마찬가지로 3040세대를 공략할 것”이라며 “여기에 큰 차를 선호하는 최근 트렌드에 맞춰 기존 그랜저 대비 차체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세대 그랜저가 화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각 그랜저가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최근 언론 등에 1세대 그랜저를 보유한 차주가 등장하거나, 1세대 그랜저를 비싼 돈 주고 구매해 수리해 타는 사람들이 소개가 되는 등 완성차 시장에서 ‘복고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아이오닉5를 비롯해 쌍용자동차의 토레스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아이오닉5는 2030세대뿐 아니라 5060세대 공략에도 성공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아이오닉5 누적 판매량 2만6712대(법인·개인사업자 제외) 가운데 60대 이상 구매자가 36.7%(9807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0대 고객(6866대)까지 합하면 전체의 62.4%에 달한다.
올해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복고 열풍을 이어간 차종을 꼽으라면 쌍용차의 토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7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토레스는 9월 4781대가 판매되며 판매량 부문에서 국내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대차와 기아 외의 브랜드가 전체 판매량 부문에서 3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토레스는 출시 전 스케치가 공개됐을 때부터 과거의 무쏘를 연상시키는 굵은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실제 출시된 차의 디자인도 스케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소비자들이 열광했다.
현대차가 최근 그랜저 출시 35주년을 맞아 1세대 그랜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전기차 ‘그랜저 헤리티지’를 공개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 외의 브랜드가 사전계약 1만 대를 돌파한 것은 2016년 르노코리아자동차의 SM6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쌍용차는 과거 인기 모델 ‘코란도’를 계승한 ‘KR10’ 프로젝트도 내년 중 선보이며 복고 열풍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수입차 업체도 복고 열풍에 가세하는 추세다. 포드코리아는 올해 3월 국내에 SUV 뉴 포드 브롱코를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1966년 출시돼 1996년 단종된 포드 1세대 브롱코를 계승하고 있다.
업계는 완성차 시장에서의 복고 열풍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기차 전환으로 자동차 산업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외관 디자인을 봤을 때 보다 안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는 분석부터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 너무 곡선에 치우쳐 있다 보니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면서 복고 열풍이 강화됐다는 설명도 나온다.
사실 현대차는 지난 8월, 신형 그랜저에 대한 사전계약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차 반도체 부족으로 지금 생산되고 있는 6세대 그랜저의 출고 대기 기간도 옵션 등에 따라 3~6개월에 달하기 때문이다. 인기 차종인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출고 대기가 긴 상황에서 신형 그랜저 사전계약을 받으면 6세대 그랜저를 계약한 고객들의 출고 기간이 뒤로 더 밀릴 수 있다. 하지만 예약을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대리점에서는 6세대 그랜저로 계약을 먼저 받고, 신형 그랜저가 출시될 때 계약을 바꾸는 ‘전환계약’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 디 올 뉴 그랜저 내부.
그랜저의 월간 생산량이 올해 들어 3000~ 7000대인 만큼 현재 예약된 차량이 출고되는 데만 10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차를 받고 싶은 마음에 사전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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