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하는 성인 영양식 시장 | 인구 고령화와 함께 삼겹살·김치찌개서 탈출… 단백질 중심 건강식, 환자 대상 ‘케어푸드’ 급성장
입력 : 2020.07.02 14:34:34
-
나이가 들면서 자전거 타는 것 외에는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73세 A씨. 어느 날 그는 아파트 1층 안내 게시판에 붙은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의 근육 건강’ 관련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해당 인체 적용 시험에 참가키로 결심했다. 매일유업이 2018년 설립한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는 노년층의 대표 질환인 사코페니아(근감소증)를 예방할 수 있는 기능성 제품 연구개발(R&D)과 소재 확보 등에 힘쓰는 종합 연구 조직이다. 보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경희대 의학영양학과, 아주대병원 등 다양한 기관과의 협업도 병행하고 있다. 테스트에 돌입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근력이 좋아진 걸 몸소 느끼고 있다는 A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들네 집에 자전거 타고 갈 때 야트막한 언덕을 맞닥뜨리는 지점에선 끌고 가기 일쑤였다”며 “최근엔 팔다리, 특히 대퇴사두근(허벅지) 근력이 월등히 증가한 덕분에 한번에 거뜬히 넘는다”고 말했다.
김치찌개와 소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게 일상이었던 30대 직장인 B씨는 최근 대상웰라이프의 ‘마이밀 뉴프로틴’을 구매했다. 40대가 다가오자 균형 잡힌 단백질 섭취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B씨는 “지금까진 고기를 종종 구워먹는 게 단백질 보충의 전부였다”며 “불안한 마음에 마이밀 뉴프로틴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전보다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인 40대 남성 C씨는 “운동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근육량이 점점 줄어들어 한번 구입해봤다”며 “맛이 고소해 이젠 출출할 때마다 다른 간식 대신 뉴프로틴을 하루 2팩씩 챙겨먹는다”고 말했다.
대상웰라이프 마이밀 뉴프로틴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전체 15.5%를 돌파하는 등 고령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성인 영양식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방함량이 높은 삼겹살로 단백질 섭취를 대신하거나 소화불량을 이유로 채소 위주의 식단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분유 형태의 단백질 보충제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서울백병원에서 진행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건강한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무게 1㎏당 1~1.2g의 단백질을 매일 섭취해야 하는데 국내 60세 이상 인구의 2명 중 1명은 하루 권장량 이하의 단백질만 보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백질은 한 번에 많은 양을 섭취해도 체내에 필요한 만큼만 흡수되고 나머지는 분해 배출되기 때문에 매일매일 적당량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식품업체들은 단백질 섭취의 생활화를 위해 간편한 형태의 성인 분유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매일유업이 4년여의 연구 끝에 2018년 말 내놓은 셀렉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 영양식 브랜드다. 액상 파우치 형태의 ‘매일 마시는 프로틴’과 시리얼바 형태의 ‘매일 밀크 프로틴바’, 분말·스틱 형태의 ‘매일 코어 프로틴’, 체중조절용 조제식품 ‘슬림25’ 등 13종으로 구성돼있다. 이 중에서도 매일 코어 프로틴은 진한 우유에 단백질을 18g씩 담아낸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루에 매일 코어 프로틴 한 잔이면 우유 4컵(125㎖컵 기준)에 해당하는 단백질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 또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별도로 보충해야 하는 필수아미노산인 류신(부원료)도 2000㎎가량 들어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단백질 제품은 맛없고 떨떠름하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소비자 평가를 10여 차례 진행하고 진한 우유맛을 살리는 등 R&D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셀렉스가 출시 1년여 만에 400억원의 누적 매출을 달성했다”며 “7월에는 운동보조용 단백질 보충제도 출시해 헬스족까지 사로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산양유청단백질 보충식, 일동후디스 ‘하이뮨’
매일유업은 중국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앞서 지난 4월 셀렉스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티몰 글로벌에 단독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전 라인업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아직 시장 진출 초기 단계인 데다 코로나19에 따른 소비 위축 등으로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지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판매 채널을 계속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출시된 대상웰라이프의 ‘마이밀 뉴프로틴’은 소고기 등심 110g 또는 우유 660㎖ 분량에 해당하는 단백질 20g을 함유한 제품이다. 비타민D와 칼슘뿐 아니라 류신 등의 필수아미노산도 4000㎎ 들어 있다. 물 120~150㎖에 2포를 넣은 후 가볍게 섞으면 완성된다. 마이밀 뉴프로틴의 가장 큰 장점은 동물성과 식물성 단백질을 5대5 비율로 균형 있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동물성 단백질은 근육 생성에, 식물성 단백질은 근 손실 방지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팩 형태로 포장돼있어 동봉된 빨대만 꽂으면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다.
매일유업 셀렉스 코어프로틴 플러스
지난 2월 출시된 일동후디스의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는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대두단백’의 비율을 6대 4로 맞춘 제품이다. 무엇보다 일반 유청이 아닌 산양유 단백질을 활용해 소화력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피부 연골 결합조직에 필요한 콜라겐, 류신, 비타민 등을 부원료로 배합한 것도 장점이다.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는 브랜드 론칭 후 15회에 걸쳐 진행한 홈쇼핑 방송에서 모두 완판을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주요 고객층은 50대 여성으로 전체 홈쇼핑 구매량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일동후디스 관계자는 “오는 하반기 휴대와 보관이 간편한 분말스틱, 액상 파우치 형태 등의 제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며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 외에 식사만으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균형 있게 담은 ‘하이밀크’를 강화하는 데도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밀크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에 20종 비타민과 미네랄을 더한 제품이다.
하루근력 분말
성인용 분유 외에 ‘케어푸드(care food)’라 불리는 연하식·연화식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케어푸드는 노인, 환자뿐 아니라 영양 불균형에 노출된 직장인, 산모 등을 위한 건강 먹거리를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연화식은 저작(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 기능이 둔화된 사람들을 겨냥한 제품이다. 연하식은 인두와 식도 근육이 약해져 음식을 삼키기 힘든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케어푸드 시장은 2012년 5816억원에서 2017년 1조1000억원으로 성장했다. 식품업계에선 올해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케어푸드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업체는 신세계푸드다. 신세계푸드는 2018년 말 일본 영양치료 선두기업 ‘뉴트리(NUTRI)’와 연구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형 식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1월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인 ‘이지밸런스(EASY BALANCE)’를 론칭했다. 현재 이지밸런스는 소불고기 무스, 가자미구이 무스, 동파육 무스, 나박김치 무스 등 총 9종으로 구성돼 있다.
이지밸런스의 인기 비결은 음식 본연의 맛을 구현하면서도 혀로 가볍게 으깨서 섭취할 수 있도록 경도, 점도, 부착성 등을 조절한 데 있다. 별도의 조리과정 없이 용기째 중탕 또는 콤비오븐에서 가열하면 완성된다. 덕분에 출시 후 판매량이 5개월 만에 158% 증가했다. 실제 이지밸런스를 섭취하고 있는 경기 일산의 한 요양병원 환자들은 “부드럽고 목 넘김이 편하다”,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하고 소화가 잘 된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먹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다양한 맛의 제품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길 바란다” 등의 긍정적 평가를 전했다. 신세계푸드는 기존 위탁급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우선 요양원, 대학병원 등 B2B(기업 간 거래) 시장을 공략한 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케어푸드 식사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인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3월 가정간편식(HMR) 형태의 맞춤형 건강식단 브랜드 ‘그리팅’을 론칭했다. 그리팅은 일반적인 한 끼보다 당도와 나트륨, 칼로리 등을 낮춘 식사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영양분을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이다. 현대그린푸드는 80명에 달하는 베테랑 연구원과 영양사를 투입해 천연조미료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설탕과 소금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팅의 모든 메뉴에는 구기자 간장 소스, 당귀 유채유, 아보카도 오일 드레싱 등 자체 개발 소스 71종이 사용됐다. 특히 소스에는 설탕 대신 칼로리가 거의 없는 알룰로스가 함유돼있다. 국물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MSG(L-글루타민산나트륨)를 뺀 채소 혹은 고기 육수만을 사용한 점도 특징이다. 또 비타민과 항산화성분 등이 다량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땅콩새싹·보리순·꾸지뽕 등 150여 종의 건강 식재료도 모든 음식에 한 가지 이상씩 활용했다. 정기구독 형태로 식습관을 관리할 수 있는 데다 카레, 마라샹궈, 고추잡채덮밥 등 메뉴가 다양하다는 점 등이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론칭 첫달 8000개였던 판매량이 지난 5월 2만1000개로 163% 증가했다. 현대그린푸드는 케어푸드 사업 확대를 위해 연내 반찬 레시피를 기존 274개에서 350개로 늘릴 예정이다.
신세계푸드 이지밸런스 소불고기 무스
아워홈은 2017년 국내 최초 효소를 기반으로 한 연화식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효소 침투 기술을 활용할 경우 재료 가공에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열로 쪄내는 증숙 방식에 비해 영양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육류는 종류에 상관없이 부드러운 정도를 최소 30%에서 최대 70%까지 원하는 수준대로 조정할 수 있다. 아워홈은 해당 기술을 바탕으로 2018년 6월 맛과 영양, 소화력 등을 고려한 ‘행복한맛남 케어플러스’ 연화식 양념육 3종을 출시했다. 현재 전국 실버타운과 요양 및 복지시설, 병원, 어린이집 등 B2B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온고압으로 뼈까지 연화시킨 고등어, 꽁치 등 생선조림도 제공하고 있다.
신세계푸드 이지밸런스를 활용한 상차림
아워홈 관계자는 “저작과 소화를 용이하게 하면서 맛과 식감, 영양은 그대로 살린 아워홈의 효소 침투 기술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며 “육류뿐 아니라 생선, 채소, 떡 등 다양한 원물을 상품화하는 것은 물론 연화 단계를 세세하게 조절해 라인업을 지속 확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희진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