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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유통채널의 희망 된 편의점, 배달·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서비스 확장
입력 : 2020.02.03 14: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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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어원은 ‘구획된 땅’이다. 용도도, 형태도 정해져 있지 않은 땅에 경계가 지어지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부지’가 탄생한다. 공간이 수행하는 기능의 혜택을 받고 싶은 사람들은 플랫폼에 모인다. 모이는 사람이 늘다 보면 거꾸로 공간이 제공하는 혜택도 늘어난다.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플랫폼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보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플랫폼에 기능을 추가하는 편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하나둘 생겨나던 편의점이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플랫폼의 특성 때문이다. 국내 도입 초기 집 근처에서 생수, 라면 등 필수품이나 담배를 판매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편의점이 최근에는 택배, 공과금 수납, 배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온라인 공세 속 편의점이 유일하게 성장하는 오프라인 채널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업계 1, 2, 3위 업체 각각이 점포 1만 개를 돌파할 정도로 양적 성장을 거듭한 편의점 업계가 본격적으로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편의점이 이런 것도 하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편의점들의 플랫폼 서비스들을 정리해봤다.
지난해 11월 기준 점포수 1만3899개로 CU의 1만3820개를 넘어선 GS25는 공공요금 수납·하이패스·택배 등 편의 서비스 도입에 가장 선제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3월에는 GS리테일의 편의점 물류망을 활용한 ‘반값택배’를 도입해 순항 중이다. 반값택배는 GS리테일의 물류 자회사 ‘GS네트웍스’의 물류망을 활용해 1600원에 택배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이 GS25 점포에서 택배를 보내면 상대방도 가장 인접한 GS25 점포에서 택배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GS리테일에 따르면 반값택배는 출시 이후 월별 20% 수준의 이용 건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연중무휴 24시간 접수가 가능해 일반 택배 서비스가 중단되는 명절 연휴 기간이 포함된 달에는 서비스 이용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고객이 반값택배를 접수하고 있다.
자궁경부암 키트 ‘가인패드’는 생리대형 패드를 4시간 동안 착용한 뒤 패드에 붙은 필터를 분리해 동봉된 보존 용기 박스에 넣는 방식으로, 자궁경부암 발병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다.
반려동물 질병 체외 검사 키트 ‘어헤드’는 시약 막대에 반려동물의 소변을 묻히면 1분 내로 당뇨병·방광염·신부전 등 10가지 이상의 질병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제품 모두 산부인과·동물병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산간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 등에게 일종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편의점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CU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배달 앱과의 합종연횡이다. 고객들이 배달 앱에 들어가 편의점 탭을 누르면 1.5㎞ 내에 있는 편의점이 나타난다. 최소 주문금액인 1만원 이상의 물품을 주문하면 배달비용을 얹은 금액과 함께 결제되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다.
배달 앱 ‘요기요’와 가장 먼저 손잡은 CU는 지난 1월 초 현재 3000개의 점포에서 배달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내에는 5000점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CU 관계자는 “배달 앱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점주님들도 배달 앱 사용이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일부 점포에서는 24시간 운영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CU에 따르면 배달 앱 이용률은 비가 오면 평시 대비 40%까지 이용률이 올라간다. 도시락 등 200여 개 먹거리 상품에서 시작한 서비스는 최근 60여 개 생활용품으로까지 확대됐는데 이후 구매단가가 1만8200원으로 오르며 전체 배달 서비스 매출이 20%가량 상승했다.
CU는 배달 서비스 강화가 집에 있는 고객, 혹은 걸어오기에는 다소 먼 거리에 있는 고객들까지 물품을 구매토록 하여 잠재적인 고객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파악해 10년 전부터 배달에 힘을 주고 있다. 2010년에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화로 주문하면 점포에서 직접 배달을 나갔는데, 배달 인력이 따로 있어야 했기에 근무자가 많은 직영점 10여 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됐다. 2015년에는 배송업체와 연계해 라이더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각 점포별 재고를 앱으로 파악할 수 있게 연동했다. 서비스를 실시하는 점포도 서울 주요 도심 500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8월에는 세탁 스타트업 ‘오드리 세탁소’와 손잡고 세탁 수거·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편의점 문만 열려있으면 언제든 세탁물을 접수한 뒤 1~2일 내 지정한 주소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1인 가구 직장인들은 세탁소 영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접수는 물론 다시 세탁물을 수령하는 일 역시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접수 및 배달·배송비가 무료고 세탁물 수거 이후 진행상황이 카카오톡을 통해 업데이트돼 편의성도 높였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점포 수 1만 개를 돌파한 세븐일레븐 역시 고객 생활과 더 밀착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 역량을 지닌 롯데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 국제특송 물류기업 ‘페덱스’와 협력해 해외 서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페덱스 홈페이지를 통해 배송 접수를 하고, 휴대폰으로 발송된 예약번호와 함께 발송할 서류를 들고 세븐일레븐을 방문해 접수하기만 하면 미주 기준 최대 5일 안에 서류를 보낼 수 있다. 비용도 전 국가 단일 요금제로 건당 2만750원을 적용해 업계 평균보다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일반 종량제 봉투와 달리 손잡이가 달려 장바구니로 사용 후 쓰레기봉투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재사용 봉투’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고객들이 더 많고 부피가 큰 물건을 구입하는 대형마트·슈퍼에만 판매가 집중됐는데, 세븐일레븐은 강서구와 손잡고 재사용종량제봉투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무인 물품보관서비스 ‘세븐락커’도 눈에 띈다. 4시간 동안 물품 크기에 따라 2000~4000원의 이용요금을 지불하면 짐을 보관할 수 있다. 유흥 및 위락 상권을 이용하는 소비자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서울 마포구 홍대, 종로구 등 주요 관광지와 유흥 상권 점포에 집중 설치했다.
세븐일레븐은 스마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등 스마트 점포와 인공지능 결제 로봇 ‘브니’ 등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고객들에게 선보이는 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에는 정맥으로 개개인을 인식하는 ‘핸드페이’가 도입됐으며 물건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스마트 결제 로봇 ‘브니’가 계산해 인력 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017년 5월 첫 점포 문을 연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는 현재 전국에 17호점이 있다.
[강인선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3호 (2020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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