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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전환에 나선 대기업… 삼성·LG·현대차 등 주요 그룹도 클라우드 이용, 젊은 오너들 의지 뒷받침… “디지털 전환이 경쟁력”
입력 : 2019.05.03 14: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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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국내 대기업들에 클라우드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IT 시스템의 ‘유연성’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 유연한 정보통신(IT) 시스템을 도입해 전통의 강자들을 물리치는 상황이 속출했다. 결국 기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디지털 전환이 필수인 시점이 온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운용해 매출을 창출하는 비중이 50% 이상인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매출 성장이 평균 2배 더 빠르며, 매출 총이익은 평균 1.5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경영 혁신의 필수로 클라우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클라우드 전환이란 기본적으론 기존에 활용하던 PC 서버 등 IT 인프라의 일부나 전부를 외부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IT, 유통 등 정보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올해는 은행, 보험, 항공사(교통) 등 최신 IT 기술과 인프라 도입에 보수적인 기업을 중심으로 클라우드 도입이 빨라지고 있다.
악수하고 있는 서정식 현대·기아차 ICT본부장(좌)과 이성열 SAP 코리아 대표
국내 대기업의 경우 대한항공이 전 세계 대형 항공사 가운데 최초로 전사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이전한다. 대한항공은 LG CNS와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클라우드 전환을 위한 파트너로 선정하고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대한항공이 서울 방화동 데이터 센터에서 운영되는 홈페이지·화물·운항·전사적자원관리(ERP), 내부 회계통제 시스템 등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이동 시 10년간 운영비용을 포함해 약 2000억원 규모로, 클라우드 전환에 따라 인공지능(AI)·머신러닝·빅데이터 분석·사물인터넷(IoT)·데이터베이스 등의 기술을 항공 산업에 접목해 전 세계 고객을 대상으로 개인 성향을 기반으로 세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고객의 취향을 빅데이터 기술로 승객의 여정 정보 등을 분석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항공 상품을 빠르게 제안할 수도 있다. 고객의 미래 행동을 예측해 상품 기획도 가능해진다. 고객은 음성만으로 항공 스케줄 조회, 예약 정보 확인 등 다양한 정보 검색을 할 수 있게 된다. 항공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운항, 정비 등 각 부문에서 생산되는 방대한 센서 데이터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항로 최적화, 연료 절감, 사전 예측 정비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각종 시스템 로그 정보를 AI 기술로 분석해 항공 안전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IT운영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높아진다. 클라우드는 접속자가 갑자기 늘어도 서버 자원이 자동 확장돼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현대차·LG·SK·롯데 등 국내 대기업들이 속속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있다. 기존 작업 방식이 서버 등 저장장치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시 불러와 작업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라면, 클라우드로 전환하게 되면 가상 서버에 데이터를 바로 저장하고 작업할 수 있어 속도와 업무 효율을 높이고 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오는 2020년까지 약 7000억원을 투입해 전사적관리시스템(ERP)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IT 서비스 계열사인 삼성SDS는 작년 말까지 계열사 IT 시스템의 90% 가량을 클라우드로 전환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머신러닝,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병행·협업하는 방식인 데브옵스(DevOps) 프로젝트에 클라우드를 도입했다. 삼성SDS 관계자는 “ERP시스템의 경우 물리 서버와 클라우드 기반이 혼재돼 있지만 점진적으로 클라우드 기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 계열사 IT 시스템 2023년까지 클라우드로 전환
LG그룹도 계열사의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3년까지 계열사의 IT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90% 이상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LG CNS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제조, 통신, 서비스 등 계열사별 산업특성과 사업구조를 고려한 전환 우선순위에 따라 그룹 내 클라우드 전환을 순차적으로 확산한다는 방침이다. LG그룹 전체가 기존 물리 서버 중심 체제에서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경영, 조직, 공정 및 고객 관리 전반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비용도 절감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LG CNS는 특히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 ‘클라우드엑스퍼(CloudXper)’를 도입해 LG 계열사들이 동일한 시스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일 플랫폼을 제공할 계획이다. 데이터 통합·수집·분석을 개별 회사 차원이 아니라 그룹 전반에서 수행함으로써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LG 계열사 IT 시스템을 70% 이상 퍼블릭 클라우드로 전환할 예정이다. 퍼블릭 클라우드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클라우드 제공업체 서버를 인터넷망을 이용해 기업이나 개인이 서버·스토리지 등 컴퓨팅 자원을 빌려 쓰는 형태다.
이처럼 IT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움직임과 함께 기존 제조업이나 서비스 업체의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에 오는 2026년까지 약 4000억원을 투입, 클라우드로 전환 완료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달부터 전 세계 사업장의 ERP 시스템에 순차적으로 독일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고성능 클라우드 방식의 데이터베이스를 도입한다. ERP는 기업 내 생산·물류·재무·회계·영업·구매·재고 등 전반적인 경영 활동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관리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독일 업체인 SAP는 기업용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로 세계 ERP 분야 1위 기업이다.
현대·기아차가 이번에 도입하는 시스템(SAP HANA Enterprise Cloud)은 ‘인메모리 기반 클라우드(In-memory Based Cloud)’ 방식이다. 데이터를 물리적 데이터 센터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우드로 구축된 메모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처리하는 첨단 기술이다. 디스크가 아닌 고속의 램(RAM) 메모리를 활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함으로써 기존보다 빠르게 전사적 자원 관리 업무 처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서정식 현대차 ICT 본무장은 “인메모리 기반 클라우드가 향후 SAP의 차세대 ERP 솔루션인 ‘SAP S/4 HANA’와 결합될 경우 기존 대비 최대 1800배 이상 빠른 데이터 분석 및 리포팅 기술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며 “데이터에 기반한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 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IT 시스템의 클라우드 전환에 나선 것은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회사 컴퓨터에서 작업한 데이터를 회사 서버에 저장, 관리한다고 하면 서버 유지·보수·관리 비용이 필요하고 서버를 설치할 물리적 공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상 서버인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따로 물리적인 서버를 둘 필요도 없고 굳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에 접근, 작업이 가능하다. 비용과 효율성뿐만 아니라 AI, 빅데이터 등 첨단 신기술을 서버 용량 등 하드웨어 성능에 구애받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쇼핑몰 사업자가 몇 시에 고객들이 가장 많이 접속하고 몇 시에 실구매가 제일 많이 이뤄지는지 알려고 할 때, 개인 사업자가 갖고 있는 노트북이나 PC로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CPU 등 하드웨어 성능에 따라 구동할 수 있는 분석 소프트웨어나 애플리케이션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라우드 환경에서는 사업자가 원하는 만큼 서버를 설정할 수 있고 설정한 클라우드 환경에서 AI 등을 활용한 첨단 소프트웨어를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AI,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은 대용량의 데이터 속에서 인사이트를 발휘해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게 핵심인데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이러한 과정을 좀 더 빨리,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며 “클라우드도 종류가 매우 많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고객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클라우드 전환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배경에는 그룹 경영권을 승계한 ‘젊은’ 오너들의 과감한 결단이 뒷받침되고 있어 주목된다. 대표적 사례가 올해부터 현대·기아차그룹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정의선 수석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율주행, 공유경제, 인공지능(AI) 등 미래 분야 투자를 강화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기술 혁신을 가속화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경영에 복귀한 직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삼성은 이곳에 글로벌 인공지능연구센터를 신설하는 등 세계 각지에 AI 글로벌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에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근원적 변화를 뜻하는 ‘딥 체인지’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SK그룹도 최 회장이 강조하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생존하는 ‘딥 체인지’를 위해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수적이라 보고 있다.
특히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를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를 토대로 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롯데그룹 역시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AI 태스크포스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효과 내려면 AI가 뒷받침돼야
클라우드 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가공하는 AI가 받쳐줘야 한다. 클라우드를 도입하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IBM 등에서 AI, 블록체인, IoT 등 최신 소프트웨어 수천 종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회사에서 근무하는 최고 보안전문가들이 내 데이터를 보호해 준다는 것도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다.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나 보안 솔루션을 쓰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제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클라우드 특성상 서버 등을 추가로 설치하지 않아도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회사의 인프라스트럭처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외국계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각 그룹이 서버 중심 체제에서 클라우드로 전환하면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해 경영, 조직, 공정 및 고객 관리 전반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비용도 절감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인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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