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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회장의 기술 집념, 성장의 견인차…기술이 경쟁력, 위기를 기회로 만든 효성의 DNA
입력 : 2016.08.05 17: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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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효성그룹의 약진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효성은 지난해 매출 12조4585억원, 영업이익 9502억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올 1분기에도 222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성장의 저변에는 원천기술 확보에 대한 조석래 회장의 집념과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가 뒷받침됐다”고 손꼽는다. 특히 조 회장의 기술 경영이 IMF 외환위기, 중국시장 성장으로 인한 공급과잉 문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돌파하며 글로벌 일류 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석래 회장은 재계에선 이미 유명한 ‘기술 중시’ 경영인이다. 화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인 조 회장은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고 강조하며 지난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기술연구소는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스판덱스는 조 회장의 기술에 대한 집념과 뚝심 경영의 결과물이다. 그룹 안팎에선 외환위기 이후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견인차라고 평가하고 있다. 효성은 1989년 조 회장의 지시로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성장이 예상되는 기능성 섬유, 스판덱스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1990년대 초 국내 최초의 독자기술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했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당시 그룹 내부에선 수익성이 저조하고 사양 산업으로 치닫던 스판덱스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공급망을 확대하면서 품질 개선에 힘쓰고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 중심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2010년에는 마침내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해 현재까지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다.
타이어코드 역시 우수한 기술력과 품질로 세계 시장점유율 45%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제품이다. 1968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타이어코드를, 1978년엔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를 생산한 효성은 현재 나일론, 폴리에스터, 아라미드, 라이오셀 등 다양한 소재의 섬유 타이어코드와 스틸 코드, 비드와이어 등을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종합 타이어보강재 메이커로 자리 잡았다.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플라스틱 산업 박람회 ‘차이나플라스(Chinaplas) 2016’에 마련된 효성 전시부스에서 효성 직원이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독자기술 확보한 효성만 살아남아
국내 화학섬유업계는 2005년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무너졌다. 당시 중국공장들이 한국공장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인건비를 앞세워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했고,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하며 경쟁력을 잃었다. 이 가운데 스판덱스를 독자적인 기술로 생산할 수 있었던 효성만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았다. 조석래 회장은 당시 중국 화섬업체들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중국을 뛰어넘는 고품질의 제품, 쉽게 따라할 수 없는 기술력 확보를 강조했다. 여타 한국 기업들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철수하는 가운데 효성은 오히려 투자를 늘려 생산 시설을 확대해 나갔다. 최근 흑자로 전환한 중공업 부문 역시 중국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체 개발한 중전기기를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한국의 중전기기 기술은 효성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성은 1969년 국내 최초로 154kV 초고압변압기를 개발했고, 1992년 세계에서 6번째로 765kV급 초고압변압기를, 1999년에는 800kV급 가스절연 개폐장치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하며 자체기술력을 확보했다. 2007년에는 순수 독자기술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극초고압 차단기 1100kV GIS 개발에 성공하는 등 국내 초고압 전력설비산업을 리드해 오고 있다.
지난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크레오라 워크숍’에서 효성의 스판덱스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인 리아 스턴(Ria Stern)이 고객사들에게 애슬레저(Athleisure) 트렌드를 설명하고 있다,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전시되어 있는 탄소섬유 적용 제품의 예시
조 회장은 임원들에게 늘 “글로벌 현장에 직접 나가 시장의 현황과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관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해외 생산현장에는 고객사가 국내 공장과 동일한 수준의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최고 기술력 보유와 안정적 품질 확보를 주문하고 있다.
15년 이상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타이어코드의 경우 단순히 품질과 기술이 뛰어난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서 고객 별로 특화된 타이어 개발 지원 및 R&D 방향을 제안하는 파트너 관계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해왔다. R&D 부서 및 생산 부서와 고객의 니즈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 필요한 제품을 맞춤형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타이어의 트렌드 경량화, 고성능화, 친환경 등에 적합한 제품을 고객사에 먼저 제안해 적용시키는 방법으로 꾸준히 성장을 이끌어왔다. 더 나아가 고객사의 원가절감, 제품 성능 개선에 도움을 주는 소재를 개발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조 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 철학과 지속적인 투자는 효성이 미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주력하고 있는 최첨단 신소재 탄소섬유와 폴리케톤의 개발로 이어졌다.
조 회장이 2000년대 초반 탄소섬유의 미래 가치 및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2006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한 효성은 개발 최단 기간만인 2011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고성능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2013년에는 전주 친환경복합산업단지에 연산 2000톤 규모의 탄소섬유 공장을 건립하고 상업화해 생산 중이다. 2004년부터 개발에 착수한 폴리케톤은 “세상에 없던 소재를 만들라”는 조 회장의 지시로 개발 10년 만인 2013년 세계 최초로 기존 나일론 등 화학 소재 대비 내마모성 등 모든 측면의 물성이 뛰어난 폴리케톤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했다.
폴리케톤은 2010년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세계 10대 일류소재기술 사업 국책과제로도 선정돼 연구지원을 받은 것은 물론 국가 차원의 미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섬유제품
지난 7월 12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34회 정진기언론문화상의 주인공은 효성이었다. 과학기술연구 부문 대상을 차지한 조현준 효성 사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효성엔 창업주 때부터 이어져온 기술 중심의 경영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며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탄소섬유, 폴리케톤 등 다양한 소재를 개발해온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없었지만, 기술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악착같이 도전하자’는 신념으로 난관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수상 소감에서 “앞으로도 첨단소재를 개발하고, 기존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추진하는 등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향해 더욱 정진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1호 (2016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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