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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경영’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입력 : 2015.03.06 15: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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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경영은 한국식 오너경영, 서구식 성과주의 경영과 다른 어떤 특징이 있을까.
중국식 경영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경제와 경영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고속 성장과 침체가 반복되며 시장환경이 급변했고 국가 자본 통제 아래 대규모 도시화, 뿌리 깊은 부패 등이 생겨났다. 중국식 경영은 이러한 경영상황 속에서 차별화된 방식으로 경쟁우위를 갖고자 생겨났다.
50년 전 도요타(Toyota) 등 일본기업들이 총체적 품질경영 등을 도입했던 것처럼 새로운 경영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를 비롯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상황 대처능력, 임기응변, 유연성, 신속성을 갖췄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 5년간 30개 이상의 중국 민영 대기업을 조사하며 중국 내 수많은 기업들이 실패하는 가운데 무서운 경쟁력을 갖춘 이른바 중국식 경영법으로 성공한 기업을 연구했다. 중국식 경영법의 4가지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단순하고 수평적인 조직 일반적으로 중국기업 CEO는 상부에서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주요 중국기업을 살펴보면 담당 부서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부여하고 분권화와 수평구조를 통해 조직 체계를 단순화 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기업이 현재 사업을 추진함과 동시에 3~5년 후를 내다보며 기업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원을 추가로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인큐베이팅하거나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부서장이 현재와 미래 각각의 운영 기간을 관리하고 하부조직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국 기업은 두 명의 매니저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각각의 운영 계획을 맡겨 효과적인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다. 중국 리더들은 부서장을 거치는 복잡한 협업적 체계보다는 실제 담당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중국 가전업체 1, 2위를 다투는 메이디(MIDEA)와 하이얼(Haier)의 사례도 대표적이다. 메이디는 진공청소기, 소형 온수기에서 전자레인지와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생산한다. 주요 제품 라인 대부분은 완전한 자율성과 책임이 부여된 독립적인 비즈니스로 운영된다. 각 비즈니스에는 P&L(Profit&Loss: 손익)을 담당하는 리더가 각각 따로 존재하고 이들은 영업 조직 구축, 공급 업체와 유통 업체 선정, 공장부지 선정에 권한을 가진다.
하이얼은 수천 개의 작은 회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사들은 모두 회장에 직접 보고한다. 재무부서도 독립적으로 기능하며 재무 및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땐 수수료를 받는다.
서구기업의 경우 조직이 다소 복잡해지더라도 복수의 보고 체계를 통해 제품 표준의 비일관성, 불평등한 채용관행 등을 방지하고 기업 리스크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사업의 급진적 성장을 위해 조직을 단순화하고 이로 인한 비용 발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물을 정해진 시간 내 신속하게 지어야 하는 건설사를 생각해보자. 이 기업에게 빠른 속도로 마르거나 영하의 온도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시멘트는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도 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구성이 좋아 지속기간이 50년 가까이 되는 시멘트는 큰 매력을 끌지 못한다.
중국 건설 장비 부문에서 상위권 기업으로 부상한 싼이(SANY)는 중국 기업의 현지화가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싼이의 주력 제품 라인은 레미콘과 굴착기다. 선진국에서 이 두 라인은 보통 하도급 업체에 판매된다. 중장비의 특성상 그 수명은 수십 년이다.
그러나 중국은 선진국과 약간 다른 형태로 운영된다. 레미콘과 굴착기는 리스 업체에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리스 업체는 작업별로 하도급 업체에게 장비를 대여하는 방식이다.
중국 리스업체들은 장비의 내구성보다는 탄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영업을 진행한다. 이에 싼이는 일본 고마쓰(Komatsu)와 미국 캐터필러(Caterpillar) 등 다국적 중장비 업체들이 자본이 많은 소수 건설 기업에 고가 기계를 판매하며 상위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다른 GTM전략(Go-To-Market Strategy, 시장 진출 전략)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리스 업체에 착수금을 거의 받지 않거나 아예 받지 않는 현지화 판매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말이다. 현재 싼이는 독일 레미콘 제조업체 푸츠마이스터(Putzmeister)를 인수하고 여러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등 시야를 넓히고 있다.
셋째, 신속한 신제품 개발 중국 기업이 기존 기술을 이용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는 속도는 놀랍다. 글로벌 유아용품 전문기업 중국 굿베이비(Goodbaby)는 분기마다 평균 100개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KFC 차이나 등 중국의 패스트푸드 체인 역시 중국의 다양한 입맛에 맞춰 미국의 KFC보다 매년 더 많은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중국 기업의 역량은 중국 전통으로부터 생겨난 부산물이다. 메이디, 굿베이비,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기업 완샹(Wanxiang)은 빠른 턴어라운드를 원하는 바이어의 니즈에 맞춰 신속한 프로토타입 제작 방법과 원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설계 방법,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 등을 학습하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중국의 인터넷 업체 텐센트(Tencent)는 신속히 새로운 기능을 도입한 기업이 어떻게 우위를 확보해 나가는지 잘 보여준다. 텐센트는 혁신은 없고 모방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현재 7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 중국 포털이다.
텐센트의 영향력은 인터넷 메신저 큐큐(QQ)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회사는 초반 메시지 서비스에 이어 게임, 검색, 전자상거래, 음악,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microblog), 가상통화 큐코인(Q-coins) 등을 빠른 속도로 도입했다.
그 결과 중국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면 거의 모든 사람이 큐큐에 접속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텐센트는 세상에 없던 특별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기업들보다 앞서 나감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중국은 관시(关系)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어떤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파트너를 마주해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유능한 기업은 정부와 국가 기관의 조직도를 꿰뚫고 모든 지역의 권력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거래를 추진할 때 순조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영진들은 세금, 시장 접근성 확보를 위해 정부 고위 인사들과의 개인적 관계 형성은 필수라고 간주한다. 중국 정부 역시 국가 발전과 세수 확보를 위해 기업가가 필요하다. 즉 중국의 경영인들과 관료들 간의 관계는 부패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인 경우가 많다. 중국 소프트웨어 기업 뉴소프트(Neusoft)의 사례를 보면 이 같은 관계를 이해하기 쉽다. 뉴소프트는 B2B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한 기업 내 자사 소프트웨어가 장기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원했다.
이에 정부가 IT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참여했고 현재 중국의 현대화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뉴소프트는 까다로운 해외 고객을 공략할 수 있는 역량을 쌓게 됐고 세계적인 음향 전문회사 하만(Harman),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Intel), 세계적 소프트웨어 기업 SAP, 전자기기 제조기업 도시바(Toshiba) 등 다국적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강력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은 기업생존과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서구식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단기적인 경영 목표에 집중하면서 장기적 인재육성에 소홀해졌고 결국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게 됐다. 한국의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식 경영방법을 그대로 적용한 결과였다.
모든 기업에 절대적인 ‘만능 경영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성공한 경영법을 기반으로 자사만의 경영 방식을 만드는 작업은 필요하다. 경영에도 스핀오프가 필요한 시점이다.
[데이비드 C. 마이클(David C. Michael)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샌프란시스코오피스 시니어파트너]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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