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성형외과가 세계적인 이유

    입력 : 2014.09.12 14: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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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초, 온라인을 기반으로 크라우드 소싱 형태의 조사와 크리에이티브 활동을 펼치는 회사의 아시아 지역본부를 맡고 있는 벨기에 출신 친구를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싱가포르에 7년째 살고 있다는 그 친구는 이전 7년을 프랑스 다농과 ABV에서 맥주 마케팅을 하며 일했고, 이어 현재의 마케팅 에이전시 쪽에서 7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해 나름대로 글로벌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6월 말에 실리콘 밸리에 다녀온 출장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다. 기술의 중요성 따위를 얘기하다가 “한국의 실리콘 밸리가 어디인 줄 아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친구는 이번이 일곱 번째 한국 방문으로 나름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자부하던 차였다. 내가 “성형외과 병원들이 모여 있는 강남의 청담동-압구정동-신사동을 잇는 라인”이라고 말했더니 그가 박장대소를 했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한국의 성형 열풍과 넘쳐나는 성형외과 병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제목과 같은 질문을 벨기에 친구에게 던졌다. 잠깐 생각하다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한국인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유별나다. 인당 화장품 소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시에는 이 정도만 얘기했는데, ‘취업 경쟁이 치열하고, 외모를 경쟁요소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옷이 날개다’ 식의 속담도 있다고 덧붙일 수도 있었겠다.

    둘째, 손재주와 감각이 탁월하다. 콩알도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잡는 한국인들 얘기를 어느 과학자가 했듯이 성형 솜씨가 다른 나라 의사들에 비해서 좋을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유전자 요인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중국에 가면 쌀알에 경전을 새기는 따위의 묘기대행진을 펼친 전시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평균적으로는 한국인만큼의 정교한 손재주를 갖고 있는 민족은 없다고 단언한다.

    셋째, 전통적으로 ‘외화벌이’가 장려되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을 했다. 한국의 성형수술시장 자체는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형외과들이 어울려 경쟁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런데 한국의 대형 성형외과들이 외국인들 대상의 성형수술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1960년대부터 정부가 나서서 수출을 독려했는데, 흡사 그것에 발맞춘 형국이었다. 그리고 국내시장을 넘어선 시장 확대와 함께 성형외과 종사자들에게 자부심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해외시장도 지역별, 연령별, 성별, 수입별로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어느 후배 하나는 유럽을 주요시장으로 하는 모 성형외과의 마케팅실장으로 가기도 했다. 중국인들 중에서도 거부를 대상으로 한 달 코스 초호화 전신성형 상품이 나와 히트를 치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보면 시장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국내 소비자들이 있고, 선천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한편으로 고객의 수준이 높았다. 아무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의지와 자부심이 있었고, 마케팅 고도화로 연결되었다. 그러니까 고객, 자신, 경쟁(Customer, Corporate, Competition)의 세 부분을 짚은 셈이고, 각각에서 한국이 성형 강국이 된 이유를 어설프게나마 언급한 셈이다.

    ‘3C 분석’이란 용어가 너무 흔하게 쓰인다. 그러다 보니 광고를 따기 위한 경합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3C’란 소제목이 붙은 슬라이드를 보고 “아, 그건 되었고”하면서 바로 넘어가라고 하는 광고주도 보았다. 진부할 수도 있는 표현을 그대로 쓴 광고회사의 친구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떤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면서 넘겨버리려 한 광고주도 문제가 있다.

    ‘3C’는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 ‘현재의 환경이 어떤 거야?’ 하는 막연한 질문에 하나씩 풀어가는 단계를 제공해준다. 그렇게 풀어가는 단계에서 해답의 단초가 나온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건너뛰거나 무시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대놓고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마케팅의 출발은 이 3C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자.

    고객들은 현재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경쟁자들은 이제까지 어떤 활동을 펼쳤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으로 예상되는가? 그런 고객의 욕구와 경쟁자의 활동에 대해서 우리가 내놓을 방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할 우리의 역량은 무엇인가? 순간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테크닉에 가치가 주어지며 이 단순한 기초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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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매체는 대체가 아닌 확장이다 “이 엄청난 새 시스템의 가치는 그 규모나 효율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바로 인간 역사상 최초로 우리가 수백만의 사람들과 동시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오락과 교육적인 내용을 제공받고, 국내 문제, 사건, 민주주의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처음에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이 인터넷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위의 말은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맞은 대통령으로만 기억되는 허버트 후버의 말이다. 그가 한 말이니 인터넷일 리는 없고 위에서 얘기한 시스템은 바로 라디오를 지칭한 것이었다. 라디오가 나왔을 때 식자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 걱정했다. 이어 TV가 나오자 라디오의 시대는 갔다고 했다.

    또한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관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 <Back to the Future>를 보면 1950년대의 가정 풍경에서 아버지가 TV를 들여놓아 식탁 앞에 설치하면서 “자, 이제 우리도 밥 먹으며 TV를 보는 거야”하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TV가 식탁 앞에 설치되고, TV를 시청하며 먹기 좋은 음식까지 완전포장으로 나오면서 ‘TV가 식탁에서의 대화를 앗아갔다’고 개탄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TV가 나온 이후에도 건재한 영화에 의아한 눈길을 보내던 사람들이 비디오가 나오자 진정으로 영화의 시대는 끝났다고 소리쳤으나, 비디오의 출현 이후 블록버스터 영화의 수익이 억 달러 단위로 올라갔다.

    1990년대 초반의 미국 어느 잡지에서 식탁에 컴퓨터 모니터를 올려놓고 밥을 먹으며 그것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부인이 “당신이 식탁에서 신문을 읽던 때가 차라리 나았어요”하고 말하는 카툰을 본 적이 있다. 그 남편은 아마도 이제는 밥 먹으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모두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며 개탄조 혹은 조롱조로 얘기한다. 사람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다고 혀를 찬다. 그러자 어느 친구가 1950년대 모든 승객들이 신문을 보고 있는 미국 동부의 통근 열차 풍경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었다.

    어느 시인은 “전화 때문에 편지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전화로 할 얘기와 편지로 전하고자 하는 것이 달랐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메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어 출장이 줄고 해외여행 자체가 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정보교환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얼굴을 마주하는 빈도가 늘어서 출장이 잦아졌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모바일화된다고 얘기했으나 대부분의 사무직들의 책상 위에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이 놓여 있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또한 태블릿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새로운 매체들이 출현했을 때 사람들은 기존의 매체를 대체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새로운 매체를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 실상은 새로운 매체는 기존의 매체에 ‘+α’로 부가되는 식이다. 온라인 마케팅을 해야 한다며 기존의 오프라인 마케팅은 전혀 쓸모없고 효과도 측정할 수 없이 돈만 먹는 하마라는 식으로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온라인 마케팅만 한다는 것은 공군으로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군 전투기로는 일시적으로 적의 진격을 멈추게 하는 식의 타격을 입힐 수는 있다. 그러나 공군만으로 공고한 승리를 쟁취할 수는 없다. Val Morgan이라고 영화나 스트리밍 광고하는 업계 당사자라 조사에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그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정 상품에 대하여 TV광고만 할 때 구매를 고려하겠다는 사람의 비율이 43%인데, TV와 온라인광고를 함께 진행하면 그게 소폭 올라서 47%가 된단다.

    그런데 TV와 영화광고를 함께하면 그 비율이 62%로 올라가고, TV+영화+온라인으로 진행하면 66%로 영화광고의 위력이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영화광고를 부각시키려 한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광고를 집행하는 미디어 믹스의 중심으로서 TV가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매체와 함께 어울렸을 때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후버가 위의 얘기를 하기 10여 년 전에 이미 라디오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라디오는 원래 해군에서 고안돼 나왔다고 한다.

    바다의 배들 사이의 통신기구로서 사용된 것을 육지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래서 라디오는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공공 매체로 먼저 인식이 되었고, 보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RCA의 데이비드 사르노프는 다르게 생각했다. 라디오로 음악을 내보내라고 했다. 오페라가 라디오를 탔고, 복싱과 야구가 라디오로 중계되기 시작하며 라디오는 미국의 가정 필수품이 되었다. IBM의 토마스 왓슨은 전 세계에 컴퓨터 수요는 다섯 대 정도일 것이라는 유명한 예측을 했다. 컴퓨터가 아예 없던 시절도 있었으니 순수하게 정보 연산용으로만 쓰인다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정보나 사무용으로만 쓰인다면 컴퓨터가 지금처럼 보급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을 가져온 것은 바로 게임이었다.

    매체 관련하여 두 가지를 기억하자. 새로운 매체가 기존의 매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부가되어 매체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신규와 기존 매체의 최적의 조합을 만들도록 해야지, 완전히 대체해 버린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호모루덴스’라는 말이 있듯이 유희는 인간의 본성이다. 매체를 이용하는 습성도 그렇다. 어떤 매체에 어떤 정보를 싣든지 오락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런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만족시켜 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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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도 ‘삼독(三讀)’의 과정을 거쳐야 신기술이 나오면 세상이 하룻밤에 확 바뀔 것으로 얘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기술은 주로 기존에 하던 일들을 조금 다르게 하는 데 사용된다. 이에 대하여 <뜨는 도시 지는 국가>의 저자인 벤자민 바버는 이렇게 말한다. “쇼핑은 여전히 오늘날 웹에서 이뤄지는 주된 활동이고 인터넷 통신량의 3분의 1가량은 포르노를 찾아보는 데 사용된다. 결국 다음과 같은 놀랍지 않은 결론이 나온다. 웹이 보장한 상호작용성은 많은 경우 일방적인 하향식 장치를 조장하려는 의도를 감추기 위한 냉소적인 구실이 되며, 디지털 기술이 보장한 속도는 전통적인 수단에 의해 오랫동안 더디게 이뤄진 것을 좀 더 빠르게 할 뿐이다.” 인용문에서 쓰인 단어대로 지나치게 냉소적인 느낌도 주지만, 조금만 긴 호흡으로 신기술이 인간의 생활에 실제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본다면 그다지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연말연초면 다양한 기관에서 트렌드를 예측한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새로운 트렌드가 무엇인지, 그에 따라 어떤 마케팅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마케팅의 해법은 새롭게 나타난 트렌드보다는 변치 않는 속성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것은 단순히 외부 포장만을 살짝 변화시키는 데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근래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책 두 권을 골라서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여름, 1927, 미국-꿈과 황금시대>(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 2014)와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돌베개 펴냄, 2014)를 골랐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지난 과거의 한정된 시기를 스냅사진처럼 찍어내서 그 의미들을 그 특유의 문체로 아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어 보여준다. 유시민의 책은 ‘나의’라는 단어처럼 그가 태어난 1959년 이래 지금까지 55년간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만들어 온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유시민의 책이 세로로 쭉 이어가는 상황을 ‘욕망’, ‘경제’, ‘남북관계’ 등의 가로 역할을 하는 소재를 통하여 풀어 나간다면, 빌 브라이슨은 짧은 시기의 과거 한 장면을 가로로 하여 그 장면들을 만든 인물들의 개인사라는 세로줄을 보조로 풀어나간다. 선정에 대해서 빌 브라이슨의 책에 대해서는 거의 90년 전 너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냐, 유시민의 책은 개인의 관점에 쏠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두 책에 실린 사실들을 그냥 과거의, 개인의 단편적인 것으로만 단답식으로 치부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이 시간 때우기 독서가 된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흐름과 영향을 본다면 현재의 미국과 한국, 나아가 미래에 대한 조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예가로도 유명한 신영복 선생은 ‘독서는 삼독(三讀)’이라고 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필자를 읽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4년간 이 지면을 빌어서 나름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마케팅 트렌드와 사례들을 소개했다. 부족한 글이었지만 ‘삼독’의 과정을 거쳐서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마케팅 활동에 도움이 되었기를 감히 바란다.

    [박재항 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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