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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강한 한라그룹, 건설 짐 벗는 중
입력 : 2014.06.27 11: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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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지난 수년간 그룹 경영보다는 대한아이스하키연맹 회장으로 더 많이 언론에 등장했던 게 사실. 그러나 올해는 자신이 그룹 경영의 최전선에서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과연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정몽원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그룹 한라의 부활은 과연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인가. 정몽원 회장이 던진 가장 큰 승부수는 바로 지주회사 설립이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 6월 11일 (주)만도의 주권 재상장 예비심사 결과 재상장에 적격하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만도는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인 기존 만도의 제조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신설되는 회사다. 분할 후 존속회사는 지주회사로 전환해 한라홀딩스로 상호를 변경한다. 최대 주주는 정몽원 회장으로 지분 7.7%를 보유하게 되며 분할 기일은 9월 1일이다. 그렇다면 지주회사를 설립한 속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라그룹의 사업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라그룹은 현재 자동차 부품, 건설, 유통서비스, 교육스포츠, 신규 사업 등 5개 사업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회사의 주력은 단연 만도가 이끌고 있는 자동차 사업과 한라가 담당하고 있는 건설 부문이다. 정몽원 회장의 고민은 주력 사업의 미스매치다.
만도는 지난해 매출 5조6356억원, 영업이익 3125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매출은 11.4%, 영업이익은 22.1% 각각 증가했고 올해 1분기도 매출액 1조4230억원, 영업이익 853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2%, 4.0% 늘어나는 등 탄탄한 실적을 기록 중이다. 이에 비해 또 다른 주력사업인 건설부문을 대표하는 한라는 상대적으로 실적개선 속도가 부진하다. 올해 1분기 한라는 영업이익 121억원을 올리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부채비율도 210%대로 유동성 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사업 부문 원가율 개선과 가산하이힐 매각완료에 따른 대손충당금 환입, 김포와 파주 한라비발디 재분양으로 인한 자체부문 원가율 개선 등이 1분기 실적 턴어라운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국내 건설경기가 전반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한 실적 회복추세가 얼마나 더 견고하게 지속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바로 만도를 통한 한라 지원이다. 한라는 지난해 5월 자금 마련을 위해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만도가 자회사인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378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만도의 유상증자 참여는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만도 주주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고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 소지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을 정도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정몽원 회장에게는 만도나 한라나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자식들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주들 입장에서는 멀쩡한 회사 자금을 부실 회사로 투입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경영행위로 간주됐던 것이다.
(왼쪽)정몽원 한라 회장, (오른쪽)한라가 충북 청주시 용정동에 분양한 한라비발디 아파트 전경. 미국 데스테파노사와 협력해 건설한 이 아파트는 지난해 6월부터 주민 입주가 시작됐다.<사진제공 = 한라>
표면적으로 보면 지주회사 체제가 구축되면 만도가 지난해와 같이 한라를 자금 지원하기 힘든 구조로 변하게 된다. 정몽원 회장도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주회사 전환은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이며 만도를 통한 건설부문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만도의 김만영 IR담당 전무도 “기업분할과 지주회사 체제 도입을 통해 제조회사인 만도의 독자적인 경영 안정성을 높이고 핵심 사업에 보다 집중투자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라그룹의 지주회사 설립과 건설부문의 유동성 강화 대책은 지난 2월 그룹 상임고문으로 영입된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의 행보와도 맞물려 관심을 끈다. 대우증권과 IBK증권 사장을 역임한 임기영 고문은 살로먼 브라더스와 도이체방크 등 국내외 증권업계에 오랜 경험을 갖춘 정통 증권맨이다. 임 고문을 영입한 것도 바로 금융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한라그룹의 회생과 지주회사 성공여부는 결국 그룹 내 최대 아킬레스건인 건설부문 주력 계열사 한라의 실적 회복에 달려 있다. 한라가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어가지 못하고 그룹 계열사들의 자금 부담을 통해 발목을 잡는 구도가 지속된다면 기업 자체를 아예 시장에 매각하지 않는 한 정몽원 회장의 ‘부활 승부수’는 모두 물거품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긍정적인 요소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고전했던 한라그룹의 건설부문이 올해 들어 실적 개선을 조심스럽게 낙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경영을 짓눌렀던 차입금이 감소 추세에 있으며 자구이행과 실적 개선을 통해 재무수치 개선이 더욱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한라 관계자는 “김포한강 한라비발디 미분양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고 영종하늘도시 미분양도 조만간 재분양 예정이어서 대손충당금이 환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진행 중인 경기도 시흥의 서울대 배곧신도시 프로젝트와 아제르바이젠 수처리 사업뿐 아니라 양질의 공사 프로젝트도 조만간 수주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중장기적으로는 2018년까지 해외플랜트 사업비중과 건설비중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재구성할 계획이다. 한라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지난해 사명(옛 한라건설)을 변경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 태국 와라왓튠냐폴과 연산 24만t 규모의 펄프용 우드칩 생산시설 인수계약을 체결하며 바이오에너지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일본 메이덴샤와 세라믹 멤브레인의 제품공급 계약을 체결해 수처리 특화분야의 신규사업도 추진하고 나섰다. 한라는 올해 수주목표 2조5000억원 가운데 해외사업 수주목표를 7500억원으로 설정하고 국내 부동산 경기가 부진한 점을 감안해 주요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해외로 전환해 나갈 방침이다. 앞서 한라는 지난해 페루, 미얀마, 아제르바이잔, 코트디브아르, 리비아에 새롭게 지사를 설립해 해외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올해는 인도네시아에 새롭게 지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한라그룹은 현재 △건설부문에서 (주)한라, 한라앤컴, 한라개발 등 5개 계열사 △자동차부문에서 (주)만도,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한라스태플 등 5개 계열사 △유통서비스는 한라마이스터와 목포신항만운영 △신규사업부문은 한라아이앤씨 등 총 13개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2008년 대기업집단에 처음 진입한 이후 재계 순위(자산 기준)가 당시 53위에서 지난해 39위로 수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재계에서 자산순위가 더 많이 오른 기업은 없다.(건설회사 부영이 14단계 상승으로 동일)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재계 서열 12위였던 위상을 생각하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정몽원 회장 자신도 1997년 한라그룹 회장직에 올랐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룹이 공중 분해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8년 주력 계열사였던 만도(옛 만도기계)를 재인수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이후 건설부분의 실적악화, 유동성 위기로 아직 회사 경영이 확실하게 안정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설부문 회복이 과제 다만 건설부문의 1분기 흑자 전환과 함께 주요 계열사들이 성공적으로 주력,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그룹 전체의 미래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만도는 지난 5월부터 미국 조지아 주물공장을 가동해 자동차 제동장치에 포함되는 하우징 캐리어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조지아 공장도 ESC(주행안정제어장치)를 생산해 이를 현대기아차 미국공장과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로 공급할 예정이다. 또 유럽시장을 겨냥해 설립한 폴란드 공장이 5월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제동장치, 내년에는 조향장치와 전자제어 장치도 생산 제품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앞서 만도는 미국과 독일, 인도에 R&D센터를 구축하는 등 글로벌 특화전략을 착실하게 추진해 왔다.
만도 관계자는 “지난해 인수한 독일 린다우 연구센터는 디지털 신호처리 개발 허브로 육성하고 인도 뉴델리의 MSI연구소는 차량 전자화에 대비한 소프트웨어 연구소로 특화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미래 전략을 밝혔다. 유통서비스 계열사인 한라마이스터도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를 앞세워 유럽과 중국, 미국 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만도풋루스는 최근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 면세점에 입점한 데 이어 중국과 독일에서도 전기자전거를 수출하기 위해 현지 유통업체와 계약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채수환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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