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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탈것의 대안 ‘E-Bike’
입력 : 2013.06.27 11: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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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달에 발을 얹으니 중저음의 모터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예상치 못한 추진력은 마치 자동차 게임의 부스터 장치가 작동된 듯 했다. 핸들 왼쪽에 자리한 계기판에 눈을 돌리니 속도는 금세 20km/h를 넘어섰다.
‘자전거의 적’ 오르막 주행성능 시험을 위해 남산타워로 향했다. 언덕길을 향해 조금씩 페달을 밟았다. 일반자전거로 오르기 힘든 25도 넘는 언덕길도 17~18km/h 속도로 평지처럼 오를 수 있었다. 뜨거운 초여름 날씨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버스로 무심코 지나치던 길가에 꽃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알톤 이알프스 ‘UNIQUE 20’ 체인없는 자전거 ‘만도 풋루스’
가장 앞선 지역은 단연 유럽이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영국 등은 전기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충전소, 보관소 확충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며 전기자전거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유럽 내에서도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는 전기자전거의 천국으로 불린다. 독일의 경우 전기자전거 판매량은 2010년 20만대에서 2012년 38만대로 늘어났고 현재 총 130만대의 전기자전거가 시내 곳곳을 누비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자전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넘어섰다.
네덜란드의 경우 전기자전거의 한 주당 평균 이동거리는 31km로 일반자전거 18km를 훌쩍 넘어섰다. 전체 자전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6%를 넘어섰다. 네덜란드에서 판매되는 전기자전거의 평균가격은 1800유로(약 270만원)가 넘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교통난을 피해 전기자전거로 출근하는 ‘자출족’을 자처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정부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에서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배기가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은 전기자전거를 비롯해 전기를 사용하는 교통수단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소비세를 100% 면제해주고 있다. 이에 더해 중앙과 지방정부에서 보조금을 중복 지급하며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덕분에 중국에서 지난해 전기자전거는 약 3000만대가 팔렸고 2015년에는 1억5000만대의 전기자전거가 거리를 활보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전기자전거 종주국이자 2000년 초반까지 세계 전기자전거 업계를 주도한 일본 역시 연간 40만대를 넘는 판매량을 올리며 지속적인 성장 추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자전거 업체들은 전기자전거를 ‘차세대 먹거리’로 규정하며 활발한 기술개발과 신제품 출시에 나섰다. 알톤 스포츠, 삼천리 자전거 등 대표적인 자전거 제조 기업들은 100만원대 초반 양산형 전기자전거를 출시하며 판매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완성차 브랜드와 자동차 부품업체들까지 전기자전거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자동차는 순수 전기모터의 힘으로 구동하는 자전거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자체기술로 생산한 체인 없는 신개념 전기자전거 ‘만도풋루스’를 시장에 선보였다. 만도풋루스는 자체개발한 하이브리드 기술이 탑재돼 페달은 존재하지만 추진장치로서 역할은 하지 않고 배터리 충전에 사용된다.
장·노년층 위주였던 전기자전거 소비계층도 변했다. 20~30대 젊은 층이 밀집한 청담동, 압구정 가로수길 등에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전기자전거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많은 회사들이 몰려있는 광화문, 테헤란로에는 슈트차림의 ‘자출족’도 상당히 늘었다. 삼천리 자전거 측은 올해 국내 전기자전거 판매량이 2만대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대중의 전기자전거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는 추세이나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정책미비가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돼 있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성인이나 학생들의 경우 오토바이처럼 별도의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나 인도를 이용할 수 없다.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다수의 유럽국가나 중국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전기자전거 보조금 제도도 찾아 볼 수 없어 가격부담은 여전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한 행정안전부는 몇년전부터 지식경제부와 함께 ‘자전거 이용 활성화법’ 일부 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어 업계 등의 의견을 수렴해 법안 손질에 나섰다. 그러나 관련법인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은 아직까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삼천리자전거 ‘팬텀시티’
현재 출시된 전기자전거들을 살펴보면 업체별로 최대 주행거리는 40~70km로 다르게 표기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성인남성이 한번 충전해 20~25㎞를 주행할 수 있다. 일반자전거와 달리 계기판이 설치돼 주행거리와 속도, 배터리 잔량, 누적주행거리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전기자전거 업체들은 스마트폰과 연동해 전기자전거 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묵직한 배터리를 탑재하기 때문에 무게는 일반자전거에 비해 다소 무거운 편이다.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최고시속은 25km 미만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계기판의 속도가 25km가 넘어가면 자동으로 동력장치는 중단된다. 전기자전거는 제조방식에 따라 완성형과 키트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완성형은 말 그대로 제조업체에서 처음부터 전기자전거를 위한 설계를 해 완성형으로 제작한 것으로 안정성이 높다. 반면 키트형은 일반자전거에 전기자전거용 키트를 달아 만든 형태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전기자전거를 만들 수 있는 반면 완성형보다는 성능이 떨어지고 A/S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구동 방식에 따라 전기자전거를 분류하면 스쿠터처럼 레버를 돌려 모터를 구동하는 스로틀(Throttle) 방식과 페달 어시스트 기능의 파스(PAS·Power Assist System) 방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스로틀 방식은 간단한 조작이 가능하지만 페달링이 없어 배터리가 금방 소모되는 단점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파스 방식은 페달을 밟아야 구동된다. 전동모터에 센서가 내장돼 페달에 가해지는 힘을 센서가 감지하고 페달링에 가해지는 힘에 비례해 어시스트를 해준다. 페달링을 해야 하므로 좀 더 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고 배터리 효율도 높은 편이다. 스로틀에 비해 같은 배터리 양으로 먼 거리를 갈 수 있고 페달링에 비례해 속도가 증감하므로 더 안전하다.
행정안전부의 전기자전거 관련 세부적 방향은 파스 방식만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스로틀 방식만을 택한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최근 양산되는 전기자전거 모델들은 파스와 스로틀 방식을 함께 설치한 모델이 많다.
전기자전거로 험난한 출퇴근 코스 체험기
전기자전거에 대한 대표적인 궁금증이다. ‘백언불여일행(百言不如一行)’이라고 직접 출퇴근길을 활용해 전기자전거의 성능을 체험해 봤다. 자전거는 기자의 체형(185cm, 73kg)을 고려해 깜찍한 미니벨로보다는 가격 대 성능비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파스 방식의 듬직한 알톤 이알프스 매그넘26를 선택했다.
우선 자전거가 크게 무겁지 않았다. 18.2kg으로 한손으로 들고 계단을 올라갈 수도 있었다. 출근길 코스는 용산동2가에서 중구 충무로역 매경미디어센터까지 총 4km 내외로 길진 않으나 30도에 가까운 경사로가 1km 가까이 이어져 오르막 성능을 알아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코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돼 출발과 함께 페달 어시스트 단계를 최대치로 올렸다. ‘우웅’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추진력이 급격히 높아진다. 페달은 헛도는 느낌으로 움직이지만 계기판의 속도는 금세 24km를 가리키고 있다. 경사가 점차 심해지면서 속도는 조금씩 느려졌다. 허나 일반 MTB 자전거로 끌고 올라가기조차 힘들었던 언덕길도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1단계 에코모드에서도 몇 초 지나지 않아 25km에 도달했고 내리막 코스에서는 동력장치는 의미가 없었다. 첫날 출근길에 소요된 시간은 23분. 브레이크 성능 시험과 코스를 익히느라 몇 차례 정차를 했던지라 다소 시간이 지체됐다. 날이 지날수록 시간이 단축돼 ‘과속 없이’ 15분대로 줄었다.
주말에는 최고시속을 확인하기 위해 한강변에 나갔다. 평소 자전거를 타지 않고 겸손한 하체를 소유한 기자가 내리막길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은 결과 시속 35km를 넘어섰다. 물론 전기자전거는 25km가 넘으면 자동으로 동력장치가 정지되지만 내리막의 특성과 페달의 힘을 통해 더 높은 속도를 내는 것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열흘간 배터리를 완전 충전한 후 평균 주행거리를 측정해 본 결과 평균 20~25km를 운행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주행거리가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러시아워를 피해 여유로운 출근길에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자전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안전한 보관 장소가 구비돼 있다면 10km 내의 출퇴근 용도로 전기자전거는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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