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orts Marketing]남자는 왜 메이저리그에 열광할까

    입력 : 2013.04.08 15: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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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야구를 지배해온 세 가지 신화가 있다. 쿠바야구, 일본 고시엔대회, 미국 메이저리그다. 과거 쿠바야구는 국제무대에서 감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일본 고시엔대회는 수천 개 학교가 참가하는 학원야구의 상징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는 야구의 신들이 모여 플레이하는 꿈의 리그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 한국이 쿠바를 꺾으며 거대한 벽에도 균열이 생겼다. 여기에 주말리그가 시작되며 한국 고교야구도 일본처럼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선진 시스템이 갖춰졌다. 하지만 여전히 메이저리그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꿈의 무대’로 남아 있다. 박찬호에 이어 류현진이 그 꿈의 무대에 서기 위해 20년 만에 도전장을 내밀며 한국에선 또 다시 메이저리그 바람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라이프 “미국의 어린이가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기 싫어하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영화 <꿈의 구장>에서 주인공 킨셀라(케빈 코스트너)는 흥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과장이 아니다. 미국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글러브를 낀 채로 공을 주고받는 캐치볼은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어느 동네, 어떤 공원, 어느 집 앞마당을 가도 부자(父子)의 캐치볼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캐치볼은 한국 부자가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며 유대감을 쌓는 것과 같은 의식이다. 이렇듯 야구는 미국인의 삶에선 스포츠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다. 야구가 미국인의 삶에서 생활이 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역사다. 1750년대부터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인들 사이에서 크리켓(Cricket)을 변형한 라운더즈(Rounders)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라운더즈는 1780년대에 이르러 베이스볼(Baseball)로 이름을 바꾸고, 1857년 헨리 카드웍에 의해 규칙이 정해지자 곧바로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는다. 1869년엔 최초의 프로야구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창단된다. 이때부터 미국 전역엔 프로야구팀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마침내 1875년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가 출범하며 야구는 상업스포츠로 성장한다. 메이저리그는 내셔널리그의 뒤를 이어 탄생한 아메리칸리그를 통칭하는 말로, 미국 프로리그 가운데 메이저리그 역사가 가장 길다.

    두 번째는 야구가 곧 미국의 정신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유명작가 마크 트웨인은 “야구는 박력, 적극성의 상징이자 맹렬하게 벼락처럼 휘몰아치는 19세기의 전투적인 정신을 드러낸다”며 “야구야말로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의 상징”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세 번째는 미국 역사에서 야구가 단순히 볼거리를 넘어 미국인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남북전쟁과 대공황, 제1·2차 세계대전과 9·11 테러가 터졌을 때, 야구는 슬픔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안식이 돼줬다. 덧붙여 미국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됐다. 그런 이유로 메이저리그는 전쟁이나 테러가 터졌을 때도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메이저리그를 ‘불황을 알지 못하는(Recession-Proof) 산업’이라고 부르는 것도 미국에서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라이프(생활)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미 메이저리그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야구. 그 가운데 메이저리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리그다. 규모부터 다르다.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는 700만명 관중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흥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같은 해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총 관중 7485만9268명을 기록했다. 아메리칸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은 3만3000명, 내셔널리그 평균 관중은 4만1000명으로 경기당 평균 관중 1만명 대의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된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한 시즌 홈 관중 356만명을 기록하며 관중 동원 전체 1위에 올랐다. ‘전통의 명문’ 뉴욕 양키스는 354만명으로 2위, 류현진의 소속팀 LA 다저스는 332만명으로 전체 5위에 올랐다. 필라델피아와 뉴욕 관중만 합쳐도 한국 프로야구 한 시즌 총 관중을 훌쩍 넘어서는 셈이다.

    야구장에만 관중이 몰리는 게 아니다. TV 앞에도 많은 야구팬이 몰린다. 당연한 이유로 메이저리그 TV 중계권료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과 FOX, TBS와의 계약을 통해 연간 7억2500만달러의 중계권료 수입을 올렸다. 이 세 방송사는 정규 시즌 121경기와 월드 시리즈 7경기를 더해 총 128경기를 중계했다.

    단순 계산한다면 경기당 중계권료가 무려 566만달러(방송사당 188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것도 과거의 일이다. 지난해 8월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ESPN에 2014년부터 8년간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내주는 조건으로 56억달러(약 6조4000억원)를 받기로 합의했다. 연평균 7억달러로, 종전 ESPN이 지급하던 연평균 3억6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FOX, TBS와도 비슷한 계약을 맺어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연간 15억달러의 중계권료를 벌어들일 계획이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받는 중계권료는 전국방송에 해당할 뿐이다. 각 구단이 지역 케이블채널로부터 받는 중계권료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스포츠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지역 케이블채널로부터 받는 중계권료 총액이 9억300만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거두는 전국방송 중계권료와 각 구단이 따로 챙기는 지역케이블채널 중계권료를 합치면 해마다 24억달러로, 이는 미국 방송사 NBC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중계권료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지불한 20억달러보다 4억달러가 많은 금액이다.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TV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모두 합해 지난해 약 260억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무대인 만큼 선수들의 몸값도 천문학적이다. 지난해 8월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는 30개 구단에 소속된 944명의 연봉을 조사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메이저리거들의 평균 연봉은 320만달러(약 34억7000만원)로, 일본 프로야구 1군 평균 연봉보다 8배나 높았다. 한술 더 떠 메이저리거 한 명의 평균 연봉은 넥센 선수단 연봉 총액(40억원)과 비교해 불과 5억3000만원이 모자를 뿐이었다. 최고 부자팀은 뉴욕 양키스였다. 선수단 평균 연봉이 688만달러(약 74억원)나 됐다. 더 놀라운 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연봉 총합이 무려 29억4000만달러(약 3조1957억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3172억9086만원과 비교하면 10배, 한국 프로야구의 422억8400만원보단 75배나 큰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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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메이저리그 마니아 왜 이렇게 많지? 한국에 메이저리그가 소개된 건 1970년대다. 지상파 채널 2번에서 방영한 주한미군방송 AFKN 덕이었다. AFKN에선 주말 오전 메이저리그 경기를 자주 방송했다.

    애초 미군을 상대로 한 방송이었지만, 어느새 한국 야구인들과 야구팬들이 골수 시청자층을 이뤘다. 일부 열성팬은 미군부대 인근 책방에서 <성조지(Stars&Stripes)> 등을 구해 최신 메이저리그 정보를 접했다. 김인식 전 한화 감독도 AFKN 메이저리그 중계의 열성팬이었다. 김 전 감독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은 우리완 차원이 달랐다”며 “한국 투수들의 최고 구속이 시속 140km 초반일 때,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시속 150km 강속구를 우습게 던졌다”고 회상했다.

    무엇보다 김 전 감독은 “수비에서도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처리하고, 타자들도 홈런을 펑펑 치는 걸 보고, 메이저리그는 우리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리그라 생각했다”며 “감독이 돼서도 늘 메이저리그를 동경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소수의 마니아들이 즐기던 메이저리그는 그러나 1994년 한양대생 박찬호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으며 대중적 볼거리가 됐다. 특히나 IMF가 한창이던 1990년대 후반. 거구의 메이저리그들을 삼진으로 처리하는 박찬호를 보며 한국인들은 큰 위안을 받았고, 어느덧 야구팬들은 자국 프로야구보다 메이저리그를 더 자주 보게 됐다. 박찬호 이후 김병현, 서재응, 최희섭 등 유망주들이 줄줄이 미국무대에 도전하며 2000년대까지 메이저리그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박찬호의 은퇴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부진이 겹치며 2010년 이후 메이저리그는 조금씩 인기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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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메이저리그 예상 활약도 박찬호가 전성기를 달리던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꽤 됐다. 그러나 올시즌 빅리그 무대를 밟는 한국인은 추신수(신시네티)와 류현진(다저스)뿐이다. 그나마 류현진이 올시즌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기에 망정이지 몇 년간 추신수가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거였다.

    올시즌 추신수의 화두는 ‘부활’이다. 2008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기 시작한 추신수는 2009, 2010년에 2년 연속 타율 3할과 85타점 이상, ‘20(홈런)-20(도루)’를 동시에 기록했다. 높은 타율과 타점생산력, 빠른 발을 동시에 갖춘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타자로 우뚝 섰다. 그러나 2011년 부상으로 주춤하더니 지난해 155경기에서 타율 2할8푼3리, 16홈런, 67타점을 기록하며 2010년까지의 상승세를 잇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일까. 올시즌 신시내티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추신수는 ‘어게인 2010’을 외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서 만난 추신수는 “지금 몸 상태라면 2010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신시내티 팀 분위기도 좋아 적응하는데 전혀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추신수는 올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가 된다.

    대박이 눈앞에 있는 셈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최적의 컨디션과 부상 탈출, 여기다 예비 FA신분이라는 장점들이 더해져 올시즌 추신수는 최고의 성적을 낼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지난해 연말 6년에 최대 40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은 정규 시즌을 4선발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다저스 관계자는 “우완 선발요원 잭 그레인키의 부상으로 선발진 공백이 생겼다”며 “애초 5선발을 예상했던 류현진이 4선발로 배치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류현진은 ‘데뷔 첫 시즌 10승, 평균자책 3점대 중후반대를 기록할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류현진의 국내 인기와 주목도가 추신수보다 몇 배나 높다는 걸 고려할 때, 류현진이 10승 이상을 거둔다면 메이저리그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Key point 마크 트웨인은 “야구는 박력, 적극성의 상징이자 맹렬하게 벼락처럼 휘몰아치는 19세기의 전투적인 정신을 드러낸다”며 “야구야말로 개척정신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의 상징”이라 1990년대 후반. 거구의 메이저리그들을 삼진으로 처리하는 박찬호를 보며 한국인들은 큰 위안을 받았고, 어느덧 야구팬들은 자국 프로야구보다 메이저리그를 더 자주 보게 됐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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