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종열 기자의 혼맥지도]⑬ 凡현대그룹…3세 경영시대 여는 최대 재벌가문

    입력 : 2013.03.07 15: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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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자! 해보기는 했어?” 현대그룹은 창업정신을 강조했다.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도 그랬다.

    범현대가를 일으켰던 故 정주영 창업주는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군사정권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빼고는 모두 창업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또한 현대가는 한눈에 봐도 유난히 굴뚝산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 협력업체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가 1등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1947년 5월 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5년. 라이벌인 삼성그룹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이내 1위로 우뚝 섰고,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기업집단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는 87조원, 계열사는 40여개 사였다.

    이후 그룹이 쪼개지고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재계에서는 이를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 현대백화점,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현대기업금융 등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해졌고, 기업규모도 과거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공정위 기준 250조원 이상의 자산규모(6개 그룹 자산규모 총합)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분리가 됐지만 여전히 범현대가는 한 가족이다. 정 창업주가 강조했던 ‘하면 된다’는 ‘현대정신’을 모든 계열그룹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결과만 중시하는 비합리적이란 말도 듣지만, 현대맨들은 “맨바닥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이를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강원도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대한민국 최고의 부를 이루고, 10여개에 가까운 대기업집단을 일궈낸 ‘경영의 신’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가문을 살펴봤다.

    대가족인 정주영 창업주
    대가족인 정주영 창업주
    담백한 혼맥, 자녀들 대부분 연애결혼 현대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정 창업주가 자식들의 연애에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왕회장’으로 불린 그 역시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인 故 변중석 여사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 했다.

    16세 나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섯 살 연상의 고향총각에게 시집온 변중석 여사는 현대가의 산증인이다. 젊은 시절 남편이 사준 재봉틀을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평생을 근검과 절약, 후덕함으로 지내와 ‘현대가의 대모’라는 상징이 됐다.

    정 창업주는 새벽 5시 ‘밥상머리 교육’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변 여사는 새벽 3시 반부터 동서, 며느리들과 함께 아침 준비를 했다. 또 자식교육에 엄격했던 정 창업주가 손자들의 자가용 등교를 알고 난 후 역정을 내자 이를 막아주기도 했다. 정 창업주는 이런 변 여사를 “무뚝뚝하지만 늘 한결같고 변함없어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창업주와 변 여사는 슬하에 9남매를 뒀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많지 않다. 굳이 꼽자면 5남인 故 정몽헌 현대아산 전 회장과 6남인 정몽준 국회의원 정도다. 정몽헌 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인 정은 씨와, 정몽준 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인 영명 씨와 결혼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지만, 현대가의 혼맥이 담백한 것은 창업주의 성격과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둣가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까지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강조했다. 권력이나 부를 결국 싫어하진 않았지만, 혼사 줄까지 댈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가풍이 3세로 내려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담백했던 2세와 달리, 3세들의 사돈가문이 화려해지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그룹에서 일하다 개인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 임원은 “3세 역시 대부분 연애결혼을 통해 사돈을 맺었다. 하지만 평범했던 1, 2세들과 달리 최고의 교육환경과 부촌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재벌가 자제들과 친분을 맺게 돼 화려한 혼사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8월 정대선 씨의 결혼식에서 하객을 맞는 현대가 가족들. 왼쪽부터 정몽준 의원, 정몽윤 현 대해상 회장, 정일선 BNG스틸 대표, 故 이정화 여사, 이행자 여사, 정대선 씨
    2006년 8월 정대선 씨의 결혼식에서 하객을 맞는 현대가 가족들. 왼쪽부터 정몽준 의원, 정몽윤 현 대해상 회장, 정일선 BNG스틸 대표, 故 이정화 여사, 이행자 여사, 정대선 씨
    먼저 떠난 장남과 4남

    정 창업주는 생전에 여덟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뒀다. 이들을 모두 성혼시켜 8명의 며느리와 1명의 사위를 봤다. 또한 직계 친손자만 25명에 달한다. 엄청난 대가족이다.

    가족이 많은 만큼 기쁨도 많았지만 아픔도 있었다. 정 창업주의 장남과 4남이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장 아끼던 동생 역시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다. 이들의 제사는 모두 4월에 집중돼 있는데, 이런 이유로 현대가 며느리들에게 4월은 ‘제사의 달’로 불리기도 한다. 장남 故 정몽필 씨는 한창 때인 49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이었던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힘쓰다 1982년 4월 울산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와 충돌해 사망했다. 몽필 씨는 두 딸인 은희-유희 씨와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 씨를 미망인으로 남긴 채였다.

    몽필 씨가 떠난 한 달 뒤, 정 창업주는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 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 씨의 처남, 즉 이양자 씨의 친동생이다. 하지만 이양자 씨마저 1991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큰딸 은희 씨는 1995년 8월 현대전자 사원이던 주현 씨와 결혼했다. 이후 미국에서 머물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 2010년 8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의 현대IHL의 주식을 인수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현대IHL의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둘째딸 유희 씨는 김석원 쌍용그룹 전 회장의 장남 지용 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고 있다.

    2남인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형의 죽음으로 장남 역할을 도맡아 왔다. 조카인 유희 씨의 결혼식 때 부모 역할을 한 이도 몽구 씨 내외였다. 현대정공(현 모비스) 사장 시절 ‘갤로퍼 신화’를 만든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그룹을 이끌고 있다. 2000년 자동차전문그룹으로 출범한 지 10년 만에 세계 6위의 기업으로 올라섰다.

    몽구 씨는 故 이정화 여사와 결혼해 3남 1녀를 두었다. 큰딸 성이 씨는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故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 씨와 결혼했다. 성이 씨는 현대차그룹 계열의 이노션 고문을 맡고 있다. 둘째 딸 명이 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 씨와 가정을 꾸렸다. 태영 씨는 현대차그룹의 금융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대표다. 해비치리조트에서 일하고 있는 셋째 딸 윤이 씨는 미국 MBA 출신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과 결혼했다. 외아들인 의선 씨는 현대기아차 부회장으로 기획, 재무, R&D 등을 총괄하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삼표 회장의 큰딸인 정지선 씨다. 포스코 박태준 총재의 아들인 박성빈 사운드파이프코리아 대표와는 동서지간이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유통명가의 주인공이다. 형인 몽구 씨와는 경복고-한양대 동문이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 씨의 딸 경숙 씨와 결혼했다. 당시 경숙 씨는 정 창업주의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아들은 각각 회장과 사장으로 경영을 맡고 있다. 큰 아들 정지선 씨는 故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 씨와 결혼했다. 둘째인 정교선 씨는 대원강업 허재철 회장의 큰딸인 승원 씨와 결혼했다.

    정 창업주의 유일한 딸인 정경희 씨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재원이지만, 바깥활동은 잘 하지 않는다. 대신 남편인 정희영 선진종합 회장의 활동이 활발하다. 정희영 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수완을 보여 창업주의 사위가 됐다. 이후 희영 씨는 선진해운을 갖고 독립했으며, 천마산스키장(현 스타힐리조트)을 운영하고 있다.

    부인인 정경희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외아들인 재윤 씨는 선진종합의 경영을 맡고 있으며, 큰딸인 윤미 씨는 이건창호 박승준 사장과, 작은 딸인 윤선 씨는 남영비비안 남석우 회장과 결혼했다.

    4남 故 정몽우 씨는 숙명여대 최고 미인으로 알려졌던 이행자 씨와 결혼했다. 40대에 현대알루미늄을 회장직을 맡았지만, 지병에 시달리다 1990년 4월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이행자 씨의 오빠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1992년 대선 당시 정 창업주의 경호 책임을 맡았던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이다. 남겨진 유족들은 정몽구 회장이 거뒀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BNG스틸(구 삼미특수강)에 입사시킨 것. 이 중 큰 조카인 정일선 씨는 구자엽 LS산전 회장의 딸 은희 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다. 둘째 조카인 문선 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 씨와 결혼했다. 셋째 조카인 대선 씨는 KBS 전 아나운서 노현정 씨와 결혼했다.

    왼쪽부터 정몽구 회장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삼녀인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리 조트 전무,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대표
    왼쪽부터 정몽구 회장 장녀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삼녀인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리 조트 전무, 셋째 사위인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대표
    젊은 날의 정주영 창업주와 정몽구 회장
    젊은 날의 정주영 창업주와 정몽구 회장
    유독 화려한 MH, MJ 혼맥

    5남 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비운의 황태자다. 1983년 현대전자(구 하이닉스)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면서 정 창업주의 신임을 받았다. 1998년 그룹 공동회장에 올랐으며, 2000년에는 형님들을 제치며 범현대그룹의 총괄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대북송금’ 사건에 휘말리면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서울 계동사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부인인 현정은 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현정은 씨는 정 창업주가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 유명하다.

    현정은 씨의 큰딸인 지이 씨는 현대U&I 전무로 일하던 지난 2011년 외국계금융사에서 일하던 신두식 씨와 결혼했다. 신씨는 故 신현우 전 국제종합기계 대표와 신혜경 서강대 명예교수 부부의 차남이다. 둘째 딸인 정영이 씨는 현대U&I에 재직 중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해 현대그룹 경영에 나서게 된 현정은 회장은 그야말로 ‘여장부’다. 재계에서는 “사업가 집안의 유전자를 타고 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 현 회장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호남 거부’로 알려진 현준호 씨의 손녀딸이다. 아버지인 현영원 신한해운 대표가 바로 현준호 씨의 아들이다. 현 회장의 외가 쪽도 잘 알려진 기업가 집안이다. 친정어머니인 김문희 여사는 故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로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 현 회장의 외삼촌들이다. 또한 현 회장의 언니인 일선 씨는 故 유특한 유유산업 창업주의 아들인 유승지 홈텍스타일코리아 회장의 부인이다. 유특한 창업주의 형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다. 또 현 회장은 이 외가를 통해 숙부인 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가문과 겹사돈을 맺고 있다. 어머니인 김문희 여사가 정세영 회장의 사돈인 김석성 전 전방 회장과 사촌관계이기 때문이다. 김석성 전 회장의 장남인 종엽 씨는 정세영 회장의 둘째 딸인 정유경 씨와 결혼했다.

    6남인 정몽준 의원은 기업인이 아니라 정치인에 더 가깝다. 서울대와 미국 MIT 경영대를 졸업했으며, 현대중공업그룹의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몽준 씨는 유학시절 부인인 김영명 씨를 만나 결혼했다. 영명 씨는 현재 재단법인 예올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아들인 기선 씨와 남이·선이, 늦둥이인 예선 등 2남 2녀를 두고 있다.

    소박한 현대가에서 몽준 씨의 처가는 유독 눈에 띈다. 故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사위이기 때문이다. 김동조 전 장관은 부인인 송두만 여사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뒀는데, 이 중 막내딸이 바로 몽준 씨의 부인인 김영명 씨다.

    화려한 김 전 장관의 가문을 살펴보면, 큰 딸인 김영애 씨는 글로벌 금융그룹인 모건스탠리의 미국 부사장을 지냈다. 남편은 제너럴 마리타임 대표인 최융호 씨다. 둘째 딸인 영숙 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 전 쌍용차 사장과 결혼했다. 손 전 사장은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사장을 사위로 두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장남인 김대영 해오실업 대표는 박봉인 씨와 결혼했다. 장녀인 김성윤 씨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유도선수 장성호 씨와 결혼해 눈길을 끈다. 또 3녀인 김영자 씨는 GS가문의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아버지는 故 허정구 회장으로 제일제당, 삼성물산의 사장을 지냈다. 허광수 회장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다섯째이자 차남인 김민영 한국외대 교수는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인 정다미 씨와 결혼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정다미 씨를 통해 신세계그룹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정다미 교수의 아버지는 정재덕 전 신세계그룹 고문인데, 이명희 회장의 남편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의 형이다. 즉 정재덕 씨가 이명희 회장의 시아주버님인 셈이다.

    다시 정 창업주의 2세들로 돌아오면, 보험강자로 불리는 7남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이 있다. 그는 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 씨와 결혼해 정이 양과 경선 군을 두고 있다. 8남인 몽일 씨는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하지만 경영난을 겪으면서 형인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에 흡수됐다. 몽일 씨는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 씨와 결혼해 현선 군과 문이 양을 두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2010년 11월 23일 현대제철 제2 고로 화입식에서 첫 불씨를 심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2010년 11월 23일 현대제철 제2 고로 화입식에서 첫 불씨를 심고 있다.
    그룹 분리 부른 ‘왕자의 난’ 2000년 ‘현대가 왕자의 난’은 범현대가를 핵분열 시킨 결정적인 계기였다. 1999년 12월 정몽헌(MH) 회장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발령 났기 때문이다. 이에 MK라인의 반발이 시작됐고, 정 창업주가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한다”는 육성 유언이 공개되기까지 석 달 동안 치열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육성 테이프를 듣고 깨끗이 승복,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후 정 창업주의 2세들인 ‘몽’자 돌림 형제들은 모두 6개의 소그룹 체제로 계열분리했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근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현재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경영), 정몽준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윤 회장의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정몽일 회장의 현대기업금융 등이다. 그러나 현재 정몽일 회장의 현대기업금융은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로 흡수돼 모두 다섯 개의 기업집단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형제의 난 과정에서 아예 범현대계열에서 빠져 나간 회사들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범현대가의 모태인 현대건설이었다. 현대건설은 2001년 자금난에 빠지면서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은 범현대계열에서 계열분리됐다. 하지만 2010년 6월 채권단에 의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재개됐고, 우여곡절 끝에 2011년 1월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에 인수됐다.

    국내 최대 기업으로 손꼽히던 현대종합상사와 정유 4강 하나인 현대오일뱅크 역시 유동성 위기로 인해 범현대 계열에서 분리된 후 최근에서야 현대중공업그룹의 품에 다시 안겼다. 반면 완전히 범현대 계열에서 떠난 기업들도 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인수하며 덩치를 불렸던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사업부문별로 쪼개져 분리매각되는 고통을 겪었다. 정보통신부분이 팬택&큐리텔로 분사돼 매각됐고, LCD 사업부는 현대이미지퀘스트로 분사돼 중국 기업에 매각됐다.

    이밖에도 현대멀티캡과 현대시스콤, 현대네트워크, 현대디지털테크 등이 현대전자에서 분리 매각됐으며, 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꾼 반도체 부분 역시 지난 2012년 SK그룹에 인수됐다. 이밖에도 건설업계 10위권의 고려산업개발은 두산그룹에 인수돼 사명을 두산건설로 바꿨으며, 해수담수화 세계 1위 기업인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역시 두산의 품에 안겼다. 현대투자신탁(현 푸르덴셜증권) 등 범현대계열 금융사들은 대부분 외국계 기업에 매각됐다. 그러나 정주영 창업주의 2세들에 의해 쪼개졌던 범현대가는 이제 과거의 영광을 거의 되찾은 모습이다.

    정주영 창업주가 기반을 닦고 2세들의 활약으로 전문화를 이룬 범현대가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글로벌 감각을 갖춘 3세들의 시대가 곧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백화점그룹은 정몽근 회장의 자제들인 지선-교선 형제가 경영하고 있고, 맏형격인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부회장도 3세 경영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유학을 통해 국제감각과 경영을 제대로 배운 정주영 창업주의 3세들이 경영전면에 나서는 시기가 범현대가의 또 다른 비상의 시기가 될 것”이라며 “3세 경영을 나선 범현대가의 행보를 눈여겨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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