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ecutive]싸이가 될 수도 없고 꼰대는 더욱 아니고…‘별’ 단 임원의 고민

    입력 : 2013.02.04 14:28:58

  • 사진설명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중견기업에 입사한 김 대리는 올해로 입사 4년차다. 조직생활의 쓴맛과 단맛을 제대로 이해했노라고 자부하던 그는 최근 입사 1년차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요즘 아이들의 당돌함을 제대로 경험했다. “이번에 별단 김 이사 스타일 너무 꼰대 아냐? 40대 후반인데 넥타이가 그게 뭐냐. 한 달 내내 같은 구두, 같은 양복, 아침이면 옷에서 방향제 냄새가 얼마나 독한지. 우리 회사 임원 될라믄 청백리라도 돼야 하는 거냐.”

    “청백리는 이미지라도 꼿꼿하지. 머리에 비듬은 어떻고. 더러운 걸로 치면 누가 이 상무 얼굴이나 세팅해줬으면 좋겠다. 피부과 가서 관리 한번 받으면 해결될 걸 얼굴이 그게 뭐냐. 미팅 따라 나가면 얼마나 창피한지.”

    한참 동안 임원들 뒷담화에 열을 올리던 후배들은 어떤 임원이 최고인지 나름 순위를 정하곤 개인사로 화제를 돌렸다. 술자리에선 공장 얘기 하지 말라던 선배에게 공장이 잘 돌아가야 술맛도 좋아진다며 아양 떨던 김 대리. 업무 스타일 대신 ‘그냥’ 스타일만으로 가장 멘토스러운 임원을 꼽는 후배들이 처음엔 눈꼴사나웠지만 “임원은 회사의 얼굴 아니냐”는 물음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래저래 얼굴 벌게지고 술자리가 파할 무렵, 제대로 카운터펀치 하나가 날라 왔다.

    “선배, 스타일도 트렌드잖아요. 회장님이 트렌드를 앞서가야 살아남는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던데, 일상이 뒤처지면 어떻게 트렌드를 좇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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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이미지, 불룩한 배는 그만 비단 김 대리가 소속된 중견기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매번 반복되는 식상한 멘트지만 ‘수년간 지속돼 온 경기불황’에 어느 해보다 각 기업 리더들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임원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직장인들의 영원한 화두이자 로망 아니던가.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임원은 어떤 역할을 하는 직장인일까.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히타케야마 요시오는 자신의 저서 <회사가 끝까지 붙잡는 임원>에서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임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 임원은 먼저 업무적인 측면과 인간적인 측면에 모두 노력을 기울이며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서는 안 되며 양쪽의 성과가 상호 이익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조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업무성과도 중요하고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도 놓쳐선 안 된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 스타일리시한 임원이 속속 등장하며 주목받고 있는 2013년형으로 풀어서 이야기하면, 누구보다 앞서 현 트렌드의 장단점을 파악해 그보다 앞선 트렌드로 업무성과를 높여야 한다. 물론 어렵다. 50대 중반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많지 않은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싸이가 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꼰대도 될 수 없다”며 “젊은 세대를 알아야 젊게 경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경향은 실제 경영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국내 대기업의 임원 스타일이 정장과 함께 세련된 캐주얼, 이른바 젊은 오빠 스타일로 변신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참가한 국내 대기업 임원들의 옷차림에선 종종 넥타이를 푼 모습이 목격됐다. CES 개막에 앞서 열린 삼성전자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체크무늬 재킷과 붉은 색 행커치프로 눈길을 끈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몸에 붙는 옷을 입어야 몸이 긴장하고 혁신이 온다”며 다른 임원들에게 주름 없는 바지를 권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연말연초 인사시즌엔 대기업이 밀집한 도심 곳곳에서 다이어트 열풍이 불기도 했다. 자기관리가 우선 덕목으로 꼽히며 각 기업 임원 대상자 중 배 나온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후문이다. 오죽하면 직장인들 사이에 “외부인사에 밀려, 줄 잘못 서 떨어져, 하다하다 마지막엔 나온 배 때문에 임원되긴 글렀다”는 푸념이 돌기도 했다. 또 하나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금기 중 하나는 흡연.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매일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임원은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과도 같다”며 “그런 사람 주변에서 향기 대신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도 넌센스지만 담배를 태운다고 왔다갔다하는 모습 또한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Situation 1 SNS는 소통의 보배, BUT 부메랑이 될 수도 있으니 소통과 트렌드에 민감한 CEO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표현명 KT개인고객부문 사장,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박용만 두산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 손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트위터를 즐긴다는 것. 중견 건설업체 A상무도 지난해 초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SNS를 시작했다. 이른바 스타 경영인들의 행보를 무작정 따라한 건 절대 아니다. A상무가 SNS를 시작한 이유는 세 가지. 우선 50대 초반의 나이에 한잔 술로 시작해 거나해지는 회식문화가 부담스러웠다. 직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는 자리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해가 바뀔수록 술로 인한 실수가 염려스러웠다. 젊은 시절엔 전혀 생각지 않았던 건강 문제도 불거졌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소통 문화가 필요했다. 둘째, 더 이상 젊은 나이가 아니라면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다. 건설 분야 특유의 무겁고 억센 이미지 대신 IT문화를 경험하고 접목하는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 셋째, 직원들과 SNS 상에서 직접 나눈 대화를 사장에게 직접 전달하며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는 세심한 면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임원들과 차별화되는 A상무만의 필살기였다. 처음 SNS를 시작하자 사내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동 중에도 휴대폰을 이용해 직원들과 의견을 나눴고, 직원들의 사소한 건의사항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A상무는 그 사안들을 리포트로 작성해 보고하며 개선해 나갔다. SNS를 통한 건의가 하나둘 개선되자 직원들 사이에서 A상무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SNS 상에는 칭송에 가까운 직원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은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언제 그랬었냐는 듯 소리 소문 없이 끝났다. 공식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직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B전무와 C부사장이 고깝게 본 모양이야. 상무 SNS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상형이에요’ 이런 얘기가 꽉 채워졌으니 윗사람들이 가만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사장도 불편했던 모양이야. 비서에게 상무가 SNS에 어떤 말을 남겼는지 자세히 리포팅하라고 했다더라고.”

    영화<몬스터 호텔>
    영화<몬스터 호텔>
    Situation 2 유행어 하나도 콕 짚어 쏙쏙, FUN한 경영 잘 웃고 웃기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기 때문에 웃을 수 있다”고 했던가. 조직의 리더가 전파하는 웃음의 효과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리더의 유머와 여유는 흔히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피격사건 당시 일화가 회자되곤 한다. 피격 후 목숨이 위태로웠던 레이건 대통령은 곁에 있던 낸시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총알이 올 때는 엎드려야 한다는 걸 깜빡했소.” 유머집에나 나올 법한 대화는 병원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응급처치를 위해 달려온 의료진들에게 대통령이 “당신들이 우리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소”라고 말하자, 의사 중 한 명이 “각하! 오늘 만큼은 모두가 공화당원이 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급박한 순간에 찾아온 안정과 여유는 리더의 단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여름까지 중견기업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가을 무렵부터 IT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D대표는 이직 당시 상사로 모시던 E부사장의 조언을 잊지 못하고 있다.

    “상명하복의 기업문화는 이제 구시대 유물일세. 그건 군사문화 아닌가. 자네도 이젠 CEO가 됐네. 부하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업 문화를 가꿔야 하네. CEO와 직원 사이에 벽이 생긴 회사는 이미 기울어진 거나 다름없다는 걸 명심하게.”

    이직 후 D대표는 FUN 경영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 인기 있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시청은 기본, 웬만한 유행어 사용에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트렌드를 익혔다. 그리곤 어느 날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월요일 오전회의 시간에 점심식사 내기 퀴즈를 준비했다. 회의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내고 먼저 푸는 부서장의 부서원들에게 점심식사를 내는 형식. 맛있는 점심식사가 공짜란 소문이 돌자 차츰 부서원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월요일이면 먼저 출근해 부서장들과 예상문제를 논의하고 점심식사에 당첨됐을 땐 D대표와 허물없이 어울렸다. D대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사를 같이하는 부서원들에게 다시 퀴즈를 내곤 바로 현금으로 포상했다. 그 돈은 식사 후 부서원들의 디저트 비용이 됐다. 함께 모여 문제를 고민하니 자연스레 팀워크가 다져졌고 웃고 떠들며 밥을 먹으니 누구랄 것도 없이 식구가 됐다.

    D대표는 요즘 수요일만 되면 퇴근 후 한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마련한 ‘CEO유머스피치’ 강의실을 찾는다. 사람 사는 곳에 웃음이 있고 웃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는 게 D대표가 찾은 경영철학이다.

    Situation 3/font> 경영에 인문학까지 BUT 추진력은 어디에 “유니레버에선 정기적으로 시인과 작가를 초청해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극배우가 연출하는 역할극도 하는데 그 연극을 통해 직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점검한다는군요.”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철학과 동양사학, 어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인문학 사회과학 전공자가 디자인, 기술 인력과 협업하고 있어요. 디자인과 마케팅 간에 원활한 소통을 중재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모아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는군요.”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이제는 인문학을 경영에 도입해야 하는 시기예요. 더 이상 늦추면 안 됩니다. 하나하나 인문학적 사고로 접근합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F전무가 회의시간마다 팀장급 직원들에게 전한 말이다. 인문학이 화두인 시대에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경영에 혁신을 이루자’는 내용이 F전무의 주된 주장이다. 팀장들은 늘 고개를 끄덕인다. 이른바 SKY대학을 졸업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 군으로 성장한 팀장들에게 이미 인문학과 기업경영의 시너지 효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었다. 알짜배기 중소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를 어떻게 하면 중견기업으로 키울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F전무의 제안은 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두어 달 후 회의 시간에 대표가 전한 말엔 그동안 답답함을 풀어줄 창의적인 제안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 인문학과 경영에 대해 강조하길래 잠시 공부했습니다. 도덕경을 보니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서 내리는 의사결정과 혁신이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하더군요. 조금만 바꿔보자고 움직이는 건 피로만 쌓이게 한다는 걸 분명히 체험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저 말뿐이 아니라 확실한 액션입니다. 오늘부터 모든 시스템을 일원화하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몰두합시다. 저와 각 팀장들 간에 건너야 할 벽은 없습니다. 바로 달려와 보고하세요.”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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