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종열 기자의 혼맥지도] ⑧ 코오롱그룹 이동찬 家…창업 3대 이어지는 섬유종가 정·재계 아우르는 화려한 혼맥

    입력 : 2012.10.05 17: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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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섬유산업의 종갓집!’ 코오롱그룹에 대한 재계의 평가다.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화학섬유시대를 열었고, 지금까지도 원사와 패션 등 섬유산업 외길에 집중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다국적 기업인 듀퐁과 ‘아라미드(방탄복 제작에 쓰이는 고탄력 원사)’의 특허권을 놓고 1조원 대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그러나 코오롱그룹의 혼맥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인다. 장자 승계로 굳어진 후계구도 방식이 4대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특히 정·관계는 물론 재계 유력가문들과의 통혼을 통해 알짜 혼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반면 화려한 사돈가문을 통해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사위들이나 친인척들이 있음에도 이들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고 오너를 통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섬유 종가’라는 말처럼 국내 유력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알짜 혼맥을 구축하고 있는 코오롱그룹의 혼맥을 살펴봤다.

    부자간이면서도 동시에 사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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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화학섬유시대를 연 코오롱그룹의 고 이원만 창업주와 이동찬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을 설립하고 외연을 넓혔다면 이 명예회장은 안살림을 맡아 내실을 채웠다. 부자간인 두 사람이 사실상 사업 파트너로서 코오롱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재계에서는 이 명예회장을 창업 1.5세대로 부르기도 했다. 이 창업주는 1904년 9월 7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현 포항시 북구)에서 부친 이석정 씨와 모친 이사봉 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4명의 형이 있었지만 모두 어릴 때 병으로 죽어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16세에 부친이 사망하면서 호주가 됐고, 19세에는 경북산림조합 기수보로 취직해 10년간 일했다.

    이후 29세가 되던 1933년 이 창업주는 사업에 뜻을 품고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2년 뒤에는 오사카에 광고모자를 만드는 아사히공예사를 설립했다. 당시 15세였던 이 명예회장은 이때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면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다.

    1945년 해방을 맞자 이 창업주는 일본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이어 한국민주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진출했고, 이 명예회장은 경찰이 됐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이 명예회장 역시 말라리아에 걸려 경찰을 그만뒀다. 그러자 일본으로 건너간 이 창업주는 삼경물산을 설립하며 다시 기업가로 변신했다. 삼경물산은 당시 ‘기적의 실’로 불리던 나일론을 수출했는데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이 명예회장 역시 서울 청진동에 국내총판인 개명상사를 설립해 운영을 맡았다.

    한국전쟁 이후였던 당시 나일론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자 이 창업주는 국내에 나일론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고 1957년 대구에 한국나일론을 설립했다. 오늘날 코오롱그룹의 모태가 출범한 셈이다. 이 창업주는 이후 숙원이었던 정계에 다시 진출했고,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된 후 6, 7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재계의 큰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 명예회장은 1977년 삼촌이었던 고 이원천 코오롱TNS 전 회장에 이어 코오롱그룹의 대표에 취임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이었다. ‘마라톤 경영’으로 표현되는 이 명예회장은 꾸준한 내실경영을 추구하며 섬유와 무역에 치우쳤던 코오롱그룹의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 1980년대에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분야에도 진출했다. 이렇게 20년 동안 코오롱그룹을 맡아왔던 이 명예회장은 1996년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줬다.

    김종필 전 총리와 한때 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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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오롱그룹의 혼맥은 정·관계는 물론 재계에도 폭넓게 뻗어 있다. 특히 이 창업주가 정계에 진출한 1960년대 이후 화려한 사돈관계를 구축했다. 이 창업주는 고 이위문 여사와의 사이에 2남4녀를 뒀다. 이 중 장남인 이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학병으로 징집돼 입대를 기다리던 중 아버지인 이 창업주의 엄명으로 동향 사람인 신병옥 씨의 외동딸 신덕진 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결혼 3일 만에 이 명예회장이 입대하면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었다.

    장녀인 봉필 씨는 1954년 고향 인근에 살던 임승엽 씨(작고)와 결혼했다. 조달청 내자국장을 지낸 승엽 씨는 장인이었던 이 창업주의 권유로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을 지내는 등 코오롱그룹의 경영에 참여했다. 차녀인 애란 씨는 노영태 씨와 혼인했다. 3녀인 미자 씨는 포항 일대의 지주였던 박문학 가문의 장남인 박성기 씨를 남편으로 맞았다. 경영학 박사이기도 했던 박 전 사장은 삼경개발 사장과 코오롱호텔 사장을 거친 뒤 1985년 한국바이린을 갖고 그룹에서 독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박해보였던 이 창업주의 혼맥은 차남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인 미향 씨를 거치며 화려해진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74년 당시 권력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녀 예리 씨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당시 영부인이었던 고 육영수 여사의 중매로 이뤄졌다. 김종필 전 총리는 육 여사의 남편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다.

    이를 통해 김인득(벽산그룹)→허정구(GS그룹)→김동조(전 외무부 장관)→정주영(현대그룹)으로 이어지는 혼맥을 갖게 됐다. 하지만 현재 코오롱그룹과 김종필 총리가문의 관계는 끊어져 있다. 이동보 전 회장과 부인인 김예리 여사가 성격 차이로 이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제3공화국의 실세였던 김 전 총리 가문과 사돈을 맺은 후 2년 뒤 이 창업주는 막내딸인 미향 씨를 고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자의 차남이었던 영인 씨에게 시집보냈다. 허영인 씨는 현재 SPC그룹 회장이다.

    손녀들 결혼으로 화려한 혼맥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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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창업주의 혼맥은 사실 손녀들의 혼사를 통해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장남인 이 명예회장과 16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차남인 동보 씨나 막내딸인 미향 씨보다 장남인 이 명예회장의 딸들이 먼저 시집을 갔기 때문이다. 코오롱그룹의 화려한 혼맥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 명예회장의 장녀인 경숙 씨는 1969년 국회의장 출신인 고 이효상 씨의 3남 이문조 씨와 결혼했다. 이효상 씨는 도쿄대 출신으로 경북대 교수로 지내다 정계로 진출, 5선 의원과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 창업주와 사돈을 맺을 당시 공화당 의장서리였다. 문조 씨는 영남대 교수다. 눈에 띄는 점은 이효상 씨와의 혼사를 통해 ‘순환혼맥’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효상 씨의 장녀 문옥 씨는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박숙희 씨의 며느리인데, 이 창업주의 사돈인 허창성 씨의 외동딸 역시 박숙희 씨의 며느리다. 이원만→이효상→박숙희→허창성→이원만으로 이어지는 순환혼맥이 된 셈이다. 차녀인 상희 씨는 1973년 국내 대표적 ‘송상’으로 불렸던 고 고흥명 한국파이롯트 회장의 외아들인 고석진 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 창업주가 재벌가문과 맺은 첫 번째 혼사다.

    이 창업주의 셋째 손녀인 혜숙 씨는 1975년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현재 고려해운 대주주로 이름으로 올리고 있는 동혁 씨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이후 컬럼비아 대학 석사를 마친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해운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1978년에는 이 창업주의 넷째 손녀인 은주 씨가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외아들인 영철 씨와 가정을 꾸렸다. 두 사람은 테니스를 치며 연애를 하다 결혼했다. 당시 신병현 씨는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재임하고 있었으며, 이후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을 지냈다. 신병현 전 총리는 봉명그룹 이동녕 일가와 OCI그룹 이회림 회장 등과 사돈을 맺고 있다. 이 명예회장의 외아들이며 이 창업주의 장손인 이웅열 현 코오롱그룹 회장은 1983년 서창희 씨와 중매결혼했다. 서창희 씨는 고급벽지로 유명한 동남갈포공업 서병식 창업주의 장녀다. 두 사람은 이웅열 회장의 큰누나인 경숙 씨의 소개로 맺어졌다. 경숙 씨와 창희 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선후배 사이이며, 코오롱그룹의 여자들과 며느리들 역시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이웅열 회장과 서창희 씨 사이에는 규호, 소윤, 소민 씨 등이 있다. 이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경주 씨는 사업가인 최윤석 씨와 결혼했다.

    경영권 분쟁 후 장자 승계 굳혀 코오롱그룹은 현재 장자 승계 방식을 통해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만 창업주에 이어 장남인 이동찬 명예회장이 그룹을 승계했고, 현재 장손인 이웅열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어서다. 이 외에 다른 직계 자손들이나 방계들은 모두 기업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하지만 그룹 경영권을 놓고 불편한 상황에 놓인 적도 있었다. 이 창업주는 정계 은퇴 이후 코오롱 회장에 동생인 원천 씨를, 사장에는 동찬 씨를 앉혀두고 있었는데, 기업공개를 하루 앞두고 이들 숙질간에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됐었기 때문이다. 원천 씨는 맏형인 이 창업주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당시부터 함께 했으며, 이 명예회장과 함께 코오롱그룹의 ‘이 트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원천 씨는 한국나일론 사장으로 추대된 후 분가를 희망해 코오롱의 계열사였던 한국나일론과 한국폴리에스터 등 두 기업 가운데 하나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기술협력 관계에 있던 일본 도레이 측의 내락까지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창업주가 차남인 동보 씨를 김종필 전 총리의 딸과 결혼시키면서 도레이가 원천 씨와의 합의를 파기, 결국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맡게 됐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후 원천 씨는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분가했다.

    조카와의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 그룹에서 물러났지만, 이원천 씨의 혼맥 역시 화려하다. 맏형인 이 창업주가 김종필 전 총리와 사돈을 맺은 것처럼 원천 씨 역시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딸을 며느리로 맞았기 때문이다. 정일권 전 총리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역임했으며 영풍그룹과도 사돈을 맺고 있다.

    [서종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제25호(201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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