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ecutive]CEO 엘리트 의식…남 주지도 못하고 쓸데도 없고

    입력 : 2012.09.07 17: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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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대기업병에 걸린 회사에선 사원들이 질문을 안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한 대기업 CEO가 신임 임원 연수회에서 강조한 말이다. 그렇다면 대기업병이란 무엇일까. 기업은 규모가 커지고 오래될수록 사내 계급과 부서가 늘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부서 간 상사와 부하직원의 의사소통에 벽이 생기고 유연성이 사라진다. 조직의 질서유지를 위해 많은 규정과 절차가 도입되지만 그 이면에 도전과 비판보다 안주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이름하여 대기업병이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한 컨설턴트는 “대기업병의 가장 큰 문제는 인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라며 “공채 등의 과정을 거쳐 이른바 엘리트들이 부서를 구성하지만 상하 비판이 사라진 조직에선 오래지 않아 평범한 부서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엘리트 의식이 지나친 임원에게 엘리트 부하직원은 이미 범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병의 원인 중 임원의 일류, 엘리트 의식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의식은 다양한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설문은 임원과 직원의 상반된 입장이 절묘하다. 임원의 리더십 유형에 대해 설문 참가자들은 권위주의적 리더십(21.0%) 합리적인 리더십(17.1%) 불도저식 리더십(15.5%) 소통형 리더십(15.0%) 제멋대로 리더십(13.2%) 시어머니형 리더십(10.4%) 안하무인 리더십(7.9%) 등의 순으로 국내기업 임원의 유형을 꼽았다.

    임원들 덕에 사기가 진작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54.5%가 ‘거의 없다’고 답했고 25.4%는 ‘아예 없다’고 답했다. 중견기업 인사담당으로 재직하다 1년 전 정년퇴임한 한 임원은 “부장만 되면 권위주의적으로 바뀌는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여기에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더해지면 안하무인 리더십이 더해져 책임전가형 임원으로 뒷담화에 오르기 십상”이라며 “해외명문대 출신 임원이 즐비하니 국내 대학을 나온 부하직원이 미덥지 않다고 부서 이동을 얘기하는 이들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고 이야기했다.

    소통의 걸림돌, “난 말이야…” IT 분야의 한 컨설턴트는 “엘리트 스펙을 쌓은 출중한 임원이 많은 분야일수록 눈높이를 오직 자신에게만 맞춰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기도 한다”며 “결국 직장생활의 성공 키워드는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인정해주고 추종하는 이들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는 “임원은 첫째,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둘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며 셋째,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바람직한 임원의 조건을 꼽았다. 김 대표는 “그 세 가지를 갖추기 위해선 원활한 인간관계가 기본”이라며 “주향십리 화향백리 인향천리란 말이 있다. 술 냄새는 십리를 가고 꽃향기는 백리, 사람 냄새는 천리를 간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과 문제가 있는 임원이 있다면 조직은 이미 그 원인을 간파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CEO 코칭 전문가들은 ‘혼자서도 잘하지만 함께하면 더 잘하는 사람’이 21세기형 임원이라고 말한다. 또 한가지 ‘실력도 없으면서 권위주의적인 임원’ ‘실력은 있으나 권위주의적인 임원’ ‘실력은 없으나 민주적인 임원’ ‘실력은 있으면서 민주적인 임원’ 중 ‘실력은 있으나 권위주의적인 임원’이 가장 위태롭다고 지적한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승진했지만 임원이 되고 권위주의를 내세우다 독불장군 혹은 상하복종을 강조하는 인물로 찍혀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끝내주는 스펙에 말발까지… 으이구… 부하직원 뒷담화 1순위 임원으로 꼽히는 A상무는 늘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인물이다. 부하직원이 서류를 올리면 뭐가 그리 바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결정이 보류되는 게 다반사였다. 부서에서 주도한 행사에는 행사 시작 30분 전까지 연락이 두절돼 전 부서가 좌불안석이길 반복했다. 행여 결재가 안 난 사안이 먼저 추진될라치면 누가 지시했냐고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사시즌만 되면 위로부터 평가가 후했다. 우선 스펙이 화려했다. 강남지역의 내로라하는 학교를 거쳐 일류대에 유학까지,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이력서가 든든했고 여기에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말솜씨가 반전에 역전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이러한 A상무의 행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직원들의 불만은 몇 번의 호통으로 흐지부지 됐지만 중간관리자들의 문제제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A상무는 결국 사장이 넌지시 건넨 말 한마디에 간신히 체면만 차린 채 자숙 중이다.

    “요즘 유학이 뭐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고 상무님 부서에 국내파 예비 임원들이 많던데 그래서 그런지 회사를 걱정하는 그분들 목소리가 제 귀에도 들리더군요. 요즘 경청하고 있습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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