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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Case]⑩ 잘못된 부의 세습, 뿌린 대로 거두리라
입력 : 2012.08.06 10: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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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워터멜론 슈가에서(In Watermelon Sugar)>라는 소설은 그 주제도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이 더 높다. 꼭 한 번 기회가 되면 소개해 보겠다고 접어둔 부분이 있어 이번에 한 번 옮겨 본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해 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른 대로 불러달라 이 소설 속의 ‘나’는 정말 이름이 없다. 원래부터 이름이 없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 속 ‘나’가 살고 있는 곳은 아이디아뜨(Ideath)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이 범상치 않다. ‘나’를 지칭하는 ‘I’와 ‘죽음’을 지칭하는 ‘Death’를 합쳐서 아이디아뜨(Ideath)다. ‘내’가 죽은 곳에서 ‘이름없는 나’가 모호하게 살고 있는 셈이다. 불리우는 대로 혹은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대로의 그 모습이 바로 ‘나’이다.
아이디아뜨에서는 요일마다 다른 색깔의 태양이 뜬다. 그리고 요일마다 그 태양을 닮은 워터멜론이 자란다. 붉은 태양이 뜬 월요일에는 붉은 색의 워터멜론이 자라고 검은 태양이 뜬 목요일에는 검은 색의 워터멜론이 자란다. 때문에 ‘내가 죽은 곳’의 ‘나’ 또한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일곱 가지 태양이 뜨는 마을에서 일곱 가지 워터멜론이 만들어 내는 일곱 가지 워터멜론 슈가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지는 오직 ‘나’만의 선택이고 또 ‘나’의 몫이다.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이 말은 어쩌면 아이디아뜨에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규칙일지도 모른다.
사업가 A씨 2
경영을 잘못하거나 경기가 좋지 않아서 기업이 어려워진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할 방법도 있다. 그런데 창업주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어서 또는 가업승계의 과정이 잘못되어 기업이 어려워진다면 참으로 방법이 없다. 답답하기도 하다. 일곱 색깔 워터멜론이 아니라 온통 검은색 워터멜론뿐이라면 그의 아이디아뜨는 견디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흔히들 부의 세습이라는 시각 때문에 또는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퇴장할 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꺼리거나 두려울 법도 하다. 그렇지만 기업의 승계 혹은 가업승계는 부의 세습과 다르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맞다. 당신이 처음 회사를 일구었을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이 아름다워야 시작도 아름답게 기억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군다나 기업은 창업주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 기업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으로 자식을 키우는 근로자가 있고 심지어 채권자도 있다(기업이 망했을 때를 생각해보라. 누가 제일 먼저 달려올 것인가?). 기업가 당신의 아이디아뜨는 당신만의 아이디아뜨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경험상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가업승계의 시작은 곧 ‘막장 드라마’ 한 편의 크랭크 인(crank in)이었고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는 증여세, 상속세가 그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주곤 했다.
가장 먼저 찾는 후계자가 바로 한 집안의 식구이다 보니 또 바깥에서 찾다 보면 상속인들과 충돌하다 보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다. 가업승계 목적의 사전 증여는 상속과 제로섬 게임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게임에서는 증여세와 상속세 문제뿐만 아니라 상속인들 사이의 유류분 싸움도 피할 수 없다.
몇해 전 전 세계 주요한 광고상을 휩쓸었던 기발한 광고를 한 번 보라. 왼쪽의 사진을 기둥에 말아서 붙인 것인데 ‘What goes around’라는 문구를 먼저 읽으면서 그 기둥을 돌아와 보면 어느새 그 겨누었던 총구가 결국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면서 ‘comes around’라는 문구와 다시 합쳐진다. 가업승계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잘못된 출발은 결국 되돌아온다.
사례로 다시 돌아와서 A씨가 생전에 차남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주식을 모두 증여해주었다면 이로써 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을까? 당장의 증여세를 그 차남이 부담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속이 개시되면 장남과 딸이 자신의 유류분을 주장하면서 그 주식의 일부를 회수해 간다면 차남의 경영권은 또 어떻게 될까? 차남 혼자 회사를 꾸려간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그 둘째 며느리가 이어받는 것은 A씨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아닐까?
가업승계는 세법만의 문제도 아니고 민법이나 상법만의 문제도 아니다.
간단히 조언을 하자면 A씨는 ‘기업의 분할과 구조조정’ ‘유언’ 등을 통해 상속인이 될 장남과 딸의 상속분을 고려해야 하고 차남의 경영권이 둘째 며느리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면 ‘복잡한 신탁계약’도 미리 구성해야 한다. 막장 드라마가 감정의 골로 시작해 감정의 폭발로 끝난다면 좋은 시나리오와 훌륭한 연출의 ‘휴먼 명품드라마’는 감정의 골을 최소화시키는 이해관계의 조정 그리고 그러한 이해관계를 다시 정교한 법률행위로 묶어두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결국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상담하는 수밖에 없다. 일곱 색깔 워터멜론 슈가의 동화 같은 아이디아뜨에서 당신의 ‘이름’과 ‘가업’이 평화로운 풍경으로 불리우기를 원한다면 더 이상 미루기만 할 일이 절대 아니다.
혹은 송어들은 깊고 잔잔한 곳에서 헤엄쳤지만, 그러나 그 강은 겨우 8인치 너비였고, 달이 아이디아뜨를 비치고 있었고, 그래서 워터멜론 들판은 걸맞지 않게 어둡게 빛을 발했고, 그래서 모든 초목들로부터 달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김동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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