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임원, 롱런의 기본은 `정신건강 관리`

    입력 : 2012.06.01 17: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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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초반의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한 A이사는 요즘 책상 앞에서 조는 일이 잦아졌다. 하루 6시간 수면을 한두 시간 늘려봤지만 피곤한 기운은 물러갈 기미가 없었다. 춘곤증이려니 생각하던 A이사는 최근 정기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피로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의 소견은 “6개월 이상 피로가 지속됐고 집중력 저하, 수면장애, 두통, 위장장애, 복통 등의 증상이 보인다”는 것. A이사는 임원승진 후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 봤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0시 이후 귀가,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A이사는 우선 병원의 처방전 외에 식생활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고기 섭취를 줄이는 대신 비타민B가 풍부한 현미 등 통곡물과 버섯, 브로콜리를 챙겨먹고 카페인이 많은 커피나 홍차 대신 녹차를 마시고 있다. 비단 A이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만성피로증후군과 탈진증후군(한 가지 목표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 생기는 극심한 불안과 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워커홀릭이 절대 다수인 임원들에겐 특히 적신호다. CEO코칭 전문가들은 “임원들의 경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며 “특히 신임 임원들은 2분기의 마지막인 현시점에 자신을 돌아보고 관리해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롱런 대신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중견기업 B사장은 부사장 시절 2~3년 동안 새벽 2시에 퇴근해 아침 6~7시에 간부회의를 주재하는 등 성과를 위해 매진했다. 그러한 공을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6개월 후 급성 암 판정을 받고 유명을 달리했다.

    중견 건설회사 C임원은 업계에 활달한 성격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30여 년간 근무한 첫 직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한 그는 스스로 밝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놀 땐 확실히 놀고, 일할 땐 호랑이라고 소문날 만큼 챙겨야 할 부분은 확실히 챙겨나갔다. 사내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워커홀릭이던 그는 승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다. 지인들은 그의 승진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상 갈 채비를 해야 했다.

    한 경영 컨설턴트는 “한 기업의 임원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며 “인생의 멘토로서 부하 직원에게 했던 100마디 조언 중 단 10%만 자신에게 투자한다면 자기 관리는 저절로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민도식 커리어케어 상무는 “임원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성과다. 네트워크가 아무리 좋은 임원이라도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상사와 부하, 비즈니스 커뮤니티까지 신경 써야 할 분야가 수백, 수천가지다. 당연히 그들에겐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임원들은 그 스트레스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제시하는 만성피로 증후군 기준 ❶ 피로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

    ❷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특별한 원인이 없다.

    ❸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피로증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❹ 만성피로 때문에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네 증상에 모두 해당하는 이는 아래 8가지 증상을 체크해야 한다 ❶ 기억력이나 집중력 감소

    ❷ 인후통

    ❸ 목 부분이나 겨드랑이 부분의 임파선 비대 및 통증

    ❹ 근육통

    ❺ 관절 부위가 붓거나 발적 증상이 없는 관절통

    ❻ 평소와 다른 새로운 두통

    ❼ 잠을 자고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은 증상

    ❽ 운동 후 24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심한 피로감

    (8개 증상 중 4개 이상의 증상이 6개월 동안 나타났다면 만성피로 증후군이다)

    임원에게 스트레스는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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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 상무는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기업 임원들 중 많은 분들이 내 연봉이 괜히 높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며 “많이 받을수록 많은 성과를 내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동반되는 스트레스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스트레스를 즐기며 이겨내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결국 도태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임원의 자기관리, 특히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자 기업들도 차츰 임직원들의 건강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건강이 곧 삶의 질을 높이는 원천이자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국내에서 처음 전체 임원을 대상으로 정서적 건전성 점검을 의무화한 기업은 삼성그룹이다. 2010년부터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추가해 지나치게 높은 수치가 나올 경우 심리치료 등을 받게 했다. 삼성임원들의 심리테스트는 스트레스 내성 정도, 집중력 점검, 대인관계 스트레스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SK와 삼성전기 등 일부 기업도 외부 상담센터 등과 연계해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 임원들은 정기적인 검사에 대한 순기능 이면에 역효과도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한 대기업 간부는 “회사에서 정기검진에 꼭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건 알겠는데 아침 7시에 출근해 밤까지 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며 “회사에서 임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건 강제인데 혹 결과가 좋지 않다면 치료받을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 여기겠나, 아니면 혹시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는 게 아닐지 고민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실행력의 기본은 자기관리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저서 <자기경영노트>에서 “임원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효율성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이며 그 힘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는 구구단처럼 반복해서 익혀야 하는 실행력의 요소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시간 관리’와 ‘공헌하는 법’ ‘강점 활용법’ ‘일의 우선순위 정하는 법’ ‘의사결정법’ 등이 그것이다. 우선 시간 관리는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이양하고 거절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스스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공헌하는 법에선 조직의 목표에 맞춰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정부 산하 과학연구소의 사례도 소개했다. 평범하던 출판국장 후임으로 잘 나가는 과학기자가 왔지만 과학자들은 간행물의 정기구독을 중단했다. 원인은 간단했다. 과학자들은 “과거 출판국장은 우리를 위해 글을 썼는데 새로운 국장은 우리에게 글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주장이 설령 옳다 해도 앞서가거나 독불장군이 되기보다 한 걸음 뒤에서 조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강점 활용법에선 사람을 쓸 때 대상자가 잘 하지 못하는 것보다 무엇을 잘하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단점만 보는 눈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장점을 찾는 정서는 잔잔한 물처럼 평정을 가져온다. 넷째, 우선순위 정하기에선 순위를 정하는데 필요한 건 이성적 분석이 아니라 용기란 지적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에선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반대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곱씹어 생각하면 피터 드러커가 이야기한 실행력의 다섯 가지 요소는 결국 자기관리(정신건강관리)와 지향점이 같다.

    운동으로 자기관리하는 스포츠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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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쿡 애플 CEO는 하이킹과 사이클을 좋아해 운동 중독자라 불린다. 그만큼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매일 새벽 5시면 부하 직원에게 업무 관련 이메일을 보내고 운동을 시작할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워커홀릭이다. 국내 기업에도 운동을 통해 몸과 정신을 다스리는 CEO가 여럿이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취미는 수영이다. 은행장에 취임하기 전엔 자주 찾았지만 지금은 출근 전 걷기로 대체했다는 후문이다. 임원 시절 체력관리 비법을 물으면 늘 ‘수영’이란 답이 돌아왔다.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은 마라톤 애호가로 유명하다. 마라톤 경영의 창시자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엔 ‘제10회 LIG 코리아오픈 마라톤’에서 10㎞ 단축마라톤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최기의 국민카드 사장은 등산 애호가로 알려졌다. 잠시 짬이 나는 주말이면 서울 인근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도 소문난 등산 마니아다. 자전거 마니아도 있다. IMF 당시 1년 만에 1억원을 156억원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탄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8년간 자전가 마니아로 살았다. 2008년 전국 투자설명회 당시 고유가 시대에 발맞춘다는 그린 에너지에 착안해 강릉 등 일부 구간을 자전거로 이동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Lesson 1 기러기는 늘 하늘만 쳐다보나니 1년 전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승진한 K이사는 올 초 회장에게 제대로 찍혔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회장 보고서에 필수자료를 누락한 탓이다. 분명 서너 번씩 확인했는데도 챙기지 못했다. 팀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따로 챙겨서 첨부해드렸는데 빠뜨리고 가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속 상무에게서 “별 단지 얼마나 됐다고 정신을 딴 데 팔고 다니나. 계속 그렇게 하려면 짐 싸는 게 낫겠다”는 경고가 날아왔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직속 상사와 회장의 눈 밖에 난 K이사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체크하다가도 멍하게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K이사는 6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다. 아내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영어교육을 위해 기러기 생활을 제안했다. 처음엔 그럭저럭 일에 파묻혀 지냈지만 임원으로 승진하고선 혼자 지내는 일상이 무상했다. 이젠 돌아와 같이 살자고 했지만 아내는 몇년만 더 참으면 아들이 아이비리그에 입학할 수 있다며 조금만 참자는 얘기만 반복했다. K이사는 6개월 전부터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 아내가 곁에 없다지만 여간 죄책감이 드는 게 아니다. 아내와의 통화에서 미안하단 말이 오갈 때마다 한잔하던 술이 점점 늘었고, 이젠 잠자기 전엔 늘 술이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당연한 일. K이사는 참다못해 정신건강의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 친구에게 사정을 털어놨다. 그랬더니 “큰 일 내지 말고 합쳐야 한다”는 질책성 진단이 이어졌다. 고민하던 K이사는 우선 주변 관계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현재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이야기했다. 일주일 후 수화기 너머에서 “중학교 과정만 마치고 돌아가겠다”는 아내의 음성이 들렸다. 요즘 K이사는 다시금 힘을 내고 있다.

    Lesson 2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와 네가 모두 평안해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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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업체에 근무하는 L이사. 집에선 그를 버튼만 누르면 달려가는 ‘아이로봇’이라 부른다. 늦둥이 아들이 자신의 장남감에 빗대 붙여준 별명이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퇴근 후건 주말이건 전화벨만 울리면 회사로 달려 나가는 아빠가 로봇을 닮았단다. 주 업무가 IT분야 서비스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기술이 곧 회사 이미지이다 보니 최고 엔지니어인 L이사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했다. 그렇게 바삐 지내던 어느 날, L이사는 아내와 큰 소리로 말다툼을 한 후 깜짝 놀라 머리가 띵해졌다.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친 순간 그의 손에 공학용 계산기가 들려 있었고, 무엇인가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있었던 것. 회사에서 업무를 보던 습관이 아무렇지 도 않게 집에서도 이어지는 걸 보곤 아내가 짓던 허망한 표정이 아직도 머리에 생생하다. L이사는 석 달 전부터 집 근처 가톨릭 성당에 나가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출근 전 꼭 들러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나선다. 최근엔 회사에서 호출이 올 때마다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됐다. 회사에도 가톨릭 신자임을 알리고 가족이 함께 성당에 나가는 일요일 오전엔 호출을 자제해달라고 이야기했다. L이사의 아들은 요즘 ‘아이로봇’ 대신 똑바른 발음으로 ‘아빠’라 부르며 달려온다.

    Lesson 3 입으로 들어가는 건 스스로 챙겨야 하나니 최근 회사를 옮긴 C상무는 고민하다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잦은 회식과 비즈니스 미팅에 버티고 버티다 간에 탈이 나고 만 것이다. 당 수치가 올라가 결국 당뇨병 진단을 받은 C상무. 현미밥이 좋다는 말에 생활습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조찬에 점심, 저녁으로 비즈니스 미팅이 이어지는 탓에 식사 메뉴 선택이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도시락. 혹시 상대방이 불쾌해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도시락을 꺼내는 게 처음에만 힘들었지 두세 번 거치다 보니 오히려 당당해졌다.

    C상무의 도시락에는 오직 현미밥만 담겨 있다. 비즈니스 미팅이 있을 땐 상대방의 기호에 맞춘 메뉴에 밥만 자신이 싸 온 현미밥을 먹는 식이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들에게 솔직히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이 예상 외로 적극적이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한다는 말로 시작해 현미의 좋은 점이 대화의 주제가 됐고, 결국 좋은 일은 서로 나눠야 한다며 현미밥도 나눠 먹게 됐다. 같은 밥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됐으니 비즈니스도 나뉘고 섞이며 술술 풀려갔다. C상무는 요즘 출근 전 아내에게 2인분의 도시락을 주문한다. 하나는 C상무를 위한 필수품이요,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 미팅을 위한 준비물이다.

    Lesson 4 남의 눈 의식하다 콤플렉스 안고 사나니
    처진 얼굴은 지방이식으로 올리고 눈밑지방은 제거하자는 아내의 말에 병원을 찾은 Y부사장. 꺼림칙했던 마음은 “눈밑지방 제거술은 현재 기업 CEO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용기가 생겼다.

    지방이식과 눈밑지방 제거술을 마치고 머리를 염색한 Y부사장은 한 달 후 당당히 첫 출근했다. 그리곤 부서장들과의 첫 회의에서 “연세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반응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Y부사장은 요즘 BB크림으로 얼굴을 정돈하고 출근길에 오른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1호(2012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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