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A] 무역국가 한국 FTA로 날개 달다…폐허서 일군 기적 이젠 무역 2조달러 향해 뛴다

    입력 : 2012.06.01 17: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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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지난 2004년 1월 1일 멕시코 정부는 자국 타이어 산업 보호를 위해 이날부터 종전 23% 수준이던 타이어 관세율을 세계무역기구(WTO)의 최고 양허관세율인 35%로 높였다.

    노림수는 자명했다.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고도 대(對)멕시코 타이어 수출이 급증하던 한국, 중국이 타깃이었다. 그 해 3월 12일 일본은 멕시코와 농산품 시장 개방을 포함한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에 최종 합의했다. 멕시코 정부의 관세 인상 조치를 일본이 살짝 피해가는 순간이었다. 당시 언론에선 인구 1억명, 연간 교역규모 3373억달러(세계 12위 교역국)에 달하는 중남미 최대 시장을 일본이 독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가 쏟아졌다.

    실제로 2004년 한국의 대멕시코 타이어 수출은 전년 대비 무려 67.7% 급감한 1121만달러에 그치고 말았다.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한국산 타이어의 멕시코 시장점유율은 11위로 추락했다. 국내 타이어 업체의 경우 품목별로 25%에서 최대 90%까지, 평균 48% 관세를 얻어맞으며 휘청거렸다.

    다행히 그 해 9월 한국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평균 관세율을 35%까지 낮춰 수출이 재개됐다. 그러나 관세율이 오르기 전인 2003년(3470만달러) 규모로 수출이 회복되기까지는 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사례는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FTA를 실기할 경우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만약 우리도 멕시코와 FTA를 미리 체결했다면 관세 영향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의 쓰디쓴 교훈은 결국은 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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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2004년 4월 발효된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3월15일 발효된 한·미 FTA까지 8건의 FTA를 발효시켰다. 캐나다, 호주 등 12개국과는 협상을 진행 중이며 중국, 일본 등 16개국과 협상 준비 또는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FTA 국가다. 칠레와 FTA를 체결하기 전에는 일본의 칠레 시장점유율이 높았지만 우리가 일본보다 3년 먼저 칠레와 FTA를 체결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역전시켰다. #장면 2. 2011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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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그 날을 기준으로 수출 5150억달러, 수입 4850억달러를 각각 기록해 무역규모 1조달러의 금자탑을 쌓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1조달러는 100달러짜리 지폐로 쌓을 경우 에베레스트산(8848m) 136개를 만들 수 있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미국, 독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 이어 세계에서 9번째, 아시아에서 3번째로 무역 규모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011년 연간으로는 수출이 전년 대비 19.3% 증가한 5565억달러, 수입은 23.3% 증가한 5244억달러를 기록해 무역 흑자 321억달러를 달성했다.

    한국의 국토 면적은 겨우 세계에서 110번째에 불과하지만 무역 규모는 2년 연속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무역 코리아’의 자랑스러운 현주소다.

    수출은 1962년 세계 104위에서 지난해 7위로 우뚝 섰고, 무역순위는 65위에서 9위로 퀀텀 점프를 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경제 발전에 매진한 지 50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되돌아보면 무역 강국 코리아의 출발은 초라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1954년 수출액은 고작 2400만달러였다. 한국의 무역 규모는 그 후 20년이 흐른 1974년에서야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무역규모는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무역규모가 급증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0년 당시 무역규모가 3327억달러였으니 11년 만에 7482억달러나 늘었다.

    비결은 반도체, 선박 등 세계 1위 품목을 탄생시킨 기업가 정신에 있었다. 1954년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 수출 품목은 철광석과 텅스텐이었다. 1962년에는 쌀이 1위였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의 1위 수출품이 광물과 식량 자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88년 상위 10대 수출 품목은 노동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낮은 의류와 신발이 1, 2위를 차지하는 등 경공업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수출 품목 1위는 선박으로 지난해 무려 545억30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으며, 석유제품이 반도체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지만 원유를 다시 가공해 내다팔고 있다.

    무역 전문가들은 이제 포스트 1조달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과거 영광에만 도취해 있다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낙오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FTA와 첨단 기술이라는 양날개를 단다면, 10년 내에 무역 2조달러 시대 개막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FTA를 놓고 국론 분열을 겪으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벤치마크 대상은 독일이다. 제조품에 편중된 수출 산업 구조를 독일처럼 탄탄한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강력한 제조업이 공존하는 구조로 서둘러 전환시켜야 한다는 진단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말 기준 제조업 수출은 세계 9위권 수준인데 비해 서비스 수출은 19위에 머무르는 등 수출 구조가 제조업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독일은 무역수지 흑자 면에서 단연 세계 1위다. 무역수지 흑자가 2017억달러(2010년)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흑자 규모의 6배에 달한다. 1998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한 독일은 불과 8년 만인 2006년 2조달러를 돌파했다.

    비결은 ‘히든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강소기업에 있다. 독일의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베른 베노어 박사는 “독일 무역의 힘은 각자 업종에서 세계 3위 안의 기술력을 갖춘 1350개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단언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 수의 99%를 차지하지만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파트너스 회장은 “독일은 인구 100만명 당 히든챔피언 기업이 15.5개인데 비해 한국은 0.5개”라며 “한국이 무역 2조달러 국가가 되려면 적어도 300개의 히든챔피언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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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식 고려대 교수도 “1조달러까지 진입하는 데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했지만 2조달러를 달성하려면 특정 지역과 특정 제조 품목에 집중됐던 수출 전략을 지역별로 다양화하고 서비스 무역 확대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대로 멕시코의 사례는 반면교사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일찍이 가입한 멕시코는 48개국과 18건의 FTA를 맺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이 미숙한 상태에서 개방한 나머지 무역 적자가 오히려 심화됐다. 우리도 FTA 확대에 따라 농업 등 취업분야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수출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돕는 공세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선박, 반도체, 석유제품이 맡고 있는 중책을 미래에 책임질 신수종 산업도 찾아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래핀, 멤브레인, 바이오, 2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헬스케어, 원자력 발전, 문화 콘텐츠 등을 유망 산업으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 제품은 기존 주력 산업인 반도체, LCD, 자동차 등과 시너지 효과가 강력하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조기 육성하지 못한 것이 1조달러 클럽에서 탈락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수출 시장도 더욱 다변화하는 것이 살 길이다. 1988년 당시 우리나라 수출 중 3분의 1 이상이 미국 한곳에 집중됐다.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은 일본이었다. 당시 중국은 우리나라 수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금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또 싱가포르,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인도, 브라질 등 브릭스(BRICs) 시장이 주요 무역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신흥시장을 새로운 신시장으로 개척하고 기존 시장을 강화하는 첩경은 바로 FTA이며, 무역국가 코리아의 숙명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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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20회원국 중 GDP 대비 수출 비중 최고 성장의 선순환 구조 다시 살려야 수출은 명실상부한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다. 국내 고용을 창출하고, 시설투자를 통해 내수를 진작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통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시대를 연 주역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강력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흥 개발국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유일하게 금융위기 이후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수출의 힘이었다. 당연한 결과일까.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경제는 유독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들이 공동으로 작성하는 ‘G20 주요 경제지표’에 따르면 2009년 GDP 대비 수출 비중은 43.4%로 G20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원유를 수출해 먹고 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제조업 강국인 독일(33.6%)에 비해서도 높다. 일각에서는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점을 염려하는 배경이다. 실제로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수의 토대가 되는 투자·소비 성장기여도는 떨어지고 있다. 1990~1996년 우리나라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3.5%포인트, 투자는 4.0%포인트, 소비는 4.2%포인트로 3개 성장축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5~2011년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5.1%포인트로 확대된 반면 투자ㆍ소비 기여도는 각각 1.0%포인트, 2.3%포인트로 쪼그라들면서 불균형이 심해졌다.

    무역 의존도도 과도하게 높아졌다. 우리나라 GDP 대비 무역 비중은 110.9%다. 내수 비중이 큰 미국(31.3%)과 일본(31.8%)은 물론 우리처럼 수출 주도 국가인 독일(95.3%)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대외환경 요인에 민감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 사태를 겪었듯 우리 경제는 갑작스런 대외 충격에 급격히 무너질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2009년 수출이 급감하자 국내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내수 확대라는 안전판 없이 수출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외풍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약화되는 것도 문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낮아지고 오히려 수입유발계수는 높아져 수출효과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내수 증진을 위한 지속적인 성장의 해법을 여전히 수출에서 찾아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 팀장은 “내수 확대가 쉽지 않은 것은 적은 인구와 높은 가계부채 수준 등 한국경제의 특수함 때문”이라며 “결국

    FTA 등을 통해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 소득 증대와 내수 증진 모두를 해결할 우선적 열쇠”라고 강조했다.

    이홍식 고려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전략이 무역 2조달러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FTA를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전략 외에 수출·내수 간 양극화를 해소하는 대책도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헌철·안병준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1호(2012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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