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umni ]대학도 애프터서비스를 한다…서울대 동양사학과 끈끈한 네트워크

    입력 : 2012.05.04 13:12:29

  • 사진설명
    사진설명
    ‘대학 전공지식 얼마나 남았나요?’

    졸업 이후 전공을 살려 사회에 진출한 사람을 제외하고, 자신의 학부전공 분야의 전문성을 지녔다거나 백번 양보해 기본적인 수준 이상의 소양을 지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랴.

    대학을 졸업하고 수년, 길게는 몇십년이 지나 우연찮게 찾아낸 전공서적 속 낯익은 글씨체로 이뤄진 생소한 필기들을 보면 정녕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 ‘전공지식은 대학생활 동안 얻는 것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해’라는 자기위안을 하다가도 자녀들의 동그라미가 여러 개 붙은 대학등록금 고지서를 보며 ‘나는 학부 4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나’ 하는 괜한 회한이 들기도 한다.



    After Service Program? NO! Asia Study Program 이러한 억울한(?) 심정의 졸업 동문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서울대 동양사학동문회에서는 특별한 스터디 과정을 신설했다. 동아시아에 대해 학습하고 함께 연구하는 과정인 ASP과정이 그 주인공. 황효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총동문회 총무이사(78학번)는 “동문들끼리 농담 삼아 ASP과정을 학부시절 배움이 부족했던 졸업생들을 위한 애프터서비스 프로그램(After Service Progra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웃음) 그렇지만 커리큘럼 자체는 동양사학에만 한정되지 않고 동아시아의 역사를 기본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졸업 후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대한민국 최고 상아탑에서 수학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 다시 학부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는 법. 서울대 동양사학 동문회는 ASP과정을 발전시켜 학술적인 성격에서 탈피해 보다 대중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황 이사는 “이전 세대 때는 동양사학에 대한 관심은 이념적인 부분에 머물렀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아시아가 세계 전면에 나서고 중국이 G2에서 G1의 자리를 위협하는 지금 세대에서 동양사학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수요에 발맞춰 ASP과정을 보다 대중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현대 아시아 사회 전반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돕는 과정으로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라며 ASP과정의 향후 비전과 포부를 밝혔다.

    한편 서울대 동양사학과 ASP과정은 5월 7일 첫 강의가 시작된다. 우선적으로 동문들과 그의 친지들 이외에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은 주변 지인들을 대상으로 갖는 시범 ASP과정은 매달 한 번씩 모여 특강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며 강의료는 없다.

    첫 강의는 ‘21세기 중국의 부상과 국가발전전략’이란 주제로 현대 중국정치 분야에서 명망 높은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85학번)가 나선다.

    40년이 흘러 모인 동문들 “깊은 뜻 품었다”
    서울대동양사학과 출신 기업인 (왼쪽부터)이석우 카카오공동대표, 노창준 바텍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대표.
    서울대동양사학과 출신 기업인 (왼쪽부터)이석우 카카오공동대표, 노창준 바텍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대표.
    ASP과정은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문모임이 생겨난 지 2년여가 지나 탄생한 야심찬 프로젝트다. 단순 친목 도모나 이해집단화된 ‘불량한’ 동문회와는 달리 구성원들의 자기계발과 복지는 물론 사회발전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는 모임이 되기 위한 비전사업의 하나다. 1969년에 신설된 서울대 동양사학과는 본교 100여 학과 중 유일하게 동문조직이 없었다. 40여 년이 지난 2009년에야 동문회가 설립될 수 있었다. 학연·지연으로 얽혀 이익집단화된 여타 동문회 활동에 대한 동문들의 문제의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정지석 법무법인 남강 변호사(80학번)는 “저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서울대는 동문회 하면 안 된다’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동문회가 설립되고 나서도 (동문회 활동을) 반대 뜻을 밝히고 참석하지 않는 동문도 있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동문회) 활동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우려하던 것처럼 여타 동문모임과 다른 건전한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대다수 사람들이 마음을 돌려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동문회 설립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털어놨다.

    설립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서울대 동양사학과 총동문회는 끈끈한 응집력과 추진력을 자랑한다.

    동문회 내a에서 ‘탱크’라고 불릴 만큼 강한 추진력을 지닌 황 총무이사를 필두로 해외답사, 멘토링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지난 3월 25일에는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입상한 이승준 감독(90학번)의 <달팽이의 별>을 관람하기 위해 이틀 전 급한 공지에도 불구하고 150여 명의 동문과 가족들이 모여드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동문회가 설립된 이후 특히 눈에 띄는 활동은 ‘동사(東史)’라는 잡지 출간이다. 조순용 2대 동문회장(71학번·전 KBS 정치부장,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취임사를 통해 “동양사학과 동문회는 단순한 친목공동체가 아니라 ‘인문학 지식공동체’다. 따라서 우리 동문회가 하는 각종 사업들의 지향점도 인문학 지식공동체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동사’의 출간은 조 회장의 발언과 궤를 같이하며 동문회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6개월 단위로 발행되는 ‘동사’는 동양사와 현대 동아시아 사회 전반을 통찰하는 전문 학술지의 성격을 띠고 부수적으로 동문회 소식들을 담고 있다.황 이사는 “600여 명의 동문회 구성원들 가운데 150여 명이 대학교수나 강사로 활동 중이다. 동양사학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이 모이면 보다 (동양사학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통해 통찰력 있는 글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동사’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또 그는 “2~3년 내로 동문회 활동과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소식을 공유하는 소식지와 학술지를 구분해 만들 계획이다”며 “학술지는 전문지 성격보다는 대중역사잡지 쪽으로 방향성을 잡아 대중의 호응도 이끌어 내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라 덧붙였다.

    영화 ‘달팽이의 별’은
    사진설명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고, 4월 말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핫독스(HOTDOGS)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는 등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은 한 장애인 부부의 삶을 보여준다. 손가락 끝으로 세상과 만나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영찬 씨와 척추장애로 남들보다 작은 체구를 지닌 순호 씨 부부가 아침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들을 통해 삶을 채워가고 사랑하는 방식이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2년이 넘는 제작기간에 느린 부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이승준 감독은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 노출된 장애인의 모습은 선입견이 투영된 결과물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만큼 영화 <달팽이의 별>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영찬, 순호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그려낸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0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