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형 기자의 Watch Report] ① 손목 위 보배 BOVET

    입력 : 2012.02.27 13: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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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먼트 제작부터 케이스 장식까지 100% 장인의 손을 거친다. 그 덕분에 하루에 다섯 개 남짓한 시계를 만든다. 1년이면 고작해야 2000개에 불과하다. 도대체 수지타산이나 제대로 맞을까 싶지만 훌쩍 넘긴 손익분기점은 이미 까마득한 점이 된 지 오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갸우뚱하다가도 가격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장 저렴한 시계가 약 3000만원, 가장 고가의 시계는 10억원이나 된다. 이쯤 되면 뭐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진다. 시계 수집가들에게 자신들의 시계 제작 기술과 유일무이함을 소개하는 게 마케팅 전략의 전부라는 스위스 시계브랜드 보베(BOVET). 화려함과 정교함, 최고의 자신감으로 무장한 보베의 전설을 살짝 들여다봤다.

    190년 전통, 淸 황실이 반한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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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2년에 설립했으니 올해로 190년. 보베의 역사는 스위스 보베 가문에서 시작된다. 당시 시계산업의 중심지는 영국 런던. 해운업과 해군력이 막강했던 영국은 정확한 항해를 위해 정밀한 시계가 필요했고, 이러한 수요는 시계산업 발달로 이어진다. 스위스의 시계장인 장 프레데릭 보베(Jean Frederic Bovet)는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1815년 다섯 아들 중 세 아들을 런던으로 보내 가업의 물꼬를 텄다. 당시 18세였던 에두아르 보베(Edouard Bovet)는 그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3년 간 영국의 유명 시계상에서 일하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21살이 되던 해 에두아르는 시계상에서 본인이 직접 만든 고가의 시계를 들고 중국 광동행 화물선에 오른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을 발휘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에두아르의 시계는 당시 아시아 부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을 체험하며 자신감을 얻은 에두아르는 형제들과 사업 확장을 결정하고 1822년 보베를 설립했다. 에나멜 페인팅으로 유명한 보베의 시계는 이후 중국 황제와 고위 관료를 매료시키며 중국 시장을 개척한다. 중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19세기 초, 보베는 중국에 진출한 여러 시계 브랜드 중 청나라 황실의 시계 제조사로 발탁되며 우수성을 입증했다. 당시 중국의 광동과 상해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장할 만큼 중국 내 보베의 인기는 대단했다. 중국에 시계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 고급시계를 뜻하는 단어가 보베였다니 역사적인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크리스티 경매에 보베의 19세기 회중시계가 나오면 매번 최고가를 경신할 만큼 평가가 높다.

    크리스티 경매하우스에서 전 세계 시계 경매를 총괄하는 어렐 백스(Aurel Bacs)는 “저명하고 높이 평가되는 보베의 이름만큼 미래에도 독창적인 시계를 창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설적인 브랜드 중 하나”라며 “특히 에나멜 페인팅과 인그레이빙에 있어 보베의 위치는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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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시계, 에나멜 페인팅 보베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정교한 에나멜 페인팅과 인그레이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그림을 시계에 담는 다이얼 페인팅은 상류층들의 예물시계 혹은 귀족 가문의 심벌, 가족 선물로 주목받으며 보베 장인들의 기술력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보베의 관계자는 “일본 상류층은 예물시계로 부부의 모습을 담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제왕의 상징인 신화 속의 용, 가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새기기도 한다”며 “상위 1%의 상류층은 예술에 조예가 깊어 고가의 미술품을 소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의 소장 미술품을 시계 다이얼에 담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초 투명 케이스 백 눈에 보이지 않는 부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손으로 제작하는 보베는 세계 최초로 시계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 크리스털 케이스 백을 발명하기도 했다. 시계 속 기계학과 수공예의 조화를 고스란히 오픈해 무브먼트의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해온 보베만의 장점을 전했다. 이후 수많은 시계 브랜드들이 보베의 발명을 도입해 시계 안을 노출시켰다. 무브먼트에 블루 스크루 또는 핸드 인그레이빙된 브리지와 로터 등을 도입해 다이얼뿐 아니라 시계 안까지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비밀스러웠던 시계 속 정경을 확인한 시계 수집가들의 안목과 제조사들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한층 높아졌다.

    보편성을 거부한 12시 방향 크라운 보편적으로 손목시계의 크라운이 3시 방향에 위치했다면 보베의 시계는 12시 방향을 향해있다. 멀리서도 보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디자인은 회중시계에서 시작해 손목시계로 발전해온 시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베의 상징인 구불구불한 서펜타인 핸즈가 시간을 가리키고, 열두잎 연꽃 문양이 하이 컴플리케이션 투르비용 케이지를 장식한다. 오픈된 무브먼트는 브리지에 새겨진 플레리에 꽃의 인그레이빙 문양을 또렷하게 표현하며 시각적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세계 유일의 컨버터블 시계 손목시계가 탁상시계로 변한다? 보베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포트폴리오 워치 기능은 1930년에 완성한 기술이다. 이후 2000년에 세계 최초의 컨버터블 시계를 완성했고 2010년에는 현재의 아마데오(AmadeoⓇ) 컨버터블 특허기능을 탄생시킨다.

    보베의 아마데오Ⓡ 시스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소장자가 직접 손목시계를 회중시계와 탁상시계로 손쉽게 변형할 수 있는 컨버터블 기능이다. 또한 리버스 핸드 피팅이 된 경우 시계 뒷면에도 시간이 표시돼 양면시계로 사용할 수 있다. 대표 제품인 ‘아마데오’ 라인의 경우 시계 스트랩을 떼어내 별도의 줄을 달면 회중시계로 변신한다. 투르비용이 장착된 아마데오 제품의 경우 안이 들여다보이는 스켈레톤으로 돼 있어 앞뒤를 바꿔 착용할 수도 있다.

    특허로 등록된 이 유일무이한 시스템은 보베의 투명 크리스털 케이스백처럼 시계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됐다.

    보베의 보배, 파스칼 라피 명품산업 관계자들은 “보베의 창시자가 에두아르 보베라면 희귀 명품으로 성장시킨 이는 현 회장 파스칼 라피”라고 말하곤 한다. 수많은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가 현대화에 밀려 침체기를 겪었듯 보베도 한때 소공방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 보베를 재건한 이가 리비아 출신 라피 회장이다.

    제약회사 사장이자 시계 수집가로 알려진 라피 회장은 2001년 보베를 전격 인수하며 “평생 시계와 함께하다 선망해 온 보베 시계를 인수한 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보베의 명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컨버터블 기술은 라피 회장이 인수한 후 10년의 연구개발 끝에 일궈낸 쾌거였다. 라피 회장은 이 기술을 아마데오Ⓡ 시스템이라 이름 짓고 아들 아마데오에게 헌사했다.

    자료 BOVET 02-3448-4724 [안재형 기자 ssal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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