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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S종말, AI에이전트 시대...기업의 데이터 관리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입력 : 2026.03.27 09: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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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노션 코리아 지사장 월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SaaS업계에 종말(아포칼립스)이 왔다’는 의미의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가 확산되고 있다. 인공지능(AI)에이전트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며, AI가 소프트웨어 워크플로우를 대체할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대성 노션 코리아 지사장은 25일 서울 강남구 오피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오히려 노션의 밸류에이션은 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션은 최근 싱가포르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약 2억7000만 달러(약 4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는 약 110억 달러(한화 15조원)로 평가받았다.
비결은 AI 에이전트에 적합한 노션 특유의 마크다운(Markdown) 문법과 객체 간 연결성에 있다. 마크다운 문법이 무엇이기에 AI에이전트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데이터 연결성이 곧 AI 에이전트의 경쟁력그간 국내 기업들은 사내 문서 검색, 지식 챗봇, 문서 생성 등이 가능한 자체 AI플랫폼 개발에 나서거나, 외부 기업용 AI 플랫폼을 도입했다. 2023년부터 AI 기업들은 LLM의 환각, 맥락 이해 부족 등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검색증강생성(RAG)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RAG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벡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했다. 텍스트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숫자인 ‘벡터(Vector)’ 값으로 변환해 저장한 전용 DB다. 기존 사내 문서를 수집해서 구조를 분해(Parsing)하고, 의미단위로 묶고(Chunking), 벡터값으로 변환하는(Embedding) 등 데이터 정제 비용이 높아졌다.
그러나 높은 비용을 투자해 RAG기반 AI플랫폼을 도입해도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질문마다 검색과 생성 단계를 거쳐야 하므로 답변이 지연됐고, 답변 수준도 검색해서 조합하는 수준이라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처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온톨로지(Ontology)’ 방식이 주목 받기도 했다. 온톨로지는 기업 데이터간의 개념,관계, 규칙을 체계적으로 정의한 지식모델을 뜻한다. 인간의 경험이나 노하우 등 문서화되지 않은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온톨로지로 변환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 검색을 넘어 AI가 실제 인간의 업무방식을 따르게 하려는 의도다.
핵심은 AI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사내데이터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비용을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한글·워드·PDF, AI에이전트가 읽지 못하는 이유박 지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RAG을 도입해도 퀄리티가 낮은 이유는 데이터 관리 방식이 AI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 기관들은 수년간 한글(.hwp), 워드(.docx), PDF로 문서를 만들어 왔고, 이게 공유폴더나 사내 시스템에 파일 단위로 저장되어 있다. 이런 데이터 관리 방식은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업무에 사용하려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LLM이 이 문서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문서를 벡터DB로 구축하고 RAG용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큰 비용이 발생한다. 한글과 컴퓨터에서 만든 .hwp 파일은 독자적 포맷이라 파싱 자체가 까다롭고, PDF는 레이아웃 정보와 텍스트가 뒤섞여 있어서 OCR이나 전용 파서가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 파일 또한 내부에 여러 개의 XML(Extensible Markup Language) 파일이 압축된 형태다. 여기에 표, 이미지, 각주 같은 요소까지 포함되면 정제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파일을 폴더에 저장하는 방식 또한 AI가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다. “마케팅 > 2025년 > 3분기” 폴더 안에 보고서가 있지만, 그 보고서가 영업팀의 어떤 프로젝트와 연결되는지는 폴더 구조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AI가 파일을 읽어도 문서가 어떤 이유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내지식베이스나 기업의 웹페이지를 만드는 위키방식 또한 AI가 맥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위키 방식 하이퍼링크는 HTML태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AI가 HTML 태그 사이에서 텍스트와 링크의 목적을 분리하는 ‘파싱(Parsing)’ 과정에서 많은 비용을 소모한다. 링크가 깨지거나 업데이트가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웹 주소를 링크한 경우 어떤 비즈니스적 맥락을 갖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동안 사용해 온 데이터 포맷과 저장 방식 모두 AI에이전트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마크다운의 부상...AI시대 문법으로이런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MS는 ‘MS365 코파일럿 검색 API’를 내놓았다. 원드라이브, 쉐어포인트 등에 저장된 기존 문서를 RAG를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워드 포맷 자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기존 워드·엑셀·아웃룩 환경을 유지하면서 LLM에 데이터를 컨텍스트로 전달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MS가 기존 포맷을 유지하면서 AI인프라를 깔겠다는 전략이라면, 노션은 ‘처음부터 AI에 최적화된 데이터 구조로 작업하면 별도 인프라가 필요없다’는 전략이다.
노션은 사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는 순간부터 블록 단위로 구조화되고, 마크다운으로 서식이 정의되며, DB와 페이지 간 관계가 자동으로 기록된다. 데이터가 입력 단계에서 이미 구조화되어 있어 별도의 정제 과정 없이 AI가 즉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마크다운은 키보드와 일반 문자만으로 웹 서식을 표현하는 문법 구조다. 2004년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기술블로거인 존 그루버가 블로그 글쓰기를 쉽게 하려고 에런 스워츠와 함께 만든 경량 포맷이다. ‘#로’ 큰제목과 소제목을 지정하고, 원하는 텍스트에 ‘[링크명](URL)’을 써서 간단히 하이퍼링크를 만드는 식이다. 주로 개발자 문서나 노션, 옵시디언 등 노트앱에서 표준으로 사용된다.
온갖 태그로 범벅된 HTML 문서 등과 달리, 마크다운 기반 구조는 모든 콘텐츠가 제목·본문·리스트 등으로 태깅되어 있고, 페이지 간 관계가 데이터베이스 수준에서 기록된다. AI가 문서의 구조와 문서간 관계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프로젝트, 담당자, 일정간의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이는 AI에이전트가 “이 문서는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단계에서, 누가 만든 것인지”라는 관계정보를 이해하고 문서의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맥락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간단하게 온톨로지를 구현해 데이터 정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AI에이전트OS로 성장하는 노션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존 데이터 관리 방식에서는 AI성능 향상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은 익숙한 업무 방식을 유지하되 AI가 특정 업무를 ‘대체’하길 기대하며, 외부 AI 플랫폼을 도입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물론 갑자기 워드, PDF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AI가 업무 환경을 바꿔가는 과도기라고 볼 수도 있다. 기존 워드, 엑셀을 활용하되 MS에서 제공하는 API로 ‘코파일럿’과 연결할 수도 있고, 일상적인 업무에서 새로운 문서 및 협업 도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션으로 보고서, 회의록 등을 생성하거나 프로젝트 일정을 관리할 수 있다. 신입사원 온보딩 페이지를 만들고, 고객 불만 사항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둔 페이지에서 에이전트를 실행하면 보고서와 회의록을 기반으로 사업 계획서를 생성하거나, 신입사원들이 검색할 수 있는 챗봇을 제작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이처럼 노션은 ‘AI에이전트 운영체제(OS)’로 성장하고 있다. 슬랙, 자피어 등 외부 플랫폼과 연동되기 때문에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권한 내에서 여러 플랫폼과 데이터베이스를 오고가며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해 주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MS원드라이브, 쉐어포인트 계정을 ’노션 커넥터‘로 연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연결된 데이터는 노션 AI가 원드라이브 내부의 맥락을 읽어 답변을 생성하는 데 사용된다.
특히 올해 2월 출시한 커스텀에이전트에 대한 국내 사용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박 지사장은 “아시아태평양(APAC)지역에서 만들어진 AI에이전트들 중 10%가 한국 사용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용자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AI에이전트를 개발해 실험하는 단계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 시장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편, 노션은 2026년 가을경 국내에 데이터 레지던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금융·공공 등 보안 규정이 엄격한 산업군에서는 해외 서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 자체가 도입 장벽이었기 때문에, 국내 기업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