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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과장급 연봉 1억 넘는데 이직 늘어나는 이유는
입력 : 2022.08.29 14: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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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노사가 2022년 임금교섭 잠정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현대차 책임(과장급) 1년 차 연봉이 올해 1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또한 직원 1인당 평균 연봉 역시 올해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공개한 현대차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임직원 중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숫자가 2018년 데이터 공개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발적 퇴사자는 총 486명으로 2020년 298명 대비 6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이 높아졌는데, 이직률도 높아졌다. 두 사례는 현재 현대차가 처한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지난해 이직률이 높았고, 올해는 임금교섭에 따라 성과급이 전년 대비 늘어나면서 연봉이 올라갔다. 책임급 연봉 1억원, 직원 평균 연봉 1억원은 물론 많은 금액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SK, LG화학 등 다른 국내 대기업들의 평균 연봉이 수년 전에 1억원을 넘겼던 만큼 현대차 직원들의 상실감은 컸다.
거센 전동화 패러다임 속에서 현대차는 대외적으로는 친환경차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완성차 기업을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도 한창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까지 봉합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놓였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사진 연합뉴스>
현대차 성과급이 지난해 대비 늘어난 만큼 올해 직원 연봉도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현대차 직원들은 기본급 7만5000원 인상과 경영성과급 200%, 일시금 580만원과 주식 5주 등을 받았다. 올해 초 현대차가 전 직원에게 코로나 격려금 400만원을 지급한 것이 더해지면서 책임 1년 차 연봉은 1억원을 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직원들은 불만이다. 특히 남양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대졸 출신 연구원들의 상당수는 올해 성과급이 높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대차 성과급은 2014년을 정점으로 2020년까지 꾸준히 하락했다가 지난해와 올해 소폭 늘어났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직원들의 불만은 여기서 시작됐다. 2014년 현대차 평균 연봉은 9700만원으로 국내 기업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높았다. 이후 실적 하락에 따라 성과급이 대폭 축소되면서 지금은 재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이에 책임급 연봉도 그간 1억원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원, 대리급 연봉도 삼성전자나 SK그룹과 같은 대기업 대비 현저히 낮았다. 한 현대차 직원은 “다른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점점 줄면서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불과 5~6년 전만 해도 업계를 비롯해 국내 최고 기업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의 상실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존 연봉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만큼 별도의 임금 테이블을 만들어 구글과 같은 유명 기업의 SW 인력을 높은 연봉을 주고 채용하고 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원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업계에서는 2014년 이후 이어진 연봉 하락과 최근 SW 인력에 대한 투자가 결국에는 이직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 2022년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 국내 임직원의 자발적 이직자는 총 486명으로 2020년 대비 63% 증가했다. 자발적 이직자는 정년퇴직과 해고 등의 사유가 아닌 직원 본인의 자발적 이유로 이직한 경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직장을 옮길 때 이는 자발적 이직자에 해당한다. 현대차는 2018년도부터 자발적 이직률을 공개해왔는데 지난해 자발적 이직자 수가 가장 많았다. 현대차의 자발적 이직자 수는 2018년 298명, 2019년 370명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직이 가장 활발한 나이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 만큼 현대차도 젊은 직원들의 이직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이는 현대차 노조 파업 찬반 투표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 과정에서 사측이 합의안을 내놓지 않자 지난 7월 1일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찬반투표에는 전체 조합원(4만6568명) 중 4만958명(투표율 87.9%)이 참여해 3만3436명(재적 대비 71.8%)이 찬성했다. 그런데 연구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양연구소 노조인 남양위원회만 보면 재적 조합원 5866명 중 4577명(투표율 78%)이 투표했고, 이 중 4442명(재적 대비 75.7%)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남양연구소 찬성률이 울산·전주·아산공장과 판매위원회 등을 합한 평균 찬성률보다 3.9%포인트 높았다. 투표자 대비 찬성률로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남양연구소 찬성률은 97.1%로 전체 평균 81.6%보다 15.5%포인트나 더 높게 나타났다. 올해 처음으로 지역별 개표를 했는데 연구직 조합원들의 파업 찬성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것이다. 임금과 성과급에 가진 불만을 가진 연구직들이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9년과 2020년 연간 매출액이 100조원을 연속해서 넘었는데도 임금이 감소하자 지난해에는 적절한 성과급을 바라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현대차그룹 사무·연구직 노조가 출범하기도 했다. 올해 남양연구소에서 파업 찬성률이 높은 것은 지난해 현대차 매출액이 117조6106억원으로 전년보다 13.1% 늘어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과도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7월 올해 임금협상 타결 조인식을 열고 교섭을 최종 마무리했다. <사진 연합뉴스>
▶연구직 vs 기술직, 끝나지 않은 쟁점 업계는 연구직과 기술직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기에 이러한 갈등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언급했듯이 대졸 중심의 연구직은 정당한 보상을 원하고 있는데 기술직이 대다수인 노조는 고용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단협 교섭에서 노조가 국내 전기차 공장 신설과 신규 채용은 물론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요구했던 이유다.
50대 이상 생산직들의 정년퇴직이 이어지면서 현대차 노조원 수도 최근 3년간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 가입자는 4만7538명으로 전체 직원의 66.3%를 차지했다. 현대차 노조 가입자 수는 2019년 4만9641명, 2020년 4만8933명이었다. 전체 직원 대비 가입 비율도 2019년 70.7%에 이어 2020년 68.2%로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업계는 현대차에서 향후 매년 2000여 명 이상의 기술직들이 퇴직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노조 가입 숫자는 2024년 3만여 명, 2028년에는 2만여 명으로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노조의 대자보.
업계 관계자는 “연구직과 기술직이 바라보는 곳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기술직 중심의 노조가 이끌어내는 임단협 합의안에 연구직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합의안에는 연구직 별도임금체계를 내년 3월까지 노사가 함께 마련한다는 내용도 담겼는데 이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SW) 직군을 위한 별도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연구직 간 갈등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존 연구소 직원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직군별 임금에 차별을 두는 규정이 노사 합의로 이뤄질 경우 기존 직원들의 상실감은 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발생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이 현대차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딱히 해결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해고뿐 아니라 취업이 용이한 미국처럼 고용 문화가 유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는 만큼 인력 개편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SW 인력은 필요한데 기존 인력들의 불만, 기술직이 원하는 고용 안정성 확보까지 실타래는 너무 복잡하게 엮여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는 것 외에 답이 없다”며 “이 파고를 현대차가 어떻게 넘길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원호섭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4호 (2022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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