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에 꽂힌 이유
입력 : 2022.07.28 16:53:15
-
‘화상으로 진료받고 앱으로 처방받고’.
펜데믹 이후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산업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덤벨 이코노미가 재부각된 가운데, 특히 ICT 기반의 디지털 헬스케어가 뉴노멀로 떠오르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기대수명 상승으로 건강한 삶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의료의 패러다임이 진단·치료에서 예방·관리 중심으로 이동한 것도 한 요인이다. 선진국들은 역병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CT 기반의 신개념 의료 서비스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원격의료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팬데믹 시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허용되어 디지털 헬스케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을 방증했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자체 앱을 적용하는 기관도 빠르게 늘고 있다. 환자용 앱을 개발하는 레몬헬스케어에 따르면 현재 상급종합병원 45곳 중 32곳(71%)과 종합병원, 병원 등 50여 곳이 이 회사의 서비스를 통해 앱을 구축했다. 환자가 사용하는 앱은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병원은 환자 응대나 진료기록 관리 등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다.
▶카카오·뱅샐이 쏘아올린 작은 공 금융사의 헬스케어 분야 사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본인신용정보관리업) 시행 이후 몇몇 금융사들은 헬스케어 진출 등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하나의 금융 앱에서 내가 보유한 부채, 현금, 주식 등 금융자산을 한눈에 보고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돕는다. 금융사들은 소비자의 자산 특성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추천하고 비금융·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한다.
대표적으로 카카오는 최근 현대중공업그룹과 설립한 국내 최초 의료데이터 전문회사를 3년 만에 청산하고 카카오헬스케어를 중심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확대한다. 지난 5월 말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센터가 법인 해산했다. 대신 카카오는 올해 3월 신설한 카카오헬스케어를 앞세워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GIA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1936억달러에서 2027년 6459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헬스케어는 현재 14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등 7개 병원과 ▲지니너스 ▲위뉴 ▲스카이랩스 ▲누비랩 ▲포티파이 ▲히치메드 ▲원스클로벌 등 7개 스타트업이 포함됐다. 유전자 분석부터 식습관 개선, 비대면 심리상담, AI 전자문진, 의약품 정보제공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에 대해 윤예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환자데이터 수집 및 원격진료는 이해관계자가 많고 법률적으로도 해결할 지점이 많아 카카오에서도 보수적인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향후 데이터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카카오 내 AI 사업부인 엔터프라이즈, 브레인과 시너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카카오보다 먼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각광을 받은 핀테크 업체는 마이데이터 전문기업 뱅크샐러드다. 뱅크샐러드가 제공하는 건강 서비스 ‘유전자 검사’ 검사자 수가 서비스 오픈 이후 지난해 5월 기준, 이미 12만 명을 넘어섰다. 뱅크샐러드 앱에서 유전자 검사에 참여하면 집으로 마크로젠 유전자 검사 키트가 오고 타액(침)을 채취해 이를 마크로젠으로 보내면 영양소, 운동, 피부, 모발, 식습관, 개인 특성, 건강관리 등 65개 항목에 걸쳐 유전형질을 분석해주는 방식이다. 하루 검사자 수를 700명으로 확대했지만, 평균 30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며 평균 5회 시도 만에 검사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2030세대가 약 87%에 이른다. 뱅크샐러드 관계자는 “뱅크샐러드 앱에서 문턱이 높았던 유전자 검사를 무료로 접하게 되면서 일상 속 데이터 활용이 익숙한 젊은이들의 생활 습관과 큰 시너지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뱅크샐러드 유전자 검사
뱅크샐러드는 질병관리, 유전자 검사 서비스 외에도 개인의 건강검진 및 예방접종 정보를 제공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개인의 건강검진 기록과 질병관리청이 제공하는 예방접종 내역을 뱅크샐러드 앱에서 간편하게 조회할 수 있다. 김태훈 뱅크샐러드 대표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는 데이터로 일상을 관리하는 것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자발적으로 SNS에 공유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며, “건강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더욱 유용한 서비스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선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개인신용정보뿐 아니라 공공, 의료 등으로도 확산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의료·건강 마이데이터는 해외에서 마이데이터 성공 사례가 입증되었고 국내 시장의 수요도 많은 만큼 정부에서도 관심 있게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마이헬스웨이’ 구축을 시작해 2023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연관 부처도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12월 헬스케어 자회사 신한큐브온을 설립하고 ‘하우핏’ 앱을 통해 보험사 최초로 독자적인 홈트레이닝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하우핏은 AI 동작인식 기술과 라이브 서비스를 결합한 홈트레이닝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별도의 웨어러블 장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AI가 사용자 움직임을 분석해 운동 자세를 교정할 수 있게 했다. 향후 이와 같은 운동 관련 콘텐츠의 다양성을 높이고 헬스케어 관련 파트너사들과 협업해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아울러 신한라이프는 고객 생애주기 전부를 책임지는 ‘종합돌봄 서비스 제공자(Full Care Service Provider)’로서 고객이 일상에서 더 편리하게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삼성생명도 ‘더헬스’라는 헬스케어 전용 앱을 통해 걸음 수와 식이 상태 등을 분석해 식단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교보생명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인슈어테크를 결합해 만든 케어(Kare) 앱을 운영하고 있다. 케어는 분당서울대병원과 건강 예측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암, 치매 등 10여 개 질환 위험도를 예측하고, 맞춤형 건강관리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 한화생명은 헬스케어 플랫폼 헬로(HELLO)를 중심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에 나서고 있다. 헬로는 AI 카메라 기반의 영양분석 기술을 가진 ‘두잉랩’, 생체나이 분석 솔루션을 운영 중인 ‘바이오에이지’, 데이터 보안 기술을 갖춘 ‘라이프시맨틱스’ 등과 협업해 마련한 앱이다.
은행업계에서는 하나은행이 최근 의료정밀진단 플랫폼 기업 엔젠바이오와 함께 하나은행 2개 PB센터 영업점에 헬스케어 상담 부스를 마련하고, VIP 손님을 대상으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검사, DTC 검사 등 개인 유전자 검사와 헬스케어 상담 등에 나섰다. 엔젠바이오와 전문의가 제공하는 다양한 건강 정보를 하나은행 자산관리 웹진 ‘하나원큐M’에 싣고, 전국 PB센터를 순회하며 ‘신(新) 5060 건강 점프 업’ 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협약으로 고객 건강까지 케어하는 토털 라이프케어 서비스도 구축하게 됐다”며 “향후 마이헬스케어 데이터 제휴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신한생명 하우핏
한 헬스케어 기업 관계자는 “마이데이터에 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금융업계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고객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영역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의료를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부의 비대면 의료 규제 완화 등 정책적 노력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사각지대가 점진적으로 축소될 전망”이라며 “금융뿐 아니라 비금융 분야 역시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확산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3호 (2022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