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연의 인문학산책 ⑯ 자멸의 방식으로 세상을 깨우쳤던 천재들
입력 : 2020.05.07 11:20:41
-
세상에는 늘 이단아들이 있다. 기존 질서나 전통, 권력이나 관습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인생은 불행했다. 안전한 삶에 안주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그들은 파란 많은 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온한 삶은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옆으로 비켜선 채 세상을 바라본 그들은 울타리 안에서 평온을 추구한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을 봤다. 이탈한 자의 깨달음으로 자신만의 무늬를 남긴 2명의 시인을 만나보자.
“그는 하나님의 제단에 가져다 바칠 돈이 없었고
하늘에서 그에게 축복이 쏟아진 적도 없었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프랑수아 비용에 대하여>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이 두 문장은 비용의 삶 전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15세기 프랑스 시인인 비용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큰 요인을 ‘노력과 운’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본다면 비용의 인생 나침반은 모두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쉽게 말해 그 스스로 신을 찾지도 않았고, 신도 그에게 축복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그의 삶은 가난과 굶주림, 방탕과 범죄, 추방과 투옥으로 얼룩졌다. 그렇게 잡초처럼 사라져갔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생은 한 가지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다름아닌 시(詩)다. 그의 시는 굳이 분류하자면 매우 확고한 리얼리즘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는 시대의 불안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최초의 현대적 시인’이었다.
베 짜는 이가 손에 불붙은 지푸라기를 쥐고 있을 때
천자락의 실밥이 그러하듯.
욥은 이렇게 말했으니,
튀어나온 실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금세 한순간에 이를 없애 버린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 내게 밀려와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는 모두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 프랑수아 비용 <유언의 노래> 중 당시 리얼리즘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중세 말기 프랑스에서 리얼리즘 문학이란 그 개념조차 접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운명과 상상력을 짓누르는 신(神)이라는 억압기제가 있었을 것이고, 삶과 행동 하나하나를 계급이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벌거벗기고 전복시켜버리는 언어로 시를 썼다. 아마 당시로서는 혁명에 준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비용이 자기 자신을 실험도구로 썼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용은 시의 언어 이전에 몸으로 가식에 가득 찬 세상과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로 비용의 시다.
▶자신의 삶을 실험으로 내몰다 그의 문장에서는 왕도 주교도, 요조숙녀도 지식인도 한낱 욕망에 전전긍긍하고 거짓이 몸에 배인 협잡꾼들에 불과했다. 그의 시는 아주 슬프고 가혹한 언어로 불쌍한 인간세상을 조롱하고 재현했다. 이런 시적 특질 때문에 그는 ‘프랑스 최초의 근대시인’으로 추앙받는다. 재미있는 건 아무도 이런 헌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용 없이는 보들레르도 베를렌도 아폴리네르도 없었을 것이므로.
비용은 왜 이런 신도 귀족도 아닌 그저 그런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을까. 왜 그렇게 인간세상의 가혹함을 문학으로 남기고자 했을까. 왜 그랬을까. 1431년 파리에서 출생한 비용은 파리대학을 졸업했지만 24살 때 타락한 신부 필리프 세르무아즈와 언쟁 끝에 그를 살해한다. 파리를 떠나 도망자로 살던 그는 사면을 받아 돌아왔지만 다시 나바르신학교에 침입, 학교 돈을 탈취한 죄목으로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됐다. 이후 비용의 삶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는 도망과 투옥으로 점철됐다. 그의 대표작이자 대작인 <유언시집(Le Testament)>이 구상되고 쓰인 것도 1461년 교회감옥에 있을 때였다고 전한다. 그에 관한 기록은 1463년 사라진다. 또 다시 추방명령을 받은 해였는데 그가 그때 사망했다는 설도 있고 타지로 옮겨가 조금 더 살았다는 주장도 있다. 비용은 왜 그렇게 반사회적으로 살았을까.
비용은 삶 속에 죽음을 너무나 쉽게 포함시켜버린 조숙아였다. 그는 어떻게 살든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죽음’이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간파한 사람이었다. 그랬으니 그의 눈에 인간은 ‘죽음’이라는 정해진 길을 향해 목줄에 묶인 채 끌려가는 짐승 무리들에 불과했다. 그의 대표작 <유언의 노래>에 포함된 시들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희화화된 진혼곡이다. 모든 인간이 주인공인 진혼곡. 비용은 시에서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덧없이 사라져 가고 만다”는 말을 인용한다.
-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중 민음사판 로트레아몽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 속표지에는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로트레아몽이 있었다. 그림 속에서 로트레아몽은 미소년이다. 선이 가는 눈매에 가녀린 턱선까지 여지 없는 미소년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하기야 24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중년 이후의 모습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시인이다. 그 미소년의 얼굴을 감상하고 책장을 넘기면 놀랍게도 악마의 시가 나타난다.
만약 대지가 바다기슭의 모래알처럼 이것들로 덮여 있다면 인간 족속은 무서운 고통에 시달려 전멸할 것이다. 굉장한 광경이리라! 나는 천사의 날개를 하고서 공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채 그것을 관망할 것이다.
- <말도로르의 노래> 중 인간들을 전멸시키고 그 광경을 하늘에서 관망하겠다니. 이 미소년은 도대체 어떤 지향 때문에 이런 시를 썼을까. 무슨 심정으로 이 악마적인 창조에 나선 것일까. 더 놀라운 건 <말도로르의 노래>는 악마적 상징과 폭력적 묘사로 일관하지만 결코 시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말로로르의 노래>는 상징과 묘사와 리듬이 매우 적절하게 모든 행간에 꽂혀 있다. 놀라운 치밀함이고 완성도다. <말도로르의 노래>는 말도로르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전개되는 매우 긴 산문형태의 시다. 난해한 산문시이지만 <말도로르의 노래>는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마력이 있다. 수렁에 빠지듯 그의 글 속을 헤매게 된다. 나이도 차기 전에 그를 늙어버리게 한 흔적. 그건 명예로운 것인가 치욕스러운 것인가? 그의 주름살은 존경심을 가지고 쳐다보아야 할 것인가? 나는 그걸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알기가 두렵다. 그가 자신이 생각하지 않은 바를 얘기했다 할지라도. 허물어진 자비심의 갈기갈기 찢긴 잔해에 자극되어 그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오 참으로 음울하도다! 자네는 어기서 왔는가?
- <말도로르의 노래> 중 ▶이성으로 포장한 세상을 비웃다 로트레아몽은 자신의 난폭한 시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이 죽었다. 그의 난폭한 시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훗날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로트레아몽의 이력은 너무나 간단하게만 남아있다. 본명이 이지도르 뒤카스인 로트레아몽은 1846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프랑스 영사관 일등서기관의 아들로 태어난다. 14세 때 중등교육을 받기 위해 프랑스로 온 그는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문학에 전념해 1868년 <말도로르의 노래> 제1집을 익명으로 출간한다. 이후 5개 시집을 완성해 발표했으나 발매중지를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187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객사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로트레아몽의 시가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발견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로트레아몽을 근대시의 화신으로 격상시켜 랭보와 비슷한 반열에 올려놓는다. 로트레아몽은 주로 동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격렬하게 비하한다. 왜냐하면 이성이라는 걸로 스스로를 치장한 채 살아가는 인간을 비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소재가 정직한 생존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오 박쥐여, 코 위에 편자 모양의 도가머리에 솟아 있는 너, 너의 날갯짓으로 나를 깨워준 것을 나는 너에게 감사한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하나의 일시적인 병이었음을 나는 실제로 알아차리며 나는 생명의 소생함을 역겹게 느낀다.
- <말도로르의 노래> 중 <말도로르의 노래>는 신성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로트레아몽은 뭔가 악마적인 방향으로 궁극에 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도로르의 노래>를 읽으면 흡사 짜라투스트라의 악마 버전을 보는 듯하다. 그는 어쩌면 가장 정직한 방법, 가장 가식이 없는 방법으로 세상을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비애, 우울, 욕망, 유치함, 죽음, 싸움… 뭐 이런 것들로 말이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6호 (2020년 5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