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기의 기업 전략 上 | 시장 위의 ‘보이는 손’과 경영전략

    입력 : 2020.04.01 11:34:59

  • 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기업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환경이 날로 복잡해지면서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구촌은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 지역의 문제가 급속히 전 세계 국가로 확산되면서 기업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외부 압력도 빈번해지고 있다. 정치인과 외교관만 정치와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의제를 가지고 시민 단체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각자가 시장과 국경을 넘나들면서 사적 정치와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 경영과 시장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사회적 영역 등을 통틀어 비시장(非市場, nonmarket)이라고 한다. 사회체제 전체의 시각에서 보면, 기업과 시장은 홀로 독립하여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비시장 영역의 제한을 받으면서 움직인다. 비유적으로 시장을 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한다면, 비시장은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힘과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시장과 비시장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기업 정서와 규제, 기업에 대한 비판과 불신, 사회적 책임 등 비시장적 요소가 거역할 수 없는 기업 경영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장 전략만으로는 부족하고 비시장 전략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시장을 넘어서(beyond the market) 비시장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류 경영학자와 혁혁한 업적을 성취한 경영자들은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수많은 해법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기업이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소비자와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외부 요인이 적은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잘 작동이 되었지만, 사회체제가 고도화됨에 따라 시장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해서는 지속가능한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기존의 주주자본주의(shareholer capitalism)의 대안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시장에서의 성공에 중심을 둔 논의에 머물러 있다.

    기업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비시장의 보이는 손을 모두 경영해야 하는 현실은 다음과 같은 비시장의 현저한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업 활동에 대한 국내 규제의 강화를 들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시장의 불완전성과 실패(market failure)가 놓여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제한 정책은 이러한 규제의 대표적인 예다. 또 우리나라 국회에 제출된 기업 규제 관련 법률안이 과거에 비하여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외국 사례로는 아마도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가 지난 2007년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시킨 시장 및 정부 실패를 교정하기 위하여 마련한 월가개혁법이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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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사회의 정치화를 들 수 있다. 정당을 중심으로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부가 교체되는 공공영역 이외에도 사회영역에서 각종 이익단체와 NGO 등의 민간단체가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회운동가들은 1970년대 이후 주로 기업의 행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입법과 규제를 목표로 한 공적 정치(official politics)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 정치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거대한 자원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관련 기업들의 로비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러자 이들은 1980년대 이후 대상 기업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여 명성과 브랜드에 타격을 가하거나, 대상 기업이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생산·유통 라인, 즉 시장 자체를 공격하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동물보호주의자들이 소규모로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축산현장을 공격할 수 없게 되자 축산물을 소비하는 외식업계의 리더인 프랜차이즈 업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린피스는 우리나라의 원양어선이 아프리카, 남미 등의 어장에서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불법어업을 하였다고 직접 공격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이를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리나라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의사를 밝히자, 우리나라 정부가 2015년 원양어업에 관한 법률을 전면적으로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기업 활동의 국제화를 들 수 있다. 국제사회가 조약과 협정, 예를 들면, 환경과 자원, 무역, 투자, 금융, 조세, 저작권, 범죄예방, 부패방지, 노동, 인권, 공정거래 등에 관한 협정과 규범을 통하여 법적, 사회적 규제를 가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채굴된 분쟁광물(탄탈륨, 주석, 텅스텐 및 금 등)과 아동노동에 관한 규제를 들 수 있다. 무장단체들은 분쟁광물을 이용하여 군사자금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아동노동에 대한 논란이 생기고 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분쟁광물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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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책임에 대한 요구 수준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기업은 소비자와 시민의 요구를 경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의 요구는 내일의 법과 규제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경향에 맞추어 국제기구는 책임 및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엔은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라는 자발적 체계를 통해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발전, 인권, 아동노동의 보호, 부패방지 등의 의제를 전 지구적 이슈로 관리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경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엄청난 속도를 가진 변화 그 자체이다. 비즈니스 철학자로 알려진 런던비즈니스스쿨의 게리 해멀(Gary Hamel) 교수는 이에 관하여 “변화 그 자체가 변했다. 이제 변화는 더 이상 점진적이지 않다. 변화는 더 이상 단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21세기의 변화는 불연속적이고 돌발적이며 선동적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21세기의 모든 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업이 ‘세상이 변하는 만큼 빨리 바뀔 수 있는가’이다. 비시장 영역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가 심하고 기업과 시장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비시장의 보이는 손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하며 글로벌 수준의 비시장 전략을 구사할 단계가 되었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전략만큼 기업의 생존과 지속적 경쟁 우위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관행이나 성공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비시장적 위기를 더 키우는 지름길이다.

    사회와 정책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조직을 상설화하고 다양한 비시장적 영역의 목소리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 컨틴전시 플랜에 더해, 비시장 영역의 이해관계자가 제기할 수 있는 위기들을 규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제 기업은 소비자와 시장을 상대로 하는 시장경영뿐만 아니라 비시장을 관리하는 비시장 경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된 현실은 기업에게는 불가피하고 머리 아픈 부담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5호 (2020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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