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린와인 ‘비뉴 베르드’로 유명한 포르투갈 아벨레다 와이너리 ‘그린와인’ 날카로운 산미에 무더위 싹
입력 : 2019.07.31 15:25:36
-
포르투갈은 유럽대륙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 방문하기가 남미만큼이나 쉽지 않다. 아직 직항노선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인천공항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까지 약 11시간. 공항에서 포르투갈로 들어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3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다시 3시간을 날아가야 포르투갈 제2도시 포르투(Porto)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a) 대신 포르투로 들어간 이유는 포르투갈 북부지방에서 생산되는 ‘비뉴 베르드(Vinho Verde)’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다.
비뉴 베르드는 ‘그린와인’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와인이다. ‘그린와인’은 전 세계 와인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한국시장에서는 조금씩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수준이다.
포르투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까잘 가르시아’라는 그린와인을 생산하는 아벨레다(Aveleda) 와이너리가 나온다. 까잘 가르시아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수출되는 그린와인이다. 아벨레다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10여 마리의 공작새가 어슬렁거리며 손님들을 반겼다. 공작새는 이 와이너리의 상징이다.
아직 덜 자라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의 포도 알갱이들이 포도 넝쿨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는 통상 8~9월에 수확한다. 푸른 포도밭에는 열마다 붉은 장미가 심어져 있었다. 장미는 병충해에 민감해 장미에 병이 들면 포도 농부들은 병충해 대책을 세운다고 한다.
포르투갈은 가족단위로 경영하는 와이너리가 많다. 아베레다 와이너리 역시 창업주의 5대손인 마르틴 게데스(Martim Guedes) 등 창업주의 자손들이 공동운영하고 있다. 게데스 씨는 ‘비뉴 베르드’의 의미부터 설명했다. 비뉴는 포르투갈어로 와인, 베르드는 녹색이란 뜻이다.
‘그린와인’을 녹색 와인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린와인은 일종의 화이트와인이다. 와인의 색깔보다는 실제는 와인을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마신다는 뜻, 즉 어린 와인이라는 의미다. 오크통에 넣어 오랜 숙성기간을 거치는 일반 와인과 달리 비뉴 베르드는 포도 수확 후 3~6개월 내에 와인 병에 담겨 출시된다. 비뉴 베르드는 특유의 덜 숙성된 와인의 경쾌함을 살리기 위해 완전히 익지 않은 어린 포도를 따서 만든다. 포도가 너무 익으면 당도가 높아지고 신맛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포도가 너무 익기 전에 와인을 만드는 전통은 다소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과거 미뉴 지방에선 땅에 감자와 옥수수를 심고 그 위에 틀을 세워 포도를 길렀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귀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포도를 새가 와서 쪼아 먹고 들짐승이 먹어 치워 포도가 너무 익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게데스 씨는 “비뉴 베르드는 포르투갈 북서부 해안가 미뉴(Minho) 지방을 포함한 지역명이자 일종의 원산지 규정(DOC)”이라면서 “프랑스 보르도 와인처럼 ‘그린와인’도 포르투갈 북부에서 생산되는 것만을 비뉴 베르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아베레다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얼음통에 담긴 다양한 종류의 비뉴 베르드를 들고 왔다. 그동안 마셨던 화이트와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맛이 열렸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시큼함이 침샘을 자극했다. 약간의 탄산감은 비뉴 베르드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예전에는 화이트와인에 기포가 올라오면 잘못 제조된 와인으로 여겼지만 비뉴 베르드는 이를 상품화시켰다. 근래에는 아예 인공적으로 소량의 탄산을 주입해 산화도 방지하고 청량감도 더해준다. 덕분에 목 넘김이 시원하다.
‘상큼함’과 ‘탄산감’이 비뉴 베르드의 강점이라면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상온에서 보관된 아벨레다 비뉴 베르드를 마셔보니 특유의 날카로운 상큼함이 살아나지 못했다. 미지근한 상태에선 탄산감도 기대에 못 미쳤다. 김이 살짝 빠진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마시던 비뉴 베르드를 다시 얼음통에 넣었다. 거짓말처럼 다시 날카로운 산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현지에서 그린와인의 소매가격은 10유로(약 1만3000원) 내외다. 레스토랑에선 물대신 음료수 대용으로도 그린와인을 ‘벌컥벌컥’ 많이 마신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전 세계에서 국민 1인당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가 된 이유도 ‘그린와인’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시음자들 사이에서 “한국의 무더운 여름에 차갑게 마시면 훌륭할 것 같다”면서 “신선한 생선회와 함께 마시기도 좋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린와인’의 상큼함을 뒤로 하고 포르투갈의 ‘와인 성지’라 불리는 도우루(Douro) 지역으로 이동했다.
도우루 협곡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스페인에서 시작한 도우루 강은 협곡을 따라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질러 흐른다. 종착점은 포르투갈의 포르투 항구다. 여기서 대서양을 만난다. 과거에는 강에 배를 띄워 도우루 협곡에서 수확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어 포르투 항구로 수송했다. 아직도 포르투항의 남쪽 빌라노바 드 가야에는 와인 숙성을 위한 저장고가 많다. 지금은 댐이 만들어져 도우루 강에 유람선이 다닐 정도지만 과거에는 협곡을 따라 물살이 거셌다고 한다. 도우루에서 포도밭을 운영하는 메시아 와이너리의 마가리다 발렌트씨는 “포도 수확철인 8월이 되면 도우루의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올라간다”면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껏 당을 끌어올린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지만 포도 품질이 좋아 나쁜 와인을 만들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선 도우루 포도산지에 대한 자부심이 읽혔다. 메시아 와이너리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을 생산한다. 맛이 달달해 식후에 마시는 디저트 와인으로 인기다. 상큼하며 드라이한 ‘그린와인’은 포도 잎의 까슬까슬한 뒷면이라면 달달한 ‘포트와인’은 포도 잎의 부드러운 앞면 같다.
포르투갈의 대표 와인인 ‘포트와인’을 전 세계에 알린 건 1337년 시작된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때다. 전쟁이 벌어지자 영국은 프랑스 대신 포르투갈에서 와인을 수입한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영국으로 수송하다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효 중간에 브랜디를 넣었다. 덕분에 포트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20%가 넘는다. 소주보다 더 독한 셈이다. 당시 영국인들은 수출을 담당한 항구 이름인 ‘포르투’ 항구를 따서 ‘포트와인’이라 불렀다. 맛이 달콤해 식후에 마시는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트와인의 탄생이다.
메시아 와이너리에는 다양한 빈티지 포트와인들이 눈길을 끌었다. 수확한 포도 품질이 좋았던 해의 포도로 만든 와인은 해당연도를 레이블에 표시해 빈티지 와인이라고 부른다. ‘생빈’이라고 자신이 태어난 해의 빈티지 와인을 모으는 와인 애호가도 많다. 예를 들면 1977년생이 1977년 빈티지 와인을 사서 모으는 것이다. 포트와인의 경우 빈티지 와인이란 표현 대신 빈티지 포트라고 부른다. 메시아의 빈티지 포트들은 한국의 ‘생빈’ 소비자에게 선물이나 장식용으로도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정남쪽 세투발 지역에는 달콤한 모스카텔 와인으로 유명한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 와이너리가 있다. 이 와이너리 집안의 일원이자 수석 와인양조가인 도밍고스 소아르스 프랑코 부사장은 포트와인에 사용되는 일반 브랜디 대신 프랑스 아르마냑(Armagnac) 브랜디를 사용한 ‘프리바다 모스카텔 드 세투발 아르마냑’으로 히트를 쳤다. 한국 시장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이다.
아벨레다 와이너리의 바아트리즈 산토스 브랜드 매니저가 ‘그린 와인’이라 불리는 비뉴 베르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살짝 덜 익은 포도를 사용한 비뉴 베르드는 약간 드라이하며서도 날카로운 산미가 특징이다.
‘색다른 맛’ 한국서 저평가돼
프랑코 부사장은 최근에는 암포라(Amphora)와인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암포라는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호리병 모양의 고대 그리스 진흙 용기로 식음료 저장에 사용됐다. 실제 눈으로 본 암포라는 한국의 장독대 같았다. 여기에 와인을 넣고 숙성시키면 ‘흙맛’이 배어 나온다. 화이트와인을 넣으면 흙과 호흡하면서 오렌지색으로 변한다.
그는 “암포라는 진흙으로 만드는데 진흙의 원산지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 진흙을 블렌딩하고 이에 적절한 와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알렝케르(Alenquer)의 초카팔라 와이너리는 가족단위로 경영하는 중소 와이너리다. 창업자인 파블로 타바레스 드 실바 씨는 포르투갈 해군장교로 당시 식민지였던 앙골라에서 근무하다 은퇴 후 와이너리를 창업했다. 지금은 아내와 두 딸이 와인 양조에 참여하고 있다. 가족이 경영하는 중소 와이너리는 대형 와이너리에 비해 장인 정신이 살아 있다.
통상 포도 농장 규모가 200핵타르는 돼야 연구실이 있고 일정한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초카펠라 와이너리는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연구실도 있고 위생상태도 깔끔했다.
실바 씨는 “2014년엔 비가 많이 와서 와인 맛이 희석됐다. 그 해 생산된 와인은 일반 벌크 와인으로 팔고 초카팔라 브랜드로 만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음자들의 주목을 받은 와인 중엔 ‘초카팔라 리저르바 화이트와인’이 포함됐다. 연간 2500병만 생산된다고 한다. “향후 생산을 더 늘릴 계획이 있는지” 묻자 실바 씨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초카펠라 와이너리의 파블로 타바레스 드 실바 창업자가 자신의 포도밭에서 와인에 쓰이는 포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 시음자는 “600병을 주문하고 싶다”며 매수의사를 밝혔다. 그는 “오너 가족이 철학을 가지고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것 같다. 와이너리의 위생상태도 청결하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와인 맛에서 힘이 느껴진다. 힘이 있는 와인은 병 속에서 숙성되며 시간이 지나도 맛이 더 좋아진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와인 수입의 세계는 치열하고 또 냉정하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와인의 종류는 수천 종이 넘는다. 몬테스알파, 1865처럼 대박을 친 아이템도 있지만 먼지만 쌓인 채 조용히 사라진 와인이 더 많다.
한 와인 수입상은 “전문가의 입맛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특히 중저가 와인의 주고객인 젊은 층의 입맛을 잘 이해해야 와인 수입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와인 맛을 너무 잘 아는 수입상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만 수입하다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게 와인 수입업계의 정설”이라고 덧붙였다.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 와이너리의 토마스 바이아오 지역 매니저가 포도 품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74년에 무혈 쿠데타인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독재정부가 무너지고 1986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포르투갈 와인산업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특히 250여 종이 넘는 포르투갈 고유의 품종을 고집하는 와이너리가 많아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에 수입된 포르투갈 와인은 중저가 시장에 포진돼 있다. 그린와인이나 포트와인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레드나 화이트와인은 스페인, 칠레 등 다른 나라 와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스페인 와인은 현지에서 1유로 밑으로 팔리는 제품들도 상당수 한국시장에 들어와 있다. 다만 스페인 와인은 와이너리마다 다소 품질에 편차가 있다면 포르투갈 와인은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게 와인 수입업계의 평가다.
칠레와 같은 신대륙의 포도 산지들은 대부분 평지다. 대단위 포도밭에서 기계로 포도 수확이 가능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포도밭은 산악지형에 소규모로 조성돼 있다.
도우루는 가파른 산비탈에 포도밭이 조성돼 있어 기계화가 불가능하다. 도우루 지역은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았다. 대규모 생산과 기계화가 쉽지 않아 가격을 낮출 수 없는 경우 또 다른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포르투갈에도 100유로(약 13만원)가 넘는 고가 와인들이 많지만 아직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입되지는 못하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의 고가 와인과 달리 포르투갈 와인은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 와인 수입상은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포르투갈 와인이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포르투갈 비뉴 베르드·도우루·앙켈레크·세투발 = 김기정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