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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수 수출 전진기지 백두산 가보니-농심 백산수, 年 10조 中시장서 다크호스
입력 : 2018.06.05 11: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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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해발 670m, 청정 원시림 보호구역 내에 농심이 만드는 생수인 ‘백산수’ 수원지가 있다. 이곳은 ‘어머니 가슴’이라는 의미로 ‘내두천’이라고 불린다. 내두천은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용천(湧泉)으로 사시사철 섭씨 6.5~7도를 유지하는 희귀한 저온 천연화산 암반수를 자랑한다.
농심은 신비감이 깃든 백두산 물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지난 2015년 2000억원을 투자해 백산수 신공장을 완공했다. 주변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도 원수(原水)의 이로움을 그대로 담아내는 조화로운 공장 ‘스마트 팩토리’를 목표로 했다.
농심 백산수가 생산되는 중국 현지 공장까지 가는 길은 공항 이동과 비행시간까지 감안하면 서울에서 출발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먼저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옌지에 도착한 뒤 자동차로 4시간여를 달리면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이도백하)에 도착한다. 얼다오바이허에서 백두산 천지까지는 약 50㎞로 차로 1시간 거리다. 5년 전만 해도 이곳은 변변한 건물 하나 없는 벌판에 불과했지만 백두산을 찾는 한국과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호텔과 식당, 아파트, 공원 등 생활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백산수 신공장 철도
현지 공장에서 만난 안명식 연변농심 대표는 “기계화된 첨단 공정을 위한 스마트공장 설립을 처음부터 내걸었다”면서 “농심 백산수의 본격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판매가 늘어나면 아직 사용하지 않는 넓은 부지들을 자연스럽게 공장 증설 용지로 활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심의 물 사업은 백산수가 처음이 아니다. 일찍부터 먹는 샘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1994년 해외 생수 브랜드 ‘볼빅(Volvic)’을 국내에 처음 들여왔고, 1998년 제주삼다수를 위탁판매해 1년여 만에 생수시장 1위로 키웠다. 이후 농심은 자체 역량을 바탕으로 농심만의 독자적인 생수 브랜드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사업은 깨끗한 수원지(水源地)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이를 위해 농심은 지리산, 울릉도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수원지를 물색했고, 멀게는 중국·프랑스·하와이까지 찾아가 조사를 벌였다. 물 성분 위주로 까다로운 자체 기준을 세워 여러 수원지들의 물을 비교 분석했다. 이런 와중에 다양한 기준에 부합하는 최상의 장소를 찾아낸 것이 지금의 백두산 수원지다. 정확하게는 백두산 원시림보호구역내 내두천이다. 이곳은 아직도 화산활동이 진행 중인 백두산 천지의 화산암반수가 자연스럽게 용출될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다. 농심 관계자는 “백산수는 백두산의 태고적 화산암반층을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통과하면서 각종 불순물이 깨끗이 걸러지고 필수 미네랄이 적절하게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물 좋기로 소문난 백두산 천지물에 인간의 도리, 즉 농심의 정성이 더해지면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백두산 천지의 좋은 물을 전 세계인들이 마실 수 있도록 백산수를 보급하자”고 직원들과 결의를 다졌다.
실제 백산수는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수백만 년에 걸쳐 땅속 화산암반층을 타고 내리면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담겼다. 노화방지, 치매예방에 좋은 실리카(규소)만 해도 다른 생수의 두 배가 넘는 ℓ당 40~48㎎에 달한다. 항산화 작용을 하는 몰리브덴과 치아를 위한 불소 성분도 많다. 취수 방식이 지표에서 억지로 물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샘솟는 물을 거두는 것도 특징이다. 자연 용출이 될 만큼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영양소 파괴 없이 고스란히 취수되는 장점이 있다.
천지, 깨끗한 물로 알려져 현지 주민과 공무원들 애용… 최근 연길초중등학교 급식 물로 선정
백산수는 한국보다는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공장 시설뿐만 아니라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의 수원지를 중국에 두고 있는 데다 물류비용도 지리상 가까운 중국 쪽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백산수 물류의 핵심은 공장 내부까지 들어와 있는 철도다. 농심은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 소유의 철도 운영권을 확보했다. 생수 공장 내부에 철도가 있어 기차로 제품을 운송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농심이 보유한 철도는 공장 내부에서부터 백하역 인근까지 총 1.7㎞ 구간이다. 이를 통해 얼다오바이허 공장에서 생산된 물은 바로 컨테이너에 담아 철도에 실은 뒤 신속하게 각지로 내보낼 수 있다. 한국으로는 철도로 대련까지 간 뒤 배로 평택, 부산항에 도착한다. 또 철길을 타고 얼다오바이허를 떠난 백산수는 심양을 거쳐 북경, 청도까지 간다. 상해로 가는 백산수는 영구항에서 뱃길로 보내진다. 대도시에 도착한 백산수는 다시 철도 등 내륙운송을 통해 중국 전역에 뿌려지게 된다. 뛰어난 물류환경 덕분에 지난해 한국과 중국에서 백산수 매출은 각각 700억원, 중국은 200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10월 백산수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생산을 나선 뒤 3년이 안 돼 중국 시장에 나름 정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와 관련, 지난 2015년 12월 농심 백산수는 북한 나진항을 거쳐 부산항에 들어왔다. 컨테이너 10개 물량으로 약 170t 규모다. 민간 상업용 컨테이너 화물이 나진항을 거쳐 국내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10년 대북 제재 이후 처음이라 당시 큰 주목을 끌었다. 이는 특히 남북한과 러시아간에 교역을 위한 ‘나진-하산 프로젝트’ 3차 시범운송 사업 일환이었다. 농심 측은 해당 사업이 정례화돼서 정기 노선이 만들어지면 물류비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백산수 생산공장에서 나진까지 차량으로 250㎞, 거기에서 부산항까지는 선박으로 950㎞인데 기존 물류 루트와는 거리상 800㎞가량 가까워진다”면서 “남북 화해무드로 새로운 운송 루트가 채택되면 국내에 들여오는 물류비 절감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얼다오바이허 공장에 진열되어 있는 초대형 백산수 모형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병 제품 기준 생수시장 규모는 653억위안(약 10조9400억원)에 달한다. 오는 2021년에는 14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대용량 말통 생수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중국 생수시장은 2000억위안(약 34조원)으로 더 커진다. 캉스푸, 농푸산췐, 이바오, 와하하 등 중국 토종 브랜드들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 기업으로는 프랑스 에비앙이 선두다. 백산수의 시장점유율은 미미하지만 천지를 수원지로 한 생수라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해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농심 측도 중국에서 수질과 물의 건강 기능성이 강조되면서 백산수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백산수 신공장 라인
중국 전역 수출 위한 물류환경 최적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공략이 과제…
상하이 시내 까르푸 매장에서 파는 백산수는 3.9위안(500㎖ 기준)으로 중국 생수보다 비싸다. 반면 글로벌 브랜드인 에비앙(8.3위안), 피지(12.9위안) 등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하다. 가격과 품질 측면에서 백산수는 틈새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특히 에비앙은 해외에서 만들어 들여오지만 백산수는 중국 내에서 생산해 판매하고 있어 중국인들에겐 자국물이라는 정서도 있다.
또 백두산 관광 활성화를 위해 중국 중앙정부가 얼다오바이허까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2~3년 내 완공키로 한 것도 백산수로서는 호재다. 중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백산수를 알리는 데 더없이 좋은 홍보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심은 현재 진행 중인 백산수 공장투어를 좀 더 체계적으로 확대해 고객을 유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 밖에 현재 소량의 백산수가 수출되는 홍콩, 일본 외에 미국, 호주, 대만 등으로 판로를 넓혀갈 계획이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프리미엄급 백산수 신제품 출시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백산수를 연 1조원 매출을 올리는 생수 브랜드로 육성한다는 것이 농심의 장기 목표다.
농심 관계자는 “에비앙 같은 글로벌 생수에 비해 덜 알려져 있을 뿐 백산수는 품질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면서 “한국 기술로 만든 생수를 해외에 판매한다는 사명을 갖고 경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남북한 화해 무드 속에서 북한을 통한 육로망이 확보된다면 북한 시장은 물론 국내 판매를 위한 물류비용이 줄어들어 백산수 생수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얼다오바이허(옌지)=김병호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3호 (2018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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