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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스크 커지자 ‘달러·금’ 투자 급증 금펀드 수익률↑ 골드바 불티나게 팔려
입력 : 2017.10.20 11: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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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까지 감행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이다. 불안감에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화나 금(金)을 매입하는 고액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과거 북한의 핵실험 뉴스에 무덤덤하게 반응했던 이들도 이번에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커졌다.
일부 자산가들은 전쟁 우려 때문이 아닌 단순 투자 목적으로도 달러와 금을 주목하고 있다. 올 들어 등락을 반복한 달러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로 떨어지면 매입을 늘리는 자산가들이 많아졌다. 쌀 때 일단 사두면 손해 보지 않는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금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값이 치솟는 추세다. 덕분에 금 펀드 수익률도 급등했다. 실물 골드바를 쟁여두는 자산가들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달러와 금은 일정 수준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며 여유자금 투자를 권고했다. 다만 단기적인 차익을 노리는 투자는 리스크가 높다고 지적하며 투자 목적에 맞춰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3일, 휴일이지만 강남 일대 프라이빗뱅커(PB)들은 비상상황에 가까웠다. 자산가들이 거래하는 PB에게 전화를 걸어 “달러나 금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한 증권사 PB팀장은 “달러를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이나 그렇지 않은 고객 모두 달러 투자를 좀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달러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자산가의 경우 이번 북한의 도발을 투자 기회로 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시중은행 PB팀장은 “미국 등 해외에 자녀들이 나가 있는 자산가들은 이번 핵실험이 지난 5차에 비해 강도가 셌던 만큼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보유현금으로 달러를 매입해 달라고 요청하는 자산가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달러를 찾는 자산가들이 크게 늘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 투자 목적으로 달러를 매입하는 자산가들도 많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등락을 반복하면서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달러를 사 모으는 ‘환테크’가 인기를 얻고 있어서다.
김탁규 IBK기업은행 반포자이PB센터 팀장은 “고객 분들 중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로 내려가면 달러를 살 테니 알려 달라는 분이 많고, 문의가 최근 들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150원대 위로 올라가면 팔기를 권하고 있는데 일부는 1200원대까지 오르기를 기다리겠다며 꾸준히 매입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는 이미 고객들 사이에서 안전자산이라는 개념이 형성돼 있어 단기적으로 물리더라도 1110원대 정도면 고객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다”며 “이미 달러 투자로 재미를 느낀 고객들이 많아 굳이 전망에 대해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인지할 만큼 수요가 꾸준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거주자들의 달러예금 규모는 지난 8월 말 기준 583억달러로 역대 최대로 불어났다. 개인들의 달러예금 잔액도 지난 7월 역대 최대인 105억원을 기록했다. 개인 달러예금 잔액 추이를 살펴보면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를 기록한 올해 3월과 5월, 그리고 7월에는 잔액이 전월에 비해 큰 폭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환율이 오를 때에는 팔아 차익을 얻어 잔액이 감소했다. 8월 잔액이 소폭 감소한 것도 환율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이 이뤄진 탓이다.
고석관 한국은행 자본이동분석팀 차장은 “환율이 떨어질 때는 개인들 매수가 늘었고 환율이 오를 때는 개인들 매매가 늘었다”며 “그 액수가 예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액자산가들은 대부분 외화예금을 활용해 달러를 매매하는데 이때 발생하는 환차익에 대해서는 세금도 붙지 않는다. 세금에 민감한 자산가들이 환테크에 적극적인 이유다.
환차익 외 추가적인 투자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펀드와 같은 금융 투자 상품을 활용할 수 있다. 달러의 경우 ‘달러 적립식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외화채권’ ,‘달러 보험’ 등 투자 상품 선택의 폭이 넓다.
김현섭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팀장은 “북핵 리스크와 국제정서 불안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환차익을 노릴 만한 상황”이라며 “투자 포트폴리오 중 20~30%를 매입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제안했다. 김 팀장은 “달러를 살 때 중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달러뿐만 아니라 ‘금’의 인기도 크게 높아졌다. 일부 자산가들이 금을 쓸어 담아 ‘금 사재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자산가들은 금에 투자하는 펀드 등 금융상품뿐만 아니라 골드바 등 실물 금도 매입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이나 원자재 가격은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데,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기조로 최근 유로화가 강세를 띠고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금 투자가 증가했다.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도 글로벌 금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국제 금 현물 가격은 9월 초 최고치에 다다랐다.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인 9월 4일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1337.87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국내 금값도 올랐다. 같은 날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3.75g(1돈)의 가격은 19만5500원으로 전날보다 3000원 뛰었다. ‘미니 골드바’ 판매량은 평소보다 5배 이상 늘었다. 이날 하루 10g짜리 골드바는 273개, 100g짜리 골드바는 207개 판매됐다. 골드바는 보통 1㎏짜리가 가장 많이 거래되지만, 최근에는 미니 골드바가 비상시 소지와 이동이 편리해 더 인기를 얻고 있다.
골드바는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당일에는 100g 단위 미니 골드바가 하루 동안 257개나 팔렸다. 바로 전날 거래된 양보다 7배가 늘어난 수준이다. 송종길 한국금거래소 상무는 “북한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골드바는 은행이나 사설 금 거래소, 금은방, 홈쇼핑, 백화점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순도가 100%에 가까운지 확인해야 한다. 또 골드바를 살 때 부가세 10%와 함께 판매기관에 수수료를 내게 돼 있다. 홈쇼핑이나 백화점은 상대적으로 수수료를 비싸게 무는 경향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금 실물을 보관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금에 꾸준히 소액 투자하고 싶다면 금 통장(골드뱅킹)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당일 국제 금 시세에 따라 무게로 환산된 금을 통장에 쌓아 준다. 통장에 적립한 금은 나중에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실물 금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금 통장은 다른 일반 통장과 달리 예금자 보호가 안 돼 금값 추이에 따라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또 원화가 아니라 달러로 투자하기 때문에 환율에 따라 수익이 달라질 수 있다.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금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은 ‘펀드’를 활용해 볼 수 있다. 금값이 상승하면서 금 펀드 수익률도 따라 치솟고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설정액 10억원 이상 금 펀드의 최근 한 달 수익률(9월 12일 기준)은 6.9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펀드는 1.7%의 수익을 내는 데 그쳤고, 해외 주식형펀드는 4.18%의 수익을 올렸다.
제로인 펀드닥터에 따르면 개별 펀드들 중에서는 블랙록자산운용의 ‘블랙록월드골드 펀드’가 한 달 새 5.74%의 수익률로 전체 금 펀드 중 1위를 기록했다. ‘신한BNPP골드 1 펀드’와 ‘IBK골드마이닝펀드 2’ 등이 각각 5.31%, 4.70%로 높은 성과를 냈다.
올해 수익률을 살펴보면 ETF들의 성과가 우수하다. ‘한국투자KINDEX골드선물레버리지특별자산 ETF’가 연초이후 28%의 수익률로 가장 좋은 성과를 냈으며, 뒤이어 ‘삼성KODEX골드선물특별자산 ETF’가 15.09%로 2위였다. 그 밖에 ‘KB스타골드특별자산 펀드’와 ‘미래에셋인덱스로골드특별자산 펀드’도 각각 12.94%, 12.75%로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수익률이 상승하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펀드 환매에 나서며 차익을 실현했다. 에프앤가이드 자료에 의하면 최근 한 달 새 금펀드에선 424억원이 순유출됐다.
구경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05년 북한의 핵 보유 성명 발표 이후 9번의 북한 리스크가 불거졌고 매번 금값이 올랐었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 리스크와 금값의 상관관계는 더 유의미해졌는데 앞으로의 금 가격 추이 역시 북한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달러나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가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연광희 신한은행 PWM잠실센터 팀장은 “(북핵 실험으로) 4일부터 바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반면 주가 지수는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면서 “연말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달러 투자는 유용하다”고 말했다.
다만 달러와 금의 경우 가격 변동성이 큰 만큼 단기 투자 시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달러에 대해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 투자가능 액수를 분할해서 달러를 매수하고 예상보다 달러 상승세가 크지 않으면 달러를 추가로 사들이지 않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에 대해서도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이 안전 자산이라고 해서 가격이 늘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차익을 노리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분산시킨다는 측면에서 자산 중 일부를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효혜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7주년 특집호·제85호 (2017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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