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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숙명여자대학교 총장 | “대학은 기본을 지키는 혁신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입력 : 2016.12.16 14: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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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자리한 숙명여자대학교는 1906년 대한제국 황실이 설립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이다. 일제하였던 당시 처음으로 한국인 교장이 취임해 5명의 여학생을 교육하며 110년의 역사가 시작됐다. 지난 9월 1일 제19대 총장으로 취임한 강정애 총장은 “숙명여대는 대한제국 황실이 외국 자본의 도움 없이 일으킨 민족 여성 교육의 효시였다”며 “어느 대학에도 없는 이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태생적 사명감을 지켜 나가겠다”고 임기 동안 추진을 예고한 ‘르네상스 숙명’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출신인 강 총장은 7번째 동문 출신 총장이다. 그는 “경영학부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칠 땐 학교 교가나 같은 조원 이름을 중간고사 문제로 내기도 했다”며 “내가 속한 곳이 어디이고 어떤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숙명여대 총장실에서 진행됐다. 강 총장은 “숙명 역사상 처음으로 언론에 총장실을 공개한다”며 쑥스러워 했다. 커다란 그림이 자리한 총장실은 깔끔했다. 책상과 테이블 등 일하기 편한 동선이 인상적이었다.
출근시간부터 달라졌어요.(웃음) 그래도 오전 6시에는 일어나 체육관으로 향합니다.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잖아요. 숙명도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희 학교는 지(智), 덕(德), 체(體)를 갖춘 학생을 길러내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성품이 바르고 지혜로운 학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체력이 부족한 게 아쉬워요. 학교생활도 그렇지만 사회에서도 결국 기본은 체력입니다.
▶숙명여대의 7번째 동문 출신 총장이라고 들었습니다.
숙명여대에 딱 맞는 사람이란 말을 자주 듣죠.(웃음)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학교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요. 그래서 중간고사 문제로 교가나 같은 조원 이름을 출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건 중요한 문제잖아요.
▶그건 자신의 정체성, 넓게 보면 숙명인의 정체성일 수도 있는데요.
그렇지요. 숙명의 정체성은 ‘국가와 민족,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여성 지도자 배출’이라는 창학 이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선 자신이 속한 조직과 가정에 기여해야 하고, 더 나아가 전 인류를 위한 전인적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는 창학 이념은 졸업 후에도 잊지 말아야 할 숙명의 정체성이죠.
▶그런가 하면 여대의 위기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숙명여대가 당면한 문제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대학을 평가할 때 취업률과 연계하면서 여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어요. 단순히 취업률로만 비교한다면 여대가 불리한 게 사회구조적 현실입니다. 우선 취업률이 높은 이공계 비중이 적고 인문사회계열, 예술계열의 비중이 높아 전체 취업률이 낮아지고 있는데, 숙명은 앞으로 공대를 신설해 구조적인 균형을 이루고 단기적으로 취업률 상승이나 외부 연구 수주 같은 계량적 지표를 개선할 계획입니다. 또 하나, 여성의 권리가 이전보다는 개선됐다고 하지만 주요 그룹의 여성임원 비중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게 사실이거든요. 장기적으로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관련 산업분야에서 여성 리더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대학의 운영 면에선 지속적인 수익구조가 어렵고 복잡한 숙제 중 하나입니다.
대학의 등록금 외 수입은 기부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기부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구조적으로 모금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또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프로젝트 수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대학의 본래 기능을 통한 수입 확대에 나서려고 합니다. 또 하나, 충분한 콘텐츠가 있는데도 수익 창출에 소극적이었던 교내 기관들이 있거든요. 정상적인 대학운영 과정에서 수익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건 대학의 근본적인 역할 ▶1906년에 설립된 숙명여대는 올해 110주년을 맞았습니다. 100년 이상 역사가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꼽으신다면.
숙명여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입니다. 당시 대한제국 황실이 최초로 설립한 여성 교육기관이에요. 여성교육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에 ‘여성교육을 통한 구국’이라는 창학 이념으로 설립됐습니다. 태생적 사명이 있어요. 110년 전통의 원동력은 역시 숙명의 파워라고 할 수 있는 탄탄한 동문 네트워크겠지요. 5명으로 시작해 현재 10만 명으로 불어난 동문들이 사회 곳곳에서 유리천장을 깨며 리더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네이버 최초의 여성 CEO 한성숙 신임대표, 여성 최초로 국립과학수사원장에 오른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 포브스 아시아 선정 파워여성 기업인 조선혜 지오영 CEO 등이 숙명여대 동문이다.) 여기에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쌓아 올린 리더십 교육이 바탕이 됐습니다. 리더십특성화대학에 선정될 만큼 재학 시절부터 리더가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 배우고, 여대 최초로 ROTC·리더십그룹·창업교육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숙명여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졌는데요. 이러한 시기에 대학의 역할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교육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대학은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사회의 학문적, 문화적 중심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럽고 흔들릴수록 대학이 사회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건 대학교육의 근본적인 역할입니다. 대학은 이윤 추구가 1차 목표인 기업과는 전혀 달라요.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대학이 될 순 없더라도, 그 정신은 대학에서 나와야죠. 그리고 그 원동력은 창의적인 인재 교육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교육의 벤처가 돼야 합니다. 다양한 교육 실험과 시도를 계속하면서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고 선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전략과제를 제시했는데, 스마트 숙명운동이 눈에 띕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조직이 효율적이지 않으면 충분한 성과를 내기 어렵잖아요. 어느 때보다 기술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IT인프라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통합해 활용률을 높이고 조직 구조를 효율적으로 개편할 계획이에요. 사업의 성격에 따라 캠퍼스라는 공간을 넘어서 외부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 머그컵을 가져오면 커피값을 할인해준다든지, 계단 걷기 같은 캠페인도 시작하고 있습니다.
▶재임 기간에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이라면.
아까도 말했듯이 숙명을 지속가능한 구조 위에 올려놓는 것이 가장 큰 숙제겠지요. 대학의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 커뮤니티와 상생하는 전략도 마련할 겁니다. 또 숙명의 구성원들이 상호 존중해 화합하며 소통하고 참여하는 원팀(One Team) 문화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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