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5조 투자 약속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 인공지능과 IoT로 또 한 번 승부수

    입력 : 2016.12.16 13:58:51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순간(Singularity·질적도약이 발생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정말 큰 기회입니다. 1000억달러 펀드도 적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10월 25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뉴비전’을 밝혔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창조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손 회장이 미래 글로벌 경제 판도를 바꿀 제4차 혁명을 선도하는 대표적 CEO로 급부상하고 있다. 손 회장과 그가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최근 들어 적극적인 M&A를 추진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3년 미국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를 216억달러에 사들이고 올해는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234억파운드(약 35조원)에 인수했다. 손 회장은 또 지난 9월 30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만나 “10년 내에 한국에 5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향후 한국에서도 활발한 기업활동을 할 것을 예고했다. 올해 59세인 손 회장은 최근 은퇴를 번복하고 CEO로 돌아온 후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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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M 인수는 회사가 아니라 패러다임을 인수한 것”

    손 회장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간담회에서 “ARM을 인수한 것은 회사를 인수한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인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다음 패러다임에 투자하기 위해 회사를 팔기도 하고 빚을 내기도 한다”면서 “지금이 그 시기”라고 말했다.

    손 회장이 주목하는 특이점(Singularity)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결합해 슈퍼 인텔리전스를 만드는 시기다. 이를 통해 교통·헬스케어·바이오·금융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손 회장이 ARM 인수를 위해 무려 3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배팅한 데 대해 세계 IT투자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손 회장이 6월 주총에서 은퇴의사를 번복하고 나온 첫 번째 대형투자라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손 회장은 “PC에서 스마트폰 모바일시대를 거쳐 이제 사물인터넷(IoT)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며 “ARM인수는 IoT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내 목표는 IT분야의 워런 버핏이 되는 것이며 소프트뱅크는 IT업계의 버크셔해서웨이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ARM은 삼성전자·애플 등이 생산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설계도를 만드는 기업이다. 자동차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부터 사물인터넷에 최적화한 저전력 프로세서 등의 포트폴리오도 갖추고 있다. 그는 “큰 패러다임 시프트가 오고 있다”며 “1000억달러 펀드 조성은 시작일 뿐이며 다가오는 특이점(Singularity)은 너무 큰 기회여서 1000억달러도 충분치 않다”고 단언한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0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1000억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비전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사우디가 450억달러를, 소프트뱅크가 250억달러를 내놓고 나머지 350억달러를 글로벌 투자자들이 채우도록 할 계획이다. 유망스타트업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손 회장은 싱귤래리티 시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 과거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미래를 상상하며 구체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 또한 주위 사람들과 팀이 지원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이 글로벌기자간담회에서 PC  모바일  IoT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글로벌기자간담회에서 PC  모바일  IoT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 눈 돌리는 손정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 9월 30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역량 있는 한국기업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투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앞으로 10년 이내에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5조원을 목표로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미래신산업 분야에서 소프트뱅크와 한국기업의 협력사업 추진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손 회장은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한국과는 인연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야후·알리바바·ARM 등 세계적 기업에 투자해 성공한 승부사여서 국내에서도 성공신화를 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5년 전자상거래 업체인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국내 IT업계에서는 투자의 귀재인 손 회장이 한국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손 회장이 적자규모가 컸던 쿠팡에 투자한 것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소셜커머스는 지금 당장 수익성이 좋지 않더라도 이용자는 매년 20~3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주요 플랫폼이어서 글로벌 유통망 구축 등 다양한 사업구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ARM을 인수한 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회동에 주목한다. 최근 소프트뱅크의 ARM 인수로 삼성전자와의 협업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의 생산을, ARM은 반도체의 설계를 담당한다. 또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통해 로봇페퍼를 만들 만큼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은데 AI사업 추진에 삼성전자와 윈윈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마련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도 청와대 회동에서 “한국도 국내 반도체 설계기업 등에 투자하기 위해 연내 2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며 “소프트뱅크가 여기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협력 사례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손 회장은 이에 대해 “한국의 반도체펀드가 투자한 기업에 소프트뱅크가 공동투자하거나 해외진출 파트너십 등 연계 투자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IoT시대엔 자동차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특화된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ARM 하나로는 대응할 수 없다”며 “한국 벤처기업과 특화된 영역에서 설계 등 다양한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가 지금까지 일본에 축을 두고 해외투자를 진행했다면 앞으로는 해외사업에 축을 두게 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이와 관련 글로벌 IT사업의 중심축이 미국와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올 것으로 보고 아시아 주요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의 송전선을 연결해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거래하는 시장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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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시절 50년 인생계획 세워 실천한 손 회장

    손 회장은 젊은 날 50년 인생계획을 수립한 뒤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온 걸로 유명하다.

    그가 19세에 세운 인생계획을 보면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이름을 얻고, 30대에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그리고 40대에 큰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킨 후 60대에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고 후계자에 경영권을 넘긴다는 큰 그림이다. 그는 실제 24세이던 1981년 9월 소프트뱅크를 세웠고, 30대인 1994년에는 소프트뱅크를 상장시켜 단숨에 2000억엔을 끌어안으며 투자의 귀재로서 면모를 발휘했다.

    손 회장은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의 잠재력을 깨닫고 야후와 알리바바 등에 투자하며 닷컴시대를 주도했다. 수많은 벤처가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무한경쟁이 전개됐지만 소프트뱅크는 승승장구하며 경쟁력을 더 굳건히 했다. 40대에 접어들던 1996년 제리 양 야후공동설립자의 만남에서 야후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투자의 귀재로서 손 회장의 진면모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그는 야후의 지분 49%를 사들이는 한편 야후 재팬을 설립했는데 IT버블이 붕괴되던 2000년대 초반에도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며 소프트뱅크의 핵심 수익원이 됐다.

    손 회장은 2000년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독대한 지 6분 만에 2000만달러 투자를 결정했다. 알리바바는 2014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하며 손 회장에게 수천 배의 투자수익을 안겨줬다.

    손 회장은 계획대로 경영권을 넘기고 내년 8월 60세 생일에 깜짝 은퇴할 생각이었으나 돌연 마음을 바꿔 은퇴를 미뤘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손 회장의 은퇴를 막았다는 얘기다. 그는 “내가 할 일이 아직 남아있다”며 향후 5~10년은 더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20대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미친 기회의 시기”라며 “매일같이 아이디어를 떠올려 벤처캐피털에 가서 사업계획서와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손 회장이 모든 투자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3년 216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미국통신사 스프린트는 실패 사례로 꼽힌다. 당시 미국 통신업계 3위이던 스프린트를 인수한 것은 4위 통신사인 T모바일과 합병을 염두에 둔 것인데 미국 당국이 반독점규제법에 위반된다고 반대해 합병이 무산됐다. 스프린트는 인수 직후 실적 부진이 이어지며 직원 수천 명을 감원하는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인수 당시 주당 10달러를 넘는 주가는 현재 반토막이 난 상태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알리바바 주식 일부를 매각한 것도 스프린트 투자손실로 인한 부채상환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손정의 회장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 |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이자 IT투자기업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재일교포 3세 경영자다. 그는 1957년 일본 규수에서 태어났다. 고교 1학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 영어연수를 다녀온 후 자퇴서를 내고 1974년 미국으로 떠나 1975년 홀리네임즈대에 입학했다. 1977년 버클리대 분교 경제학부로 편입한 그는 1년에 250여 건의 발명을 했는데, 일본어를 입력하면 영어로 번역해주는 장치를 개발해 100만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팔기도 했다. 1980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유니손월드를 설립했으나 부모와의 약속 때문에 귀국해 1981년 자본금 1억엔과 직원 2명과 함게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야후, 킹스턴테크놀로지 등 미국의 첨단기업에 투자하면서 세계적 인터넷 재벌로 부상했다. 손 회장은 2004년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는 유선통신업체인 재팬텔레콤을 인수한 데 이어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해 무선통신사업에도 진출했다. 포브스는 지난 2012년 손 회장을 재산규모 69억달러로 일본 세 번째 부자로 소개했다. [윤재오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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