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0대가 머무는 복합문화공간…부활한 동네서점

    입력 : 2016.12.16 13:55:05

  • 홍대 유어마인드
    홍대 유어마인드
    “작년엔 아들, 올해는 딸이 대학생이 됐어요. 아이들이 대학에 가니 정말 품 안의 자식이란 말이 맞더군요. 평일은 고사하고 주말에도 얼굴 보기가 힘들더라고. 그래서 집사람이랑 이곳저곳 산책을 다니는데 날이 쌀쌀해지니까 걷는 것도 노동이에요. 그래서 둘이 어떤 취미를 가져볼까 궁리하다 요즘 동네책방에 다닙니다. 이상하게 들리지요? 사실 처음엔 저도 주저주저했어요. 책방이란 게 다른 말로 서점인데, 지하철 타고 얼마 가지 않으면 내로라하는 대형서점들이 번쩍번쩍하잖아요. 거기 가면 얼마나 좋아요. 책도 많고 사람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고 주변에 맛집도 많고 관광명소도 많고. 동네책방에 둘이 쭈그리고 앉아서 뭘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한번 가서 보니 그건 선입견이더라고. 집사람이 먼저 가보고 주말에 둘이 갔는데, 우리 집만 한 거실이라고 생각하면 다를 게 없더군요. 여긴 시집 전문 책방이라 관련 책들이 있는데, 카페도 겸하고 있어서 편하게 책도 보고 수다도 떨 수 있어요. 은은한 재즈도 흘러나오고 무엇보다 간간이 공연도 하고 작가와 만남도 갖습니다. 자주는 못 오고 간간히 들릅니다. 우리 부부에겐 귀중한 사랑방이죠.”

    올해 5학년(50대)이 됐다는 김상태(가명) 씨는 부부가 함께 이화여대 앞에 자리한 서점 ‘위트앤시니컬’에 들르곤 한다. 시집을 주로 다루는 이곳은 크게 책과 팬시용품, 음악CD와 LP를 판매하는 공간과 카페, 작은 무대로 구성돼 있다. 일단 서점은 1층에 자리해야 장사가 잘 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이 서점과는 동떨어진 얘기다.

    신축건물 3층에 자리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책이 많은 것도 아니요, 베스트셀러가 진열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평일 오후 서점 안에 사람들이 촘촘하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홍대 주변에는 이보다 규모가 작은, 말 그대로 동네책방이 색다른 문화를 뽐내고 있다. 서교동의 ‘유어마인드’, ‘땡스북스’, 연남동의 ‘책방 피노키오’, ‘헬로 인디북스’, ‘라이너노트’, 상암동 ‘북바이북’까지 아는 이들에게 이미 익숙한 책방이자 문화공간이다.

    위트앤시니컬
    위트앤시니컬
    ▶SNS만으론 부족한 체험과 소통

    “중학생인 딸하고 데이트도 할 겸 가끔 홍대 앞에 가는데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서점입니다. 홍대 앞이 언제부터 그렇게 변했는지, 수천 곳은 될 것 같은 술집들 사이로 서점 하나가 없더군요. 처음엔 정말 서점이 없는지 딸하고 내기를 했어요. 결국 사방을 다 돌아다니다 하나 발견하긴 했지. 그런데 이곳이 참 재밌어요. 대형서점에 온갖 책들이 다 있다면 여긴 자기들이 선정한 책을 진열하고 판매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번 주엔 어떤 책들이 잘 팔렸는지, 어떤 전시나 이벤트가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왕이면 이벤트가 있는 날 찾게 됩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 서점 결제버튼 한번 누르면 해지기 전에 집으로 책이 오는 시대에 뭐하는 짓이냐는 분들도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소통한다는 게 전 익숙하지만 제 딸에겐 새로운 경험이거든요. 분위기도 좋아요. 카페도 겸하고 있어서 차 한 잔 시켜놓고 딸이랑 책 한 권 갖고 이런저런 대화하다 보면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납니다. 같이 제대로 놀았다 싶어요.”

    서교동에 자리한 ‘땡스북스’ 팬이라는 윤석용(가명) 씨는 이 작은 서점의 회원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무료로 회원 가입을 하면 도서구매금액의 10%가 적립되고 도서전시회, 저자와의 대화, 할인이벤트 등 여러 행사 스케줄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다. 윤씨는 “유명 작가의 강연이라도 있는 날이면 딸에게 데이트 신청부터 한다”며 “SNS상에선 느낄 수 없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고 전했다.

    라이너노트
    라이너노트
    요즘 핫한 동네라는 연남동, 그곳 주택가에 자리한 음악서점 ‘라이너노트’는 서너 평 남짓한 공간에 커다란 오디오와 피아노를 들여놨다. 공간의 실체는 가정집을 개조한 사무실의 작은 주차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풍스런 분위기에 재즈 음악이 은은하다. 진열된 책들을 둘러보면 재즈를 비롯해 뮤지션과 음악 관련 책이 전부다. 서점 중앙에 놓인 탁자에 앉아 음악을 들어도 좋고 한동안 책을 읽어도 누가 뭐라는 이가 없다. 말 그대로 동네 중심에 떡하니 책방을 낸 이는 음반기획사 페이지터너의 홍원근 대표. 최근 원로 재즈아티스트 박성연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한 홍 대표는 “셀프인테리어로 꾸민 공간”이라며 “올 5월에 문을 열었는데 동네사랑방이었으면 좋겠다”고 책방을 소개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곳인데 지금은 작은 서점이 됐습니다. 모든 인테리어를 스스로해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는 공간이에요. 이 건물 1층은 저희 음반사고 2층은 다른 인테리어 회사예요. 세 들어 살고 있는데, 저희가 인테리어까지 한 덕에 집값이 많이 올랐다더군요. 세도 오르면 안 되는데.(웃음) 이곳은 우리에게 서점이자 공연장이자 강연 공간입니다. 음악 관련 행사들이죠. 보시기에 한적한 동네잖아요. 공연이 열리면 즐겨 드시는 차나 와인을 들고 와서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공간이 좁아서 많은 분들을 모시진 못하는데, 주로 20대 여성분들이나 음악을 찾아 듣는, 여유 있는 50대 부부들이 많이 오세요. 이윤이요? 그걸 생각지 않을 수 없는데, 작은 서점의 리스크 중 하나는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매가에 구입해서 소매가에 팔아야 하는데, 라이너노트란 이름이 조금 알려져서인지 직거래하자는 출판사도 하나둘 늘어서 이래저래 꾸려가고 있습니다. 동네책방들은 대부분 책이 많지 않아요. 대신 주인이 직접 책을 선정해 진열합니다. 큐레이션은 기본이지요. 저희도 매달 주제를 정해서 미는 책이 있어요. 어디 보자… 11월엔 ‘한국재즈백년사’에요. 매주 토요일에 저자와의 대화가 있는데 이런 행사엔 40~50대 부부가 많이 오십니다.” 홍 대표는 올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뜻 맞는 동네책방 주인들과 의기투합해 제대로 된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Round Midnight’이라 이름 붙였는데, 연남동의 ‘라이너노트’, ‘드로잉북리스본’, ‘사이에’, 한남동 해방촌의 문학서점 ‘고요서사’, 을지로의 독립책방 ‘노말에이’, 염리동 음악전문 ‘초원서점’이 참여해 ‘책과 휴식이 있는 하룻밤 동안의 음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장소는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 하룻밤의 시간은 12월 24일과 12월 30일, 31일이다. 게스트하우스 지지향과 숙박을 겸할 수도 있다.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 중인 최인아 책방 
    ‘저자와의 대화’를 진행 중인 최인아 책방 
    “새벽 내내 책 읽는 이벤트를 진행한 일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일하다 퇴근한 직장인, 공부하다 하교한 대학생들이 새벽까지 꿋꿋이 앉아 책을 보곤 첫차를 타고 귀가하더군요. 이번 행사는 책을 읽고 저자와 대화도 나누고 공연도 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겁니다. 물론 참여한 작은 서점들이 각자의 책을 들고 판매하기도 합니다. 잘 팔려야 할 텐데.(웃음)”



    ▶개성 살린 책방, 유명 인사들도 한몫

    개성이 묻어나는 동네책방 부활에 큰 몫을 담당한 건 역시 인지도 높은 유명인들의 참여다. 우선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등 익히 알려진 광고 카피를 탄생시킨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 씨의 ‘최인아책방’은 서울 강남 선릉역 주변에선 이제 명소가 됐다. 이곳은 ‘생각의 숲을 이루다’란 콘셉트로 인문학과 소설을 판매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책의 분류다. ‘서른 넘어 사춘기를 겪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고민할 때’ 등 카피라이터의 장기가 더해진 문구로 책을 진열한다. 저자와의 대화, 연주회 등을 갖기도 해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방송인 노홍철 씨도 최근 한남동 해방촌에 ‘철든책방’이란 동네책방을 열었다.

    세계문학과 여행, 개성 강한 독립출판물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노 씨는 포장부터 계산까지 손수 운영하며 방송스케줄로 문을 열지 못할 땐 SNS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책방 주인이 꿈이었다는 가수 요조도 서울 북촌에 ‘무사(無事)’란 책방을 열었다. ‘무사히 망하지 말자’란 의미라는데, 이곳에선 책방 주인이 읽고 싶었던 책, 독립출판물, 헌책, 음반, 엽서 등을 만날 수 있다.

    ▷전국의 동네책방 천안 ‘허송세월’

    천안시 중앙동에 자리한 책방이다. 책과 함께 손글씨 등 다양한 창작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출간된 지 꽤 오래된 헌책부터 따끈따끈한 새 책, 독립출판물까지 포트폴리오가 아기자기하다. 주인이 직접 손글씨로 ‘새 책, 헌책, 기부받은 책들이 섞여 있으니 책 가격은 주인장에게 꼭 물어볼 것, 편안한 자리를 찾아 오래오래 읽다 갈 것, 안쪽에 다락방도 있으니 책을 읽어도, 일을 해도, 과제를 해도 좋아요’라고 책방을 소개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 대흥동 228-3 1층)

    ▷청주 ‘꿈꾸는 책방’

    청주 금천동의 명소가 된 이곳은 하루 종일 커피 한잔 마시고 책읽기 좋은 곳이다. 그만큼 책방이라기보단 카페를 닮았다. 분야별로 세심하게 분류돼 있어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매달 ‘작가와 함께 꿈꾸는 꿈’이란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청주지역 작가를 비롯해 인근 지역 작가까지 ‘우리 동네 작가들’이란 코너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 64-4 102호)

    ▷서울 진관동 ‘프레드릭’

    영유아부터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판매한다. 동화작가 이루리 씨와 출판사 북극곰 대표 이순영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고 그림책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84)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5호 (2016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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