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결국은 품질, 저성장 국면에도 기회는 반드시 온다”
입력 : 2016.09.28 10:02:40
-
최근 러시아와 유럽, 미국을 방문하며 글로벌 현장경영에 나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 2014년 글로벌 판매 8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톱5로 우뚝 선 데 이어 올 4월에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국·내외 누적 판매 1억 대를 돌파했다.
지난 6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JD파워가 발표한 ‘2016 신차품질지수 평가’에선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1위(기아차)에 오르며 맹활약하고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브랜드로 손꼽히는 여타 수입차 제조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의 성장을 논하며 “첫째, 세계 경제침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의 이례적인 판매 성장, 둘째,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 셋째, 러시아와 브라질 공장의 성공적 가동으로 신흥시장의 판매가 확대됐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위기 때마다 전 세계 현장을 누비며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8월 2일, 정몽구 회장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현대차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생산과 판매전략을 점검했다. 이튿날 현지 공장에서 정 회장은 “러시아 시장에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러시아 시장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시장이 회복됐을 때를 대비해 우리 브랜드가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바로 지금 상품과 마케팅 전략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러시아에서 소형 SUV 모델 ‘크레타’ 생산 라인을 점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크레타는 지난해 인도시장에 출시돼 큰 인기를 모았던 모델로 최근 러시아 시장에 불고 있는 SUV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러시아 시장 수요가 급감하고 있지만 경쟁력 있는 신차 출시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의 이러한 움직임은 수익성이 감소하자 공장을 폐쇄하거나 조업을 중단하며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한 일부 글로벌 제조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생산차종을 추가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사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2012년 294만 대에 달하던 수요가 올해는 140만 대로 반토막 난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전년 대비 13.5% 감소한 32만4701대를 러시아 시장에서 판매했다. 하지만 러시아 전체 시장이 35.7%나 감소하며 시장점유율은 15.1%에서 20.3%로 크게 확대됐다. 올해 6월까지 전체 시장이 14.1% 감소한 가운데 현대·기아차는 전년 대비 13.9% 감소한 13만4100대를 판매하며 시장점유율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전략 차종인 ‘쏠라리스’와 ‘리오’는 올해 각각 4만5930대와 3만9454대가 판매되며 러시아의 베스트셀링카 1위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지난해 개관한 ‘현대모터스튜디오’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 마케팅을 펼쳐 러시아에서 최상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이다.
정몽구 회장이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투싼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러시아를 돌아본 정몽구 회장의 다음 행선지는 한동안 호조를 보이다 최근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유럽이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저성장 기조에 맞춰 유럽을 찾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행보였다. 그만큼 유럽 시장의 전략적 중요도가 상승한 탓이다. 유럽의 자동차 시장은 올 상반기에만 9.1% 성장하며 중국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브렉시트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0.7%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은 중국, 인도와 함께 올해 가장 중요한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중동과 브라질, 러시아의 수요 감소세가 깊고 미국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된 탓이다.
정몽구 회장은 러시아공장에 이어 유럽 전략 차종을 생산하고 있는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현대차 체코 공장을 차례로 방문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로 투입된 ‘투싼’, ‘스포티지’ 등 신차들의 품질을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2%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판매가 예상되는 유럽을 필두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상반기에 현대·기아차는 유럽에서 49만1000여대를 판매해 12.3% 성장하며 전체 시장 성장률(9.1%)보다 3.2%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는 유럽에서만 89만1000대를 판매해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경신한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유럽시장도 하반기에는 불안요인이 확대되고 있고 글로벌 메이커 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변화를 예의주시하고 대응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SUV를 주축으로 판매를 확대하고, 유럽에서 처음 선보이는 친환경 전용차를 통해 브랜드 파워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질에 대해선 재차 삼차 당부했다. “결국은 품질”이라며 “제품의 품질, 고객만족의 품질 등 생산은 물론 판매와 서비스까지 전 분야에서 고객지향의 품질주의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공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신형 스포티지를 양산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신형 투싼을 양산하기 시작한 체코 공장도 유럽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시간당 생산대수를 늘리는 등 생산성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두 공장은 시장 밀착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유연한 생산 운영을 통해 올해 유럽 시장에서 최대 생산(체코 35만 대, 슬로바키아 33만5천대. 총 68만5천대)을 추진 중이다.
정몽구 회장은 유럽 시장의 주요 전환기마다 현지 공장을 찾아 대응책을 강구해왔다. 2012년 6월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유럽발 위기 전이를 사전 차단하라”며 법인장 회의를 한 달 앞당겨 시행하고 양사 경영진을 유럽으로 급파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6년째 유럽 시장 수요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에도 “유럽 시장 회복을 대비한 준비체계를 갖추라”고 주문했고, 2014년 상반기 회복이 가시화되자 “회복기에는 경쟁이 격화되기 때문에 전열을 재정비하라”고 당부했다.
이 기간 동안 현대·기아차는 판매와 마케팅 시스템을 강화하며 2007년 56만 대였던 판매량을 지난해 85만5000대로 끌어올렸다. 3%대의 시장점유율도 6%까지 확대됐다. 유럽시장은 2007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유럽 전략 차종들이 주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최초의 유럽 전략차인 기아차 ‘씨드’와 현대차 ‘i시리즈’가 위기 극복의 주역이었다면 올해는 유럽공장에서 생산하는 SUV가 판매 증가를 이끌고 있다. 올 상반기에 ‘투싼’은 총 8만2498대가 판매되며 전년 동기(5만5925대) 대비 47.5%나 증가했다. ‘스포티지’도 39.2% 증가한 7만7970대(전년 동기 5만6002대)가 판매됐다. 여기에 올해 처음 유럽시장에 하이브리드 차종을 출시했다. 이로써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로 이어지는 풀 라인업을 구축해 유럽 친환경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올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풀 라인업(HEV/EV/PHEV)’과 소형 SUV 하이브리드 ‘니로’를 유럽시장에 처음 공개한 데 이어 올 하반기부터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니로 하이브리드’를 판매할 계획이다. 모터쇼 공개, 사전 시승회, 디지털 사전 론칭 캠페인을 통해 기대감을 증폭시켜 시장에 안착시키고, 친환경 메이커로서 입지도 높인다는 전략이다.
러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낸 정몽구 회장은 지난 9월 5일, 미국 자동차 시장을 점검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넜다. 정 회장은 LA에 있는 미국판매법인 업무보고 석상에서 “글로벌 업체들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의 성과는 중요하다”며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 변화다.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혁신, 고객, 품질로 시장을 앞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2012년 1449만 대가 팔리며 전년 대비 13.4%나 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매년 성장률이 하락하여 지난해에는 5.7%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경제 성장률 둔화와 기준 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이 소비심리 둔화로 이어지면서 지난 8월까지 1167만 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점유율은 0.2% 상승한 8.3%를 기록 중이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에서 18%의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시장은 단일 국가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특히 상반기 고성장을 보이던 유럽 자동차 시장이 하반기부터 정체되고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미국에서의 성장세 유지가 지속 성장의 열쇠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현대·기아차의 성장세 확대를 위한 3대 핵심 키워드로 ‘고급차’, ‘친환경차’, ‘SUV 시장에서의 역량 강화’를 제시했다. 특히 미국 고급차 시장에 선보이는 제네시스 ‘G80’와 ‘G90’(국내명 EQ900)의 성공적인 안착은 물론, 친환경차와 SUV 수요 변화에 능동적 대응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제네시스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해야 한다”며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은 우리가 새롭게 도전할 또 하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친환경차 기술력을 더욱 강화해 미래 친환경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근 미국 시장은 SUV의 수요 확대가 뚜렷해 시장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네시스는 1세대가 지난 2008년 미국에 첫선을 보인 이후 고급차 시장에서 꾸준히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에서 1만6448대가 판매돼 중형 럭셔리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만4917대가 판매되며 출시 후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0%를 넘겼다. 올해는 8월까지 1만8578대가 판매돼 역대 최대 점유율인 13.8%를 달성했다.
지난 8월 제네시스 브랜드로 새로 태어난 ‘G80’와 9월부터 제네시스 브랜드 최상위 모델인 ‘G90’가 판매 라인업에 가세하면서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지난달 ‘G80’의 가격을 공개하며 시작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2650달러 높은 4만1400달러로 책정하는 등 고급차 브랜드로 진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제네시스와 같은 중형 럭셔리의 시작가는 4만달러로 알려져 있다. 제네시스가 미국시장에 진출한 이래 시작 가격이 4만달러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G80’에 대한 판매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다.
현대·기아차는 친환경차 부문에서도 적극적인 신차 출시로 두각을 나타낸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 중 미국시장에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는 한편, 기아차는 ‘K5’(현지명 옵티마)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SUV 분야에서도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 ‘쏘렌토’ 등 경쟁력 있는 SUV 차종들의 판매 확대를 통해 시장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올 8월까지 ‘투싼’과 ‘스포티지’가 전년 대비 각각 75%와 64% 증가한 5만8000대, 5만7000대가 판매되는 등 현대·기아차의 전체 SUV 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25.9% 증가한 28만 대를 기록했다.
정몽구 회장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중요 변곡점마다 과감한 승부수로 시장 변화를 주도해 왔다. 현대차는 1998년 미국 판매가 9만 대까지 떨어지자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1999년 ‘10년 10만 마일’ 보증 프로그램을 도입해 미국 판매의 돌파구를 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며 자동차 메이커들이 마케팅을 줄인 2009년에도 현대차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Assurance Program)’이란 마케팅으로 불황을 극복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영 현대·기아차는 무역 장벽을 극복하고 현지 맞춤형 차량을 생산하기 위해 2002년부터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에 나섰다. 10년 뒤인 2012년 브라질 공장을 완공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과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아우르는 ‘글로벌 생산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최근 기아차는 중남미 공략을 위한 교두보로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페스케리아시에 공장을 건설해 준중형 차급인 ‘K3’(현지명 포르테) 양산을 시작했다. 미국, 중국, 슬로바키아에 이은 기아차의 네 번째 해외 생산거점인 멕시코 공장은 착공 후 양산까지 약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가 투입됐고, 335만㎡ 용지에 프레스공장, 차체공장, 도장공장, 의장공장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완성차 생산라인과 인접한 165만㎡ 규모 용지에 협력사들이 자리해 생산라인 집적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이로써 기아차는 미국 34만 대, 중국 89만 대, 슬로바키아 33만 대, 멕시코 30만 대 등 총 186만 대의 현지 생산능력을 갖췄다. 현대차는 터키, 인도, 체코, 중국, 미국, 러시아, 브라질 등지에 공장을 짓고 현지 전략 차종으로 판매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중국 창저우와 충칭에 각각 연산 30만 대 규모의 4·5공장을 착공해 2018년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들 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그룹은 중국 북부·동부·중서부를 아우르는 생산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3호 (2016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