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가 인근 대로변 중소형빌딩 리모델링 경쟁…강남주부들 홍대·신촌 골목상권 주목

    입력 : 2016.09.22 14:20:28

  • 서울 강남, 명동에 이어 홍대는 이제 3대 프리미엄 상권으로 통한다. 홍익대학교 인근 마포 서교동을 중심으로 한 ‘진짜 홍대 상권’은 경의선 숲길을 따라 연남동으로, 빈티지한 골목을 따라 상수동으로 확장되면서 ‘범홍대 상권’으로 세력을 넓혔다. 홍대 상권의 변화는 상권의 자본화 과정을 가장 여실히 보여준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한 동네가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름에 따라 기존에 둥지를 틀었던 상인과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현상)’ 논란의 한가운데 설 정도로 투자자들의 인기를 한데 끌어모은 홍대 상권은 신촌과 이대 상권에 영향을 줄 정도로 ‘힘 있는 동네’가 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홍대 일대는 다달이 다른 모습으로 변신 중이다. 기관 투자자들까지 인근 건물 매수에 나서면서 5층 이하 꼬마 빌딩이나 10층 이하 중소 빌딩은 리모델링과 상가 구성(MD)이 한창이다. 이처럼 홍대와 신촌 일대 대학가 상권이 주목을 받자 강남권 PB센터와 거래하는 강남 주부들이 투자를 위해 골목 상권 투자 투어에 나섰다. 홍대·신촌 등 대학가 상권 자체가 대로변이 아닌 골목을 중심으로 발전한 만큼 ‘핫 스폿(hot spot)’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한 연남동 경의선 숲길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한 연남동 경의선 숲길
    ▶홍대상권 대로변 중·소형 빌딩 ‘성형수술’ 경쟁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의 확장으로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논란이 끊이지 않는 홍대 상권에서는 요즘 중소형 빌딩의 리모델링 경쟁이 한창이다. 부동산 중에서도 상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입지’이다 보니 글로벌 투자자들도 1~2년 새 잘나가는 홍대 대로변 역세권 빌딩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서교동 A공인 관계자는 “입지 좋은 대로변 중소건물은 이제 개인이 사들이기 힘든 수준으로 오르다 보니 글로벌 부동산관리업체를 통해 매매부터 재건축·리모델링, 상권 분석과 업종 관리, 컨설팅을 하는 식으로 판이 커졌다”고 말했다. 6월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대아빌딩(1998년 준공)’은 오는 10월 완공을 목표로 1층·저층 외관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바로 옆에 들어선 유림빌딩에 이어 건물의 얼굴 격인 1층과 외관을 조금씩 뜯어고치는 것이다.

    올 초 미국계 기관투자자인 ‘인베스코’가 부동산펀드 등을 통해 ‘유림빌딩’과 ‘대아빌딩’에 출자했다. 같은 입지의 비슷한 건물로 어학원과 회사 사무실 등 임대 업종이 겹칠 수밖에 없다. 두 건물 중 유림빌딩은 CBRE글로벌인베스터스자산운용(CBRE)이, 대아빌딩은 베스타스자산운용이 구체적인 투자·자산운용을 맡다 보니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림빌딩의 건물 매입부터 리모델링 과정을 직접 담당했던 강정구 CBRE GI 전무는 “투자를 검토할 때 저층 리모델링이 잘될 만한 건물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며 “9~10층이 공실이어도 수익률이 5%를 거뜬히 넘어선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건물은 1층의 한 코너에 네이버 라인프렌즈스토어 안테나숍이 들어선 바 있고, 1~4층에 세든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가지를 친 의류·액세서리·화장품 편집 매장인 ‘원더플레이스’를 비롯해 어학원과 회사 사무실·피트니스 클럽 등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는 곳이 됐다. 대아빌딩은 저층에 대형 푸드코트를 비롯해 라인프렌즈 못지않은 SNS 캐릭터 매장을 들일 계획이다.

    핵심 임차인을 들여 건물이 인기를 끌면 다른 임차인과 임대료 협상 시 건물주가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대아빌딩은 지난 2002년 기업구조조정(CR) 부동산투자회사인 ‘코크렙 1호 CR리츠’가 투자운용을 맡는 등 손바뀜을 겪었다.

    저층 리모델링은 유림·대아빌딩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사후 면세점과 호텔들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이에 발맞춰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학교 정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로변 중소형 빌딩들이 본격적으로 리모델링 등을 통한 건물 재구성에 들어가는 중이다.

    서교동 ‘소원빌딩’은 지난 5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감과 동시에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인 세빌스코리아와 손잡고 상가 임대 시장에 나왔다. 홍대 ‘밤과 음악사이’ 클럽 건물로 유명한 소원빌딩은 5층 정도 규모의 중소형 빌딩이지만 홍대 정문으로 통하는 대로변 입지에 둥지를 튼 건물이다. 인근에서는 지난 1983년 들어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던 ‘서교호텔’을 소유주인 아주그룹이 특1급 호텔로 다시 짓는 중이다. 인근 화평빌딩은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이자카야 주점 자리에 스파 브랜드인 ‘스파오(SPAO)’를 들였다. 아예 재건축에 들어간 대로변 건물도 있다.

    화평빌딩에서 2분만 걸어가면 있던 지상 3층짜리 꼬마 빌딩은 내년 12월께 지하1층~지상10층짜리 호텔로 변신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강남 학동역 인근의 ‘뉴힐탑 호텔’을 가지고 있는 뉴힐탑이 건축주다. 상전벽해를 방불케 하는 홍대 일대에는 롯데백화점이 올해 안에 홍대 2호점을 추가로 낼 예정이다.

    투자 열기의 한편에서는 냉기가 가시지 않는 곳도 있다. 홍대에서 합정으로 이어지는 대로변에는 소형 신축 건물들이 텅 빈 채 세입자 찾기에 나선 지 오래다.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매장인 ‘노스페이스’가 통으로 세 들었던 ‘선향빌딩’은 2년째 공실 상태로 있고, 인근에서는 땡처리 의혹과 미수금 문제로 홍역을 겪은 패션브랜드 ‘스베누(SBENU)’의 사옥이 지난해 말 즈음부터 반년 넘게 텅 빈 채 임대 현수막만 나부끼고 있다.

    홍대 상가주택 골목
    홍대 상가주택 골목
    ▶범홍대 상권 연남동 골목길은 ‘리틀 이태원’

    “저는 멕시코에서 왔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식당을 찾아와줘서 재밌습니다.” 서울 마포 연남동 한 골목길에서 문을 연 지 3년 정도 된 멕시코 음식 가게의 사장 J씨의 말이다. 범홍대 상권으로 통하는 연남동 인근의 골목길은 작은 이태원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목에 외국인 사장님들이 가게를 열면 게스트하우스와 하숙집에 사는 외국인들이 찾아와 모여 앉아 저녁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이 동네들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중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멕시코, 쿠바 등 ‘사장님’들의 나라도 다양하다.

    국내 체류 ‘외국인 200만 명 시대’를 맞은 요즘 홍대 ‘연트럴파크’ 변두리 상권에서는 다국적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는 중이다. 홍대 중심 상권이 소위 잘나가는 ‘강북권 대학가 상권’으로 통하는 바람에 투자자들의 뭉칫돈과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흘러들면서 치솟은 임대료가 낮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분위기와는 다르다. 연남동 인근 A공인 관계자는 “홍대·연남·신촌·이대 일대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게스트하우스와 오피스텔·원룸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2~3년 전부터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국내 부동산 시장에 어두운 만큼 배우자나 다른 외국인·한국인 지인들과 함께 찾아와 문의·계약을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홍대 상권의 ‘임대료 피로감’을 타고 한때 경쟁 상권이던 신촌 일대는 오히려 화색이다. 연세대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작은 식당을 열 만한 33㎡짜리 ‘메인 상권’의 1층 작은 매장을 기준으로 신촌은 월세 임대료가 250만원, 홍대도 220만~250만원 선이지만 네이버나 구글 지도를 봐가며 찾아갈 수 있는 가게나 상가주택의 경우는 임대료가 40~50%가량 낮다”며 “메인 상권의 경우 보증금과 권리금이 각각 1억원을 넘나들지만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골목 가게들은 절반 수준이거나 특히 권리금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외국인 200만 명 시대’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10만1601명)은 10만 명을 넘어섰고, 91일 이상 국내에 사는 장기 체류 외국인은 148만여 명으로 2000년( 21만9000여 명)에 비해 7배가량 늘었다. 의류 상가나 인근 산업단지, 밀집 주거지를 끼고 있는 영등포·구로·금천·관악·광진·동대문 등 중국인이 상대적으로 몰려 사는 6개 자치구를 제외하면 서대문(1만912명)과 마포(1만697명)는 용산(1만4599명)에 이어 서울에서 등록 외국인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유커 외의 외국인도 늘어나면서 홍대·신촌 상권 일대는 글로벌 시대를 맞았다. 단순히 원룸·오피스텔 임대뿐 아니라 상가 임대 수요까지 생긴 가운데 지난 2008년부터 ‘글로벌 부동산중개사무소’ 제도를 운영 중인 서울시는 올 들어 45곳을 추가 지정해 220곳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달 15일 이미 36곳이 추가 지정을 마쳤다”며 “글로벌부동산중개사무소는 국내에 사는 외국인들의 부동산 거래를 위해 서울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1년 이상 영업한 공인중개소 중 영어·중국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가능한 지정 업소다. 자치구별로는 외국인이 많은 용산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고액 외국인 임대 수요가 있는 강남3구와 대학가인 마포·서대문 일대에 주로 분포돼 있다”고 말했다.

    ▶매도·매수 호가 차이 크고 매물 적어

    이런 저런 변화 속에 최근 3년간 건물 투자 경향을 보면 홍대 상권 입성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겨냥한 호텔과 미니 면세점, SPA의류 브랜드 등이 앞다퉈 들어서는 대로변이나 이면도로 중소형 빌딩은 이제 개인이 선뜻 사들이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홍대 인근 대로변 중형빌딩의 몸값은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0년대 중반 250억~300억 선이었지만 현재는 500억~600억 선으로 올라선 상황이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매매 가격이 오르면서 임대수익률은 4~4.5%이던 것이 3~4%대로 낮아졌지만 신축·개발 등에 따른 시세 차익을 포함한 자본 수익률을 염두에 둔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꼬마빌딩이나 상가주택의 경우

    지난 2014년에는 홍대·연남동 일대 상가주택을 중심으로 매매가 10억~20억원 선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거래를 했지만, 작년에는 10억~30억원 선인 지하철 상수·합정역 인근의 신축부지와 꼬마빌딩 거래가 늘었다.

    뜨는 상권이지만 괜찮은 매물을 사들이기는 쉽지 않다. 임채우 전문위원은 “홍대 인근 입지가 괜찮은 건물의 매매 호가는 3.3㎡당 5000만~6000만원이지만 투자자들은 4000만원 선을 원하는 상황”이라며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대형 매장 임대를 염두에 둔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신촌이나 2000만원 선인 연희동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건물주의 기대감 속에 가격은 둘째 치고 매물도 나오지 않는다. 연남동 C공인 관계자는 “연남동 인근은 꼬마빌딩이 20억원 선으로 비슷한 규모의 홍대 골목 건물보다 5억원 이상 싸지만 연남동 동진시장 쪽 먹자상권과 기사식당거리 쪽 매물은 이미 소진된 상태다. 경의선 숲길 공원이 추가 개장하면서 요즘은 주민센터 인근 ‘연남 꽃길’ 상가 주택이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시세 상승을 의식한 주인들이 선뜻 팔려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인오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2호 (2016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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