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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 Reportage “존경받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의류업계 ‘복면가왕’ 한세실업
입력 : 2016.05.02 17: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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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창립한 한세실업은 글로벌 의류업계에서 ‘복면가왕’이라 불릴 만하다. 한세실업이란 이름을 감추고 GAP, 나이키, DKNY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유수의 글로벌 패션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히든 챔피언이다. ‘미국인의 3분의 1은 한세실업의 옷을 입습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기업의 규모와 역량을 짐작할 수 있다. 한세실업은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니카라과, 과테말라, 미얀마 등 각각의 해외 현지법인에서 일하는 직원이 총 3만명에 달하고 매년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세실업의 급격한 성장의 중심에는 베트남 진출이 자리하고 있다. 한세실업 생산물량의 60%를 베트남 생산기지가 소화하고 있으며, 연간 약 2억장의 옷을 찍어 전 세계에 수출한다. 2001년 일찌감치 베트남에 진출한 한세는 한국기업 중 가장 큰 의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0년대 초 한세 베트남 법인을 설립한 이후 한세 TN과 한세 TG 등을 추가로 설립, 총 3개의 봉제법인과 2013년에 인수한 C&T 비나 염색법인을 합쳐 총 4개 법인을 두고 있다. 베트남의 대미 의류 수출량의 7%는 한세실업이 책임지고 있을 정도로 비중이 상당하다.
특히 2014년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간 한세 TG(띠앤장) 법인은 축구장 50개 크기 용지(36만3636㎡)에 총 10개 공장, 220여 개 라인으로 베트남 1·2법인을 합한 것(280개 라인)과 비슷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현재 가동률 50% 수준으로 공장이 풀가동에 들어가면 한세베트남 생산량은 2배 이상 늘어나 한세실업의 ‘2018년 매출액 2조원 돌파’에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의 평균 연령은 28세가 채 되지 않아 창창한 청년에 비유된다. 한국은 40세가 넘어 띠동갑을 웃돈다. 인구수는 9000만명을 훌쩍 넘어 한국의 2배 가깝게 많아 노동 가능인구는 비교가 힘들다. 또한 수치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국 임금의 비해 5배 이상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가격 경쟁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해 가치가 높다. 베트남이 ‘넥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큰 이유 중 하나다.
베트남전쟁으로 반미 정서가 강하고 영토분쟁 등으로 중국과의 마찰이 있어 중국에 대한 반감이 있지만 한국기업들의 선전과 한류의 영향으로 친한(親韓)정서가 자리 잡은 것도 하나의 메리트로 여겨졌다.
이에 더해 베트남 사람들은 정교한 손재주를 지녔다고 알려져 여러 기업들은 ‘GO 베트남’을 외치며 앞다퉈 진출했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인력관리나 낯선 문화 적응 등 어려움을 겪은 여러 기업들은 현지화에 실패해 리쇼어링(Reshoring)한 경우도 상당하다.
한세 역시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한세실업의 첫 해외진출은 1998년 니카라과다. 중미의 전진기지를 다지는 동시에 동남아에서 사이판의 대체지로 낙점된 지역이 베트남이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미래가치를 고려해 베트남을 선택했다. 그러나 한세실업이 베트남에 진출한 시점인 2000년대 초반 베트남의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먼저 베트남전의 영향으로 악화된 대미정서가 걸림돌이었다. 여러 미국 패션브랜드의 의류를 OEM을 통해 수출하는 한세에 대해 우호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론을 돌리기 위해 한세실업은 한 발 빠르게 최고의 급여제도와 복지제도에 힘을 기울여 나갔다.
2013년 한세베트남 공장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결혼하고 싶은 배우자감 ‘한세실업 직원’
한세베트남 TG공장을 시찰하는 동안 오후 3시가 되자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오는 것이 목격됐다.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은 오토바이나 버스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한창 정신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시간에 일부 직원들이 이탈하는 모습에 의아해 했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임신부들이었다. 한세실업은 임신부들이 1~2시간 조기 퇴근하여 러시아워를 피해 귀가해 몸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세베트남 TG 공장 전경을 출입문에서 바라보면 공장이라는 느낌보다는 공원에 와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광활한 공장 터 대부분이 잔디밭으로 조성돼 탁 트인 여백의 미가 있다.
한세베트남 TG공장을 책임지는 백종주 법인장(부장)은 “직원들끼리는 이 부지에 고무나를 심어 수출하면 쉽게 몇 십 억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농담도 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종일 공장 안에서 근무하는데 공장 밖까지 삭막하면 갇힌 느낌이 들 수 있다”며 “쉬는 동안만이라도 상쾌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밝혔다. 한세의 현지인력 관리와 복지체계는 이미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공단은 물론 현지 외국인 기업이 한세의 제도를 참고해 인력관리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2006년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 급여제도를 조정, 보완하겠다고 밝히자 가장 먼저 급여제도를 조정하고 등록한 회사도 바로 한세다. 한세실업의 베트남·미얀마 생산기지를 총괄하는 김석훈 전무는 “급여체계와 복지제도를 정비해 현지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고 여러 CSR 활동을 펼치면서 취업시장에서 한세의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의 임금제도는 정부가 총 4급지로 나눠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다. 1급지에서 4급지로 갈수록 임금이 적어진다. 기준은 지역의 발전 정도에 따라 대도시, 소도시, 농촌, 오지로 구분된다.
1급지와 4급지의 최저임금 차이는 1.5배까지 벌어진다. 각종 수당과 함께 통상임금으로 환산하면 그 격차는 최저임금 기준의 단순 격차보다 훨씬 더 벌어져 2~3배까지 차이가 나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든다.
한세실업의 경우 베트남법인(VN)은 1급지, 한세 TN법인은 2급지, 한세 TG법인은 3급지에 해당되지만 한세는 세 법인 모두 같은 급여 체계로 1급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 사기진작을 위한 여러 수당을 제공하고 있어 베트남 진출 외국기업 중 최고 수준의 임금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무는 “TN, TG법인이 2급지, 3급지에 해당함에도 1급지의 급여를 주는 이유는 최고 수준의 급여를 통해서 고급인력을 유치할 수 있고 오랜 기간 숙련된 노동력을 다른 기업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며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꾀하고 결국 생산성 향상과 품질 안정으로 이어져 회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에 20년째 거주하며 관광 가이드 일을 하는 김준현 씨(48)는 “한세 베트남 법인 직원들은 신랑신붓감으로도 상당히 환영받는 편”이라며 “안정적이고 좋은 대우를 받는 데 더해 한세에 대한 현지 이미지가 호의적인지라 취업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힌다”고 밝혔다.
베트남 한세공장
한세실업은 해외에서 사회공헌 영역에서도 가장 차별화된 현지화 정책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13년 12월 베트남 현지법인 ‘한세베트남’이 호찌민에서 열린 ‘베트남 사회책임경영(CSR) 우수기업 선정’에서 베트남 기획투자부 장관상을 받았고 2014년 1월에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 갭(GAP)이 주최한 ‘제 1회 갭 우븐 글로벌 파트너십 데이’에서 사회적 책임경영 최우수 부문을 수상했다.
사회적 책임경영 최우수 부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공헌한 전 세계 89개 파트너사 중 최고점을 받은 기업에게 주어진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은 한세가 베트남 및 해외 현지 법인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가족 친화 기업(Great Work Place)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다.
가족 같은 융화를 위해 한세가 한국 직원들에게 강조한 점은 동등한 위치에서 겸손하게 접근하는 기업 문화다. 한세 현지법인의 한국 직원들은 생산직 직원들과 함께 현지인의 각종 경조사 참석은 물론 모임 등 화합을 도모한다. 베트남의 경우, 2010년부터는 현지에서 근무하는 우수 직원들을 선발해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는 순환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매년 11월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세실업의 임직원들과 가족들 3만여 명이 모이는 대규모 체육대회를 개최해 단합과 노사화합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해 축구대회부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등이 장장 5시간 동안 이어지는 체육대회는 베트남 호찌민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례행사다.
상생경영과 관련해서도 2004년부터 진행한 협력업체 간담회를 해외 현지에서도 진행하며 ‘협력과 화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1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베트남 호찌민 시에서 각각 현지 협력업체 40개사 임직원 100여 명을 초청해 진행했으며 이후로도 이어져 오고 있다.
2001년 구찌지역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고 있던 허허벌판에 공장을 착공한다고 했을 때 누구도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베트남 진출 이후 15년여가 지난 지금 베트남 최고의 의류 수출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철저한 현지화와 CSR활동을 펼쳐 얻은 존경과 신망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설 명절’ 후 사직서 제출에 골치 아픈 한국기업들, 선견지명 통해 피한 한세 베트남
2000년대 베트남 경제가 급성장하며 베트남 전 지역에서 경제도시 호찌민으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그러나 베트남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유교문화권인 베트남의 최대 명절은 설날이라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공식적인 연휴기간을 갖는다. 연 단위로 노동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고 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나면 유독 고향에 눌러앉는 사례들이 많아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 수급에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많았다. 심한 경우 전체 직원의 20~30%가 복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향에도 공장이 생기고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귀성했다가 새로 일자리를 찾아 눌러앉았던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를 빼앗기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그 시기 공장들은 그때마다 인력난으로 한바탕 출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호찌민에서 가까운 구찌 지역에 위치한 한세실업은 이러한 인력난으로부터 거리가 멀었다. 구찌 지역은 워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속해 한세실업 공장 직원의 95% 이상이 현지 지역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7시 30분 인사·경조사 관리, 한세베트남에 파업이 없는 이유
베트남 경제가 가파른 상승을 이루던 2007~2008년경 노동자들의 파업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조가 있었지만 정식으로 하는 파업이 아니었고 일하는 사람 몇몇이 뭉쳐 파업을 선동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나 인근 공장의 장기화된 파업의 영향을 받아 근로자들의 파업이 간혹 생겼지만 한세의 경우 반나절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한세베트남 TN공장에서도 공장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원인 모를 파업이 일어났다. 요구조건은 ‘식당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사소한 것이었다. 급여 수준이나 근무환경 등 직원 복지에 항상 최고수준을 유지하며 파업과는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던 한세는 갑작스러운 파업에 당황했다.
타개책으로 찾은 것은 공손한 인사. 현장은 오전 7시 20분부터 업무시작인데 한국 관리직원들은 6시 30분부터 회사 정문에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러기를 한 달여가 지나며 TN공장에서는 그 이후 어떤 사소한 일로도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다.
[베트남 띠엔장 -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7호(2016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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