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나가는 리더들의 ‘멋’스럽게 노는 법 `세종CEO합창단`
입력 : 2016.05.02 17:27:06
-
“네가 하는 게 도대체 뭐야? 모든 개발은 우리 같은 엔지니어가 다하는데 너는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사람들은 다들 천재 스티브 잡스만 이야기하는 거야? - 스티브 워즈니악
“오케스트라에서 너희들 개개인은 아주 뛰어난 연주자지, 하지만 난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야!” - 스티브 잡스 - 영화 <스티브 잡스(2015)> 中 한 조직의 최고경영자(CEO)는 흔히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되곤 한다. 지휘자는 소리를 내는 단원이나 여러 악기의 연주가 조화롭게 합주될 수 있도록 전체를 꿰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통치자’의 역할만이 아니다. 어떤 작품을 선택해 어떻게 해석하여 예술적 결과물을 완성할지도 지휘자의 예술가로서의 몫이자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CEO의 역할론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조직 속의 수많은 구슬을 유기적으로 꿰어내어 보배로 만들어내야 할 위치에 있다. 조직 내의 갈등이나 마찰을 줄이고 하나의 목소리, 즉 공동의 목표를 집중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모든 악기를 완벽히 연주하지는 못할뿐더러 ‘듣는 귀’를 발달시켜야 하고 보다 좋은 소리와 짜임새를 위해 연주 방법 등을 통일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합창 연습 중인 세종CEO합창단
- 세종CEO합창단 바리톤 승수원 인슐레이션코리아(주) 대표
지휘자 자리에 익숙한 최고경영자는 세컨드 테너의 애환(?)이나 바리톤의 개인사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쉽다. 현실적으로 더는 구성원의 위치에 서기 힘든 만큼 개개인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기 힘들다. 조직원과 경영자의 갈등은 이러한 넘기 힘든 마음의 ‘벽’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영국의 채널 4에서 방송된, CEO가 자신의 회사 일용직 사원으로 취업하는 형식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인 <언더커버보스>에 대한 대중의 환호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의 존재를 방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업에서는 불가할지 몰라도 예술의 영역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휘자의 역할을 버리고 합창단원으로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CEO합창단의 거국적인 목표 역시 조화롭다.
진중한 연습 분위기 속 격 없는 소통 # “저 분은 수업시간 내내 좋은 소리를 내려고 혼자 서서 노래를 부르시잖아요. 대단한 분 아니십니까? 박수 한 번 쳐드리죠.” -지휘자 임명운 감독
“치질 걸려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앉지를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일동 웃음) ” - 익명의 단원
# “이 선생님은 매일 20분씩 연습하신대요. 실력이 앞으로 많이 좋아지실 것 같습니다.” - 지휘자 임명운 감독
# “병원에서 환자들은 그렇게 열심히 진료 안 하신다고 하던데요? 제가 몇 번 병원에 가봤는데 진료를 합창만큼 열심히 안 하고 대충대충 하시더라고요.(일동 웃음)” - 익명의 단원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주고받는 격 없는 농담에선 이들의 깊은 친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주어진 시간에 단원들은 긴장을 풀고 친분을 과시했다. 그러나 연습시간의 몰입도는 상당했다. 누구 하나 졸거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잡담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리를 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넥타이는 잠시 풀어내고 목을 가볍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휘하며 손을 흔들며 박자를 계산하는 단원부터, 끊임없이 발을 구르며 박자를 쪼개며 맞춰가는 모습에서 상당한 열정이 느껴졌다. 연습을 쉬는 와중에도 일부 단원은 계속 개인 연습을 지속했다. 열의는 출석률에도 나타난다. 합창단을 이끄는 김남수 단장(플렌티넷 감사)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에도 참여율이 70%에 이른다고 밝혔다. 7시부터 시작되는 연습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연습에 참여한 후 쉬는 시간을 활용해 간단한 샐러드 등으로 요기를 하는 단원도 몇몇 보였다.
베이스, 바리톤, 세컨드 테너, 퍼스트 테너 4파트로 적절하게 나뉜 단원들은 각각의 파트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 음정을 맞추고 세기와 강약을 조율해나갔다. 1곡을 완창하는 데 1시간이 훌쩍 넘게 지나갔지만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햇수로 5년 차를 맞은 합창단답게 실력 역시 출중하다. 봄 학기 두 번째 연습(3월 14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꽤나 듣기 좋은 하모니가 완성됐다.
정으로 뭉친 친구들의 아지트 서로의 자녀 결혼식 축가 무대 꾸며 “진짜 귀한 목소리예요. 목소리가 보배네요. 보배!”
고승철 나남출판사 대표가 내뱉는 굵은 중저음이 연습장을 채우자 이내 지휘자는 물론 단원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고 대표는 지난해 1학기에 처음으로 합창단에 들어온 ‘새내기’ 단원에 속한다. 결속력이 좋기로 유명한 합창단답게 멤버들 다수가 5년간 함께 동고동락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텃새’는 있을 수 없다. 고 대표는 여러 선후배들과 함께 베이스에 최적화된 소리의 재능을 깨닫고 연말공연의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다.
세종CEO합창단원들은 초창기 원년 멤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토대에 지난해에 고승철 대표를 포함해 3명의 신입 단원이 충원된 것처럼 매년 조금씩 멤버를 충원해 지금은 총 26명의 단원이 속해 있다.
자존심 하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CEO들이 모여 있다 해도 어색함은 없다. 70대 큰 형님부터 40대 중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평생 함께 가자”는 기치 아래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조직을 이끌어가는 경영자지만 합창단 안에서는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형·동생’으로 부르며 격 없는 사이가 됐다. 가끔씩 모여 술잔을 기울일 때 공식 건배사는 ‘조배죽(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라고 한다. 서슬 퍼런 건배사는 김남수 단장이 만들었다고 한다.
가족처럼 지내며 서로 최고의 편한 친구이자 컨설팅 상대라고 할 수 있다. 맘 편히 고민도 털어놓고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최고경영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조언도 서슴지 않는다. 세종CEO합창단의 중심을 잡아주는 큰 형님은 선우영석 한솔홀딩스 대표다. 가장 앞자리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에 다른 단원이자 아우들도 긴장감을 한시도 놓기 힘들다.
“회사 일에 치이다 보면 머리가 아플 때도 있는데, 여기 와서 노래를 하다 보면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날아갑니다. 또 딸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상당히 도움도 되는 듯합니다.”
선우영석 대표의 슬하에 딸 선우지현 씨는 클라리넷을 전공한 음악가다. 2013년, 2014년 세종CEO합창단 정기연주회 때 연주자로 함께하며 의미를 더했다. 선우영석 대표 외에 이종현 하이닉스 바이오파마 대표의 딸 이나일 씨 역시 작·편곡과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음악가로 마찬가지로 정기 연주회에 참석했다.
서로의 가족들까지 살뜰히 챙기며 지내는 이들이 정기연주회 외에 출동하는 무대가 있는데 바로 자녀들의 결혼식이다. 자녀들의 결혼식에 축가를 함께 부르며 축하해주고 혼주는 솔로곡을 완창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김남수 세종CEO합창단 단장
실력보다 정을 나눌 수 있는 가족 찾아
출석률 60~70%를 유지하고 있는데 서로 잘 지내다 보니 다들 스스로 오고 싶은 공간이 된 것 같아요.
▶5년 동안 합창단의 실력도 많이 발전했을 것 같은데요?
처음 공연할 때는 낯부끄러운 공연을 했죠.(웃음) 이 연습 장소에서 자그마하게 공연을 했는데 조금씩 키웠죠. 아마추어면서 즐거운 합창단을 꾸려나가자 하는 것이 목표다 보니 작년에는 지금보다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하드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최고경영자들이 아무래도 점잖으신 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합창단에 들어오겠다고 오신 분들이다 보니 음악에 대한 관심도 있고 노래 부르기도 즐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합창으로 보면 대부분 다 초봅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들고 하는 거랑은 많이 다르거든요.(웃음) 그래도 성가대 활동하셨던 분들도 재학 시절 악기를 다루는 분들도 있어요. 장세권 원장 같은 경우는 군계일학이라고 할 수 있죠.
▶합창단에 대한 열정을 회사 경영에 있어서도 접목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흔히 오케스트라와 경영을 많이 비유하는데 합창도 파트가 완벽하게 소리를 내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하모니가 나오지 않잖아요. 합창도 경영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죠. 개개인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서 그것이 전체적인 팀워크로 나타날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듯이 회사 내 합창단을 만들어서 팀별로 전원 다 참석해서 경연대회를 열어서 희망하는 사람을 뽑아 연말에 발표회를 열기도 하고, 신입사원 연수 등에 무대를 올리기도 했어요.
▶역효과는 없었나요?(웃음)
직원들도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어요. 바쁜데 합창까지 시킨다고 불만들도 있었는데, 전체 조직원들이 다 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하니 봉사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상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입단 조건이 따로 있습니까? 오디션이라도?
오디션은 따로 없습니다.(웃음) 열의와 참석 가능성이 더 중요하죠. 입단 전에 먼저 수업에 참석해서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생각보다 노래 실력이 너무 그러면 좀 힘들 텐데… 아직까지 실력 때문에 입단이 거부된 경우는 없었습니다.(웃음)
▶처음 합창단이 생길 때 단원들의 성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5년 정도 됐는데 아무래도 조건이 르네상스 수료회원 혹은 세종문화회관 후원 회원이어야 하니 다소간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끈끈하게 친해져서 “평생 같이하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합창단에 들어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 있는 분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세종꿈나무 후원금 전달식
“첫 공연은 사실 못 봐줄 정도였죠.(웃음) 그래도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조금씩 실력들을 갖춰가고 있는 듯합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실력을 키우고 정기연주회의 규모도 커졌다. 이듬해에는 삼성동 베어홀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2013년부터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로 공연장을 옮겼다. 지난해 연주회에는 300여 명이 공연장을 찾았다. 대부분 가족, 지인들 회사 직원들이고 전석 무료로 진행됐다. 명망 있는 CEO들이 모인 만큼 나눔도 빠지지 않는다. 단원들 누구 하나 기자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세종CEO합창단은 남모르게 꿈나무오케스트라를 후원하고 있다. 소외계층, 다문화, 한부모 가정 등 음악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80여 명의 아이들이 모인 꿈나무오케스트라에 악기를 기부하고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꿈나무오케스트라 학생들 중에 음대에 진학한 학생이 나오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식사 대접을 하고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취미생활을, 취미생활이 평생 함께할 친구들을, 친구들이 모여 소외계층을 돕는 엔젤 합창단을 탄생시킨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선순환 사례는 즐길 거리 부족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세종CEO합창단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승수원 인슐레이션코리아(주) 대표
- 맥스 루카도(Max Lucado)
최고경영자의 위치는 조직에서 외롭기 마련이다. 조직의 운명을 가르는 여러 쉽지 않은 선택들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고, 대중의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구성원과 기탄없는 소통을 통해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기도 어렵다. 세종CEO합창단이 가족 같은 모임으로 자리 잡는 데는 승수원 대표의 분위기 메이킹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승 대표는 시니어와 주니어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화기애애하면서도 끈끈한 가족적인 합창단을 이끄는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 노래 실력이 ‘부족한 축’에 속한다며 자신을 낮추는 승 대표가 생각하는 합창과 기업에 대한 철학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합창단 활동의 장점이라고 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형 아우로 연결된 끈끈한 정이 참 좋습니다. 사실 CEO들이 이렇게 편하고 허심탄회한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저희 합창단 모토 역시 실력보다 정이 먼저예요. 서로 먼저 끌어주고 못하면 구박도 하지만(웃음), 기본적으로 서로 아끼는 가족 같은 모임이 좋은 거죠. 같은 약속이 생겨도 먼저 달려가고 싶은 그런 편한 곳이 됐습니다.
일상이나 회사생활에도 합창단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하셨는데.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안에 쌓여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잖아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마음의 응어리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러한 과정이 건강에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와 소통 친목이 모두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 경영에 합창단 활동이 주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저는 노래를 못하는 편에 속하는데 한 조직에서도 필히 일을 잘하고 또는 못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업무능력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그들은 모두 회사에서 분명 어떤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다 소중한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자기분야에서 맡은 분야를 열심히 하며 돋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소리를 크게만 내서는 합창이 제대로 될 리 없거든요. 조직도 마찬가지로 운영되기 힘들죠.
회사 직원들에게 합창을 곧잘 비유해 역할론을 강조한다고 하셨는데.
수출사업을 하고 영위하는 저희 입장에서도 그러한 조직원들의 책임의식과 팀워크가 상당히 중요한데 합창이 주는 함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조직은 물론 나아가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열심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강조하는 편입니다. 합창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한 측면에서 CEO합창단이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웃음)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7호(2016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