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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헌터’ 유순신의 Upgrade Your Career] (19)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
입력 : 2016.03.18 11: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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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였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3D프린터, 무인자동차, 나노·바이오기술 등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이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예정으로 사회는 더 빠르게 변할 것이 분명하다. 첨단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더 편하고 여유롭게 해줄 테지만, 우리의 일자리는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과거에 유망 직종으로 손꼽혔던 직업들이 사라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직업이 새롭게 떠오르며 짧은 기간에 많은 변화를 겪는 혼란스러운 미래충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분야가 전도유망한지’, ‘그로 인해 어떤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날 것인지’ 늘 심사숙고하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 신규 직업군 탄생
최근 들어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들은 고독사·자살·살해 등 사망 현장을 청소하고 그들의 재산과 유품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한다. 고인에 대한 기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하기 힘들어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대신해 흔적을 모두 지워주자는 것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그 외에도 상품가치가 있는 문화를 선정하거나 기획·판매하는 문화 마케터, 고객 업체에 적합한 키워드를 개발하고 분석해주는 키워드 에디터, 컨설팅이나 기업전략 수립 등 친환경 마케팅에 대한 자문을 해주는 친환경 마케팅 컨설턴트, 고객 취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퍼스널 쇼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기반한 직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는 취미 수준이었지만 어느새 주요 직업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바리스타, 커플매니저, 푸드스타일리스트 등도 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직업들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만큼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IT뿐만 아니라 금융, 의료, 서비스, 심지어 농경산업까지도 지능정보 기술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가 살아왔고 일하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 혁명 직전에 서 있는 것이다. 너무 빠른 변화 속도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과 지혜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세상이다.
변호사이자 대기업 법무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A씨를 만나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대형 로펌에서 근무하는데, 신입이나 경력직 변호사를 뽑을 때의 기준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누구나 들어도 알 만한 화려한 학력에 전직 판사나 검사 경력을 중요하게 선호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서였다면, 요즘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뽑는다고 한다. 즉 ‘의뢰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상담을 잘하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경청하는 자세로 진심으로 공감하며 상담해주는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사람의 심리와 정신에 대해 공부하는 법조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기술이 발전하고 로봇이 수많은 일을 대체하더라도 ‘휴머니즘’을 가진 직업은 살아남는다. 필자의 직업인 헤드헌터도 그렇다. 아무리 뛰어난 기계라 하더라도 말투와 태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차이와 뉘앙스를 감지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율하는 일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이 자리에는 이 후보자가 딱이다’라는 직관을 로봇이 흉내 내기는 어렵다. 상담 전문가, 작가, 예술가 등 감성과 관련된 일들이나 구조조정 전문가처럼 사람을 상대로 고도의 협상을 해야 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직업은 미래에도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대인관계를 통한 상호 협력: 협업을 통한 이익 창출
B사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고정된 팀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매번 새로운 팀을 구성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다시 각자의 업무로 돌아간다. 소위 말하는 ‘헤쳐 모여’ 작전이다.
기술 개발, 제품 기획, 영업, 커뮤니케이션 등 각각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인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해당 업무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각 지역과 나라에서 모여 메일과 메신저, SNS, 영상회의 등을 통해 협업을 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이 전문가로서 보완해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문지식을 보유한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상호 협력해 업무 효율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서로 상부상조해 이익을 창출해내는 일은 앞으로 더 일반적인 모습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직업의 사람들끼리 협업을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칠 수도 있다. 요즘 주목 받고 있는 ‘공유경제’ 역시 협업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며 상호 협력해 이익을 얻는 새로운 경제 형태가 생겨난 것이다. 얼마 전 대표적인 공유경제 서비스 기업인 에어비앤비(Airbnb)의 기업가치가 255억달러까지 올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빌려 쓰는 ‘공유경제’의 거센 바람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내 직업이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면?’ 더 나아가 ‘내 직장 상사로 로봇이 온다면?’ 이런 일들은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지난해 구글에서 만든 AI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 출신인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 2단에게 5판을 내리 이겨 화제였다. 1997년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챔피언과의 대국에서 최종 승리한 적이 있었지만 훨씬 복잡한 바둑에서 인간을 넘어선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역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누가 이길 것인지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알파고는 이번 대국을 위해 인간의 1000년치에 해당하는 학습을 했다고 한다. 이 정도의 발전 속도라면 언젠가는 정말로 사람이 설 곳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렵기까지 하다. 기술의 발전이 직업 세계의 판도를 크게 바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로봇과 인간이 공생하는 세상은 이제 더 이상 SF영화 속의 이야기도, 먼 미래의 이야기도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는 세상,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정도로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넘어 기계와의 소통도 중요해졌다.
지금까지는 단답형에 직접적인 ‘남자의 말’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앞으로는 ‘여자의 말’ 즉 멀티태스킹과 공감, 배려가 가능한 언어가 더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휴머니즘과 상호 협력 능력을 갖춘 인재, 사람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기계와도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인재가 살아남는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피할 수 없다면 서로 윈윈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6호(2016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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