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건축트렌드] (5) 근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 피로티·옥상정원… 100년 전 현대적 건축설계

    입력 : 2016.03.17 17:03:51

  • 현대 도시건축에서 피로티 구조,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벽체, 수평띠 창, 옥상 정원 등을 빼놓고 건축물을 설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100여 년 전 이에 대한 예견과 실행을 꿈꾼 건축가가 있다. 바로 근대 건축의 3대 거장 중의 한 명인 스위스 태생의 르 꼬르뷔지에(Le-Corbusier, 1887~1965)다. 그는 스위스의 작은 수공업도시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다. 라 쇼-드-퐁은 소규모 공방 위주의 시계 생산, 제작, 디자인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도시였다. 14세가 되자 그는 가업인 시계세공업자로 훈련 받기 위해 예술공예학교에서 디자이너 및 조각사 교육을 받는다. 그는 그곳에서 스승 레플라트리로부터 자연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배운다. 그러나 시력이 약한 그는 스승의 권유로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롱샹예배당 (출처 Francios Philipp)
    롱샹예배당 (출처 Francios Philipp)
    한동안 프랑스의 건축가이며 철근 콘크리트의 개척자인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건축이 형태적 아름다움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독일의 디자이너 겸 건축가인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근대적 취향과 안목을 갖게 된다. 정식 건축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많은 철학, 문학, 인문교양을 쌓았는데 20대 전반 동안에는 주로 유럽, 중동 각지를 여행하면서 도시건축을 연구했다. 이 경험은 건축가로서 평생 동안의 자양분이 된다.
    르 꼬르뷔지에
    르 꼬르뷔지에
    ▶거대 도시화의 시작 20세기가 되면 유럽의 도시들은 인구과밀 현상을 보이게 되며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접하게 된다. 그는 이상적인 도시 형태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1922년 300만명이 살 수 있는 ‘현대도시(Ville Contempor aine)’를 발표한다.

    이는 산업사회로 병든 도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10~12층 주거블록은 인구과밀을 수용했으며 도심 중심부는 종교 구조물 대신 60층 규모의 사무실 군으로 이루어졌다. 계급적 지역분리는 인정되었으며 신분별 표준화된 주거에는 개인 정원을 설치했다. 중앙 집중화된 모든 도시 설계는 표준화되었으며 대량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후 1933년 발표된 모스크바를 위한 ‘빛나는 도시(the Ville Radieuse)’에서 그의 생각은 좀 더 개방적이다. 중앙 집중적 생각은 용도 영역별 선형 배치로 변형되고 모든 구조물은 필로티로 만들어져 대지를 보행자에게 공원으로 제공한다.

    계급적 배치관은 배제되었으나 공간의 위계는 나타난다. 또한 옥상정원은 도시공간에 활력소를 제공한다. 빛나는 도시에서 주거지역은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42년 제안된 프랑스 동부 ‘생 디에 도시계획안’은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이론을 실현하고 있다. 도시는 중앙 집중화되지 않았으며 선형구조를 보여주고 좀 더 섬세한 건축물의 배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도시 선형을 선호하는 경향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는 1950년 이후 도시계획 이론을 실현할 기회를 잡는다. 인도 정부가 펀잡의 행정수도 ‘샹 디가르(Chandigarh)’ 신도시를 설계할 건축 고문으로 발탁한 것이다. 주요 행정건물을 직접 디자인하게 되는데 일생을 바쳐 샹 디가르 도시계획안을 구체화시킨다. 그의 근대 도시에 대한 열망과 새로운 개념들은 현대까지 많은 영감과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현대도시에 대한 많은 선택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빌라 사보이 (출처 August Fischer)
    빌라 사보이 (출처 August Fischer)
    ▶근대 건축 이론의 정립

    그의 초기 작업은 주로 주택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철근 콘크리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1914년 정의한 도미노 모형(철근 콘크리트 기둥, 캔티레버 슬래브, 피로티, 평지붕을 표현한 개념)은 장식에 구애 받지 않는 금욕주의적 이상을 표현하고 대량생산의 기본 유니트로서 향후 진행할 도시계획의 기초가 된다.

    1922년 발표된 ‘메종 시트로엥(Maison Citrohan)’은 동시에 발표된 ‘현대도시’와 더불어 그의 초기 고민을 알 수 있다. 초기 주택 작품에서 보여준 장식은 제거되었으며 평지붕과 피로티를 두어 주차장으로 활용했다. 1926년 발표한 신건축 5원칙(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파사드-입면, 수평으로 긴 미닫이창, 옥상정원)은 그가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했고 이를 자신 있게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9년 파리 인근에 세워진 ‘빌라 사부아(Villa Savoye)’에서 그의 이런 정신은 완성에 이른다.

    이상적인 형태미와 절제미는 특정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신건축 5원칙을 철저히 실현했으며 현대 디자인으로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조형성과 의도된 개념은 이후 많은 건축가들에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샹 디가르 대법원 (출처 Aleksandr Zykov), 도미노 모형 (출처 Jean-Pierre Dalbera)
    샹 디가르 대법원 (출처 Aleksandr Zykov), 도미노 모형 (출처 Jean-Pierre Dalbera)
    ▶근대 고전주의 미학과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조화

    1930년대 이후 그의 작품들은 기계주의적 순수 미학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해 양면적 성향을 띠기 시작한다. 논리적 엄격함은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스위스의 작은 수공업도시 라 쇼-드-퐁에서 태어난 그에겐 자연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다. 1935년 파리에 세워진 ‘메종 드 위켄드(Petite Maison de Weekend)’로부터 시작된 풍토적 투박스러움과 감수적 경향은 1950년대 프랑스 보주 산속에 세워진 ‘롱샹(Ronchamp) 예배당’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건물 전체가 콘크리트 곡면으로 이루어진 조소적 작품인데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형태와 빛의 유희를 통해 그는 시적 창의성을 표현한다.

    합리주의 건축의 대표자인 그가 가장 비합리적인 건축물을 제시함으로써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남긴다.

    그는 많은 저서와 이론 및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다. 도미노 구조, 신건축 5원칙, 복층형 주거, 인체공학 모듈이론, 도시계획안, 작품 등으로 근대 합리주의 건축의 대표주자가 된다. 창조적 예술가 겸 건축가로서 근대 고전주의 미학과 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점에서 그의 위대성이 있다. 또한 도시화로 인한 시대의 요구인 주거 대량생산과 표준화의 이상주의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때론 당대 보수적인 부류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끊임없이 본인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실현시켰다.

    감히 현대 건축의 기본이 되는 모든 이론들이 그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기계’라 표명하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담고자 평생 노력했다. 그의 사상과 이론은 건축을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시적 감수성을 많이 잃어버린 현대의 건축 문화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양희종 한미글로벌 부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6호(2016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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