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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내리다 보니 다시 그 길 `강서둘레길`
입력 : 2015.10.23 15: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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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기억을 더듬어 보자고. 2015년 10월 21일이야. 그날이 마티가 타임머신 드로리안(DeLorean DMC-12)을 타고 도착하는 날인 거야. 실제로 며칠 안 남았잖아. 우린 쭈~욱 그를 기다려 온 거야. 26년이나.” 뜬금없지만 40대 남자 너댓 명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 주제가 영화로 빠졌다. 그것도 정확하게 1989년 개봉작 <백 투 더 퓨처 2(Back To The Future2)>에 꽂혔다. 무려 26년 전, 서울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 세계에 타임머신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마티가 타임머신을 타고 30여 년 후로 날아오는데 얼마나 흥미진진했냐. 도대체 미래가 어떨지 알고 현실처럼 구라를 치냐고. 그때 전쟁으로 폭삭 망할지 모른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었잖아. 그런데 신기한 건 영화에 나온 것들이 척척 들어맞고 있다며?”
개화산 해맞이 공원
“아직 땅에서 30㎝ 밖에 뜨지 못하지만 하늘을 나는 스케이트보드 비슷한 게 나왔고, 영화에서 마티가 신던 나이키 운동화는 거짓말같이 매장에 나왔었지 아마. … 타임머신은 아직 요원하구먼.”
…그러니까 시간을 30분 전으로 되돌리면 이 난감한 상황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 불필요해진다. 잠시 타임머신 타고 30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사정은 이렇다.
“10년 전만 해도 집 주변이 휑했는데, 이젠 아파트 숲이 됐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땅이라도 좀 사놓는 건데.”
“그런 말은 누가 못하겠냐. 그건 둘째치고 10년 후에 만나면 가정이 짜할 거라더니 너 아직 혼잔 건 알기나 한 거냐.”
옆에 있던 후배가 한마디 거들었다.
“두 분 다 졸업하고 10년 후에는 억 소리 나게 성공한다고 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앞에 놓인 건 빈대떡에 소주뿐이거든요.”
아, 복기해보니 생각보다 처절하게 유치하다….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은 건 그 유치가 남루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난 10년 동안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해도 원탁을 둘러싼 40대 남자 모두 앞으로 10년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아직은, 고작 40대란 안도감에 그럼에도 약간의 힘겨움이 묻어났다. 그때 누군가 센 척하며 말을 뱉었다.
“너 말 잘했다. 10년 후에 두고 보자.”
▶300여 년 전 서울, 그리고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산 자락의 ‘약사사(藥師寺)’는 자리한 곳의 주변 환경이 가라앉은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하늘로 올리는 곳이다. 고려 후기 시대 3층 석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과 석불(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호)이 모셔져 있어 고려 후기에 창건됐다고 유추되는데, 이곳 언저리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서울의 풍경은 그대로 화폭에 옮겨도 될 만큼 빼어나다.
개화산 전망대
이곳부터 옆으로 난 둘레길이 강서둘레길인데, 총 3코스 중 출발점이 도착점이 되는 순환형 코스가 바로 1코스다. 원 코스는 ‘방화근린공원’에서 시작되는데, 약사사 옆에 차를 주차하고 나름 제대로 걷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출발하기로 했다. 고작 다리 몇 번 휘젓고 고개 들어 하늘 바라보는 행위가 전부지만 빼놓자니 서운하고 아무 곳에서나 하자니 괜스레 부끄러울 때가 있다. 하늘 바라보며 약사사로 들어서니 규모가 제법 넓고 크다. 한쪽에선 둘레길 오가던 이들이 삼삼오오 차 한잔에 수다 중이고, 그 뒤로 때 잊은 매미 두어 마리의 울음이 간간이 구슬프다.
사실 도심의 낮은 산(128m)에 규모가 큰 사찰이 있다는 건 종교를 떠나 오가는 이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잠시 들러 목을 축일 수도, 쉴 수도, 밥 때가 되면 점심공양으로 배를 채울 수도 있다. 그 모든 고마움을 뒤로하고 둘레길로 들어서니 얼마 안 가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데크 깔아 만들어놓은 ‘개화산전망대’에 서 보니 가을 하늘 아래 서울타워와 북한산이 선명하다. 이곳은 매년 1월 1일만 되면 새벽부터 해맞이 인파가 몰리는 곳인데, 그래서인지 붙여놓은 또 다른 이름이 ‘개화산 해맞이 공원’이다.
전망대 앞 게시판을 살펴보니 여타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전경에 대한 설명 대신 겸재 정선(1676~1759)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겸재가 그린 한강의 모습과 현재의 사진이 나란하다. 그러니까 비록 그림이나마 300여 년 전 한양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다. 겸재는 65세였던 1740년 초가을부터 70세까지 만 5년간 양천(강서구 가양동 일대)의 현령(縣令)을 지내면서 강서지역을 중심으로 한강의 풍광을 남겼다.
과연 그는 300여 년 후의 한양, 아니 조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떠올리며 붓을 쥐었을까. 당시와 비교하면 천지개벽한 2015년을 상상이나 했을까.
▶툭 떨어지는 도토리, 가을이 성큼 공원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가파르다. 두어 시간 슬슬 걸어보자던 기대와는 기운이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의 웅장함을 논할 건 아니지만 오밀조밀한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다보니 걷는 속도와 거리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데크로 마무리된 산책로, 약사사
어쨌거나 가던 길을 멈출 순 없는 법. 돌아 나가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우뚝 솟은 호국충혼비가 눈에 들어왔다. 1950년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비행장을 사수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전진부대 소속 11, 12, 15연대 1100여 명 전우들을 추모하기 위한 ‘김포(개화산) 지구 전투 위령비’다.
잠시 그늘에서 쉬다 길을 나서니 이번엔 길이 솟아올랐다 가라앉는다. 높이 변화가 커 오히려 지루하지 않다. 둘레길 곳곳에 교차되는 지점이 있는데, 무턱대고 데크 길로 들어서면 개화산을 가로지르게 된다. 야트막한 산의 특징 중 하나는 가로지르는 길이 생각보다 빠르고 평평하다는 것. 급한 일이 생겼다면 모를까, 제대로 둘러보겠다면 흙길이 제격이다. 가을 산행의 매력 중 하나는 도토리. 산길을 걷다보면 길이 아닌 숲에서 뭔가 툭툭 뒤따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서면 머리 위로 뭔가가 툭 떨어진다. 살펴보면 작고 윤기가 자르르한 도토리다. 볼 순 있으나 갖고 나오는 건 자연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 시기의 도토리는 숲의 주인들에겐 목숨과도 같은 겨울 양식이다.
한 바퀴 휘휘 돌고 나니 4시간여가 흘렀다. 아쉬운 마음에 3코스에 자리한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둘레길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차로 이동한다면 약사사에서 5분여 거리인 한강공원주차장에서 길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신세계다. 2002년 7월 1일 개원했는데, 34만㎡의 공간에 담수지와 저습지, 갈대밭과 버드나무숲이 어우러진 탐방로와 철새조망대가 멋스러운 곳이다. 늦가을부터 청둥오리 등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걸어서 한 바퀴 돌기만 해도 뱉고 마시는 공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강서둘레길 일반적으로 방화 근린공원에서 출발해 개화산, 치현산, 서남 환경공원, 강서 한강공원을 잇는 11.44㎞가 강화둘레길이다. 서울 강서구의 고유한 생태와 역사, 문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약사사 3층 석탑, 풍산심씨 묘역, 각종 전망대, 메타세쿼이아 숲, 습지생태공원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각 시설의 명칭도 주민 여론을 수렴해 향토사학자의 자문을 거쳐 결정했다.
강서습지생태공원
·1코스: 약사사→개화산전망대→봉화정→아라뱃길전망대→숲속쉼터→신선바위→호국충혼비→
미타사→하늘길전망대→풍산심씨사당→심정쉼터→방화근린공원→개화산생태습지→약사사
·2코스: 방화근린공원→꿩고개체력단련장→치현산→치현물레소공원→서남환경공원→
옹기골근린공원→메타세쿼이아숲길
·3코스: 개화산전망대→은행나무보호수→상사마을→행주나들목(토끼굴)→김포대로→행주대교→
강서한강공원→강서습지생태공원→정곡나들목(육갑문)
새롭게 단장한 강서둘레길 3코스 지난 9월 8일 은행나무 숲과 아라뱃길, 조류 전망대가 있는 강서둘레길 3코스 구간(4.56㎞) 중 일부가 정비돼 새롭게 개방됐다. 공사구간은 개화산 전망대부터 은행나무 숲이 있는 상사마을, 강서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2.1㎞ 구간이다. 강서구가 가장 신경 쓴 점은 빗물 배수시설.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원활하게 빠지지 않아 그동안 산책로가 질퍽거려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도록 조경에도 힘을 줬다. 길목에 메타세쿼이아와 수양버들로 그늘을 만들고, 일부 구간은 물억새 군락지를 조성해 가을 정취를 살렸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1호(201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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