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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헌터’ 유순신의 Upgrade Your Career] (1) 누가 진짜 인재인가?
입력 : 2014.09.12 15: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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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국내기업에서 이런 인재에 대해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 물어보았더니, “연봉은 마켓 프라이스로 제한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국이 예전보다 매력도가 높아져서 외국에서 스카우트를 한다 해도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적합한 인재라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객사로부터 이러한 프로젝트를 받게 되면 이른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식의 인재 찾기에 들어간다. 인재 추천은 보통 후보자 목록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하게 되며, 많게는 백 명의 후보자를 물색해야 한다. 통상 해당 산업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대표 컨설턴트와 후보자를 물색하는 3명의 리서처(Researcher)들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때때로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없는 사람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뼈아픈 실패를 겪기도 한다.
C사와 같은 경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특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업화시켜서 성과를 이끌어내는 창조력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적어도 세 번, 최대 열 번까지의 인터뷰를 거치기도 하다.
‘우리 회사에 맞는 진짜 인재는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고도화된 역량평가를 거치는데 책임이 막중한 자리일수록 형이상학적인, 즉 취미나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 등의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대신 ‘이 자리에 온다면 어떤 전략으로 조직관리를 할 것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신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인데 어떻게 내부 직원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와 같은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개인 능력을 면밀히 살핀다. 운이 좋으면 일정대로 수월하게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지만, 종종 마지막 연봉 조율 단계에서 협상에만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인재상 이렇게 길고 긴 채용 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재’에 대한 기준이 과거와는 판이해졌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산업에서 20년 넘게 일을 해 온 필자도 항상 ‘지금의 시대상에 맞는 인재는 과연 누구일까? 누가 진짜 기업에 필요한 인재일까?’를 고민하면서 후보 추천을 한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인재의 기준은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전문성과 능력에 상관없이 외모가 번듯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학벌을 가진 언변이 좋은 사람을 인재라고 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는 부모의 직업과 집안 수준도 포함되었다. ‘기업문화’나 ‘추구하는 인재상’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할 때였다. 학력과 성적만 좋으면 누구든 최고 직장에서 안정된 미래를 보장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업마다 인재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그야말로 학력, 성별, 인종, 나이 등 모든 것이 파괴된 혼돈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은 모든 면에 완벽한 사람을 찾기보다는 어떤 부분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적합한 사람(Right Person)’을 원한다. 최고(Best)가 아닌 적합한(Right)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인재를 구별하는 기준이 획일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다양화되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보수적인 기업에는 활동적인 인재보다 묵직한 인재가 더 적합하고,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는 시장 판도가 빠르게 변하는 첨단 기업에 적합하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완벽한 학력과 경력을 갖추어도 해당 조직의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요즘 대부분의 인사 채용자들이 외치는 “똑같은 스펙보다 자신만의 스토리가 중요하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인재상의 변화는 근래 헤드헌팅 산업의 위상이 높아진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기업들이 각자의 조직에 적합한 인재를 찾다 보니 그러한 인재를 찾아주고 추천해주는 헤드헌터의 역할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1호 여성 헤드헌터라고 불린다. 막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헤드헌터에 대한 대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헤드헌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 일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산업 스파이로 오해 받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헤드헌터의 전화를 받으면 오히려 고마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채용 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해당 헤드헌터의 경력관리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위상이 높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하는데, 오랫동안 마음 터놓고 지내는 친구나 심지어 아내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직장에 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페이스북의 직원들은 동종업계 스카우트 대상 1호이다. 그 이유는 직원들 모두 스스로가 마크 주커버그 사장인 것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무한대로 쏟아내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통의 대가라고 불리는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SNS에 올린 채용원칙은 확고하다. 그는 “임직원의 자질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없으면 절대로 조금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열정’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인재는 문제에 대해 불평만 하는 사람(TROUBLE-MAKER)이 아닌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TROUBLE-SOLVER)으로서 함께 일하는 동료나 주위 사람들을 배려한다.
그들은 외부 인맥 관리도 평소에 꾸준히 한다. 의도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이런 습관은 결국 개인의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어느새 업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게 된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인재의 중요성 예전에는 20%의 인재가 나머지 80%를 제치고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겨우 5%의 인재가 나머지 95%를 선도하며 세계 경제지도를 재편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상위 5%에 속하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 총성 없는 인재 전쟁을 벌인다. 이들의 영입에 따라 기업 운명이 좌우된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회사 내에서 채용만 전담하는 전문 리쿠르터는 뛰어난 인재를 몇 명이나 영입했느냐에 따라 보너스를 받고 승진에도 영향을 받는다. 때로는 핵심인재를 빼앗겼다고 경쟁사끼리 고소를 하기도 하고, 동업종 간의 스카우트를 규제하는 계약을 맺는다는 기사가 신문 첫 장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재의 중요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헤드헌팅 산업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기술의 진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내부에서 직접 인재를 양성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산업이 보편화되고 헤드헌터를 이직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오늘날의 고용 시장에서는 결국 헤드헌터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 곧 인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헤드헌터의 일이다. 실제로 위의 여섯 가지 특징을 갖춘 후보자들은 헤드헌터의 눈에 띄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간다. 인재란 타고나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은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충분히 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학벌이나 집안에 따라 자신의 경력이 좌지우지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헤드헌터로서 필자의 역할은 바로 이들 각각의 인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불을 지펴 그들을 스타로 만드는 것이다.
인재와 기업 간의 이견을 조율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적임자를 찾고, 인재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도록 도와줄 때 이 직업에 대한 사명감을 느낀다.
모두가 헤드헌터의 눈에 띌 만한 ‘진짜 인재’가 되어 개인과 기업이 아름다운 상생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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