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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이상의 집’ 설계한 이지은 건축사 “그냥 좋은 집이 최고의 건축물이죠!”
입력 : 2014.07.11 14: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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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시장으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에 위치한 서촌 ‘이상의 집’은 사실 아주 작은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초라하면서도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새로 증축한 공간에 세워진 2층 구조의 ‘이상의 방’이 겨우 눈에 띌 뿐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내부 구석구석을 살피면 세월이라는 멋진 매력을 찾을 수 있다. 보강공사 과정에서 세워진 프레임과 천장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외부에서는 안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통유리가 적용돼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하다. 여기에 한옥 특유의 기와와 대들보 등을 그대로 유지해 전통가옥다운 분위기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의 흔적을 모두 품고 있는 것이다.
서촌의 작고 위태로웠던 한옥을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킨 이는 대체 누구일까. 지난 6월 17일 서촌 ‘이상의 집’에서 그녀를 직접 만나봤다.
(위)서울 이상의 집, 이상의 방 내부, (아래)서울 이상의 집 내부, 이상의 방 출입구
신축에서 개조까지 4년이 걸리다 “올봄에 개관했는데, 사실 2010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습니다. 초기에는 개인작업이 아닌 건축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시작했어요. 특정 건축가가 아닌 다양한 논의와 협업을 통해 중요한 가치와 방향을 정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서촌 ‘이상의 집’을 건축한 이지은 SSWA 대표(건축사)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다양한 건축사들과 예술작가들이 함께 이곳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이다.
당시 네 팀으로 구성됐던 건축가그룹들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토론했고, 신축안은 물론 기존 한옥을 살리는 방향 등 여러 가능성들을 검토했다. 많은 논의 끝에, 비록 이상이 살았던 생가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 통인동 154-10번지 (현재 ‘이상의 집’이 있는 이상 김해경이 살았던 땅의 일부)에 도시 한옥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고, 2012년 이후 ‘제비다방’이라는 이름 하에 기존 한옥은 2년 가까이 이상의 집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화된 기존 한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가 새고, 여기저기서 구조적인 문제들이 발생했다. 결국 2013년 건축주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다시 의뢰가 들어왔다. 기존 한옥을 살리되, 제대로 리노베이션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특히 이상과는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이 집에 이상만의 아이덴티티 (이상다움)를 담아달라고 요청해왔다.
“많은 고민 끝에, 기존 한옥이 가진 기억과 과거의 흔적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리노베이션했습니다. 이 집에 덧대어져 있던 불법 부위들을 철거해 내고, 이상의 방을 증축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이상의 집’을 완성했습니다. 이곳의 콘셉트를 한마디로 말하면, 과거의 켜(오래된 도시 한옥)와 현재의 켜(이상의 방), 그리고 서촌다움과 이상다움이 공존하는 집으로서 제안된 것입니다.”
“대학을 입학하는 과정에서 2지망으로 건축을 지원했기에, 대학을 입학해서도 건축이 과연 나와 맞는지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학년 과정에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어요. 대부분 교양과목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은 해가 바뀌면서 해소됐다. 오히려 불안해하던 앞날을 ‘건축’으로 선택할 정도였다.
“2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건축과 수업 중의 하나인 설계를 접했습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나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건축을 선택하게 만든 설계의 매력에 대해 “우리가 가진 일상적인 삶에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적 제안을 하는 일이 의미가 있고, 총체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섬세함을 통해 건물을 구현해가는 설계의 과정이 매료적”이라며 “조금 과장하면, 이때부터 아예 설계실에서 살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건축설계의 의미와 과정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건축가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건축가의 길을 선택한 후 이 소장은 연대 졸업을 하고 실무를 배우기 위해 취업을 했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일감이 줄어들었고, 결국 그녀는 다시 고민 끝에 유학을 선택했다. 목적지는 바로 166년이란 전통을 가진 영국 최고의 건축학교 AA스쿨이었다. “AA스쿨을 졸업한 김종규 교수(현 한예종 교수)로부터 학생 때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가게 되면 꼭 AA스쿨로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행기에 오른 그녀는 이후 10년 동안 영국에 머물렀다. 6년간은 공부를 해야 했고, 이후 4년은 현지에서 취업해 실무를 익혔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직 국내에서 일할 때 가끔 힘들 때가 있다고 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건축을 또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 어색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건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동산이란 개념 때문에 자산이란 부분만 보시는 겁니다. 그래서 건축주와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좋은 건물이 바로 좋은 공간을 주고, 그래야 가치 역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 필요해 보입니다.”
개방형 공공건축물로 개발중인 해도노인복지관 조감도
“단순히 물리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만족시키면서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면에 적은 선과 면을 통해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가치를 만드는 게 좋은 집이란 설명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세’와 ‘원칙’, ‘섬세함’이란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건축가로서의 입장과 태도를 명료하고 정확하게 정해 작업(자세)해야 하며, 건축 원리를 단순화하고 명료하게 정한 후(원칙) 제한된 공간과 각종 법적 규제와 지정학적 위치 등을 섬세하게(섬세함)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건축철학 아래, 서서히 건축가 겸 작가로서 보폭을 넓히고 있는 이지은 소장. 한국과 영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경험과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있는 그녀의 다음 행보는 과연 어디일까.
“올해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가 됐든, 갤러리가 됐든 많은 이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집합주거 시설도 관심이 갑니다. 아파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집합주거 시설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지은 소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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