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옌빈(嚴彬) 화빈그룹 회장 | 부동산·골프장·음료·바이오 태국·중국 경제 쥐락펴락

    입력 : 2014.02.13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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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에서 최고의 골프장으로 꼽히는 곳은 시내에서 북쪽으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나타나는 화빈골프클럽이다. 이 골프장은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방문객을 태운 승용차가 들어갈 때마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예약된 손님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처음 겪는 손님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최고의 회원제 클럽을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클럽하우스도 마치 건축작품 같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건물과 잘 어울리는 유럽풍의 아름다운 조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다. 이 골프장에서는 지난해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LPGA 대회가 열려 중국 골프의 위상을 높였다. 주최 측과 짜기라도 한 듯 중국 최고 인기 여성 골퍼인 펑산산이 경기 마지막 날에 마지막 홀에서 천금의 이글로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골프 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말 골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골프장 화빈골프클럽은 아마추어 주말 골퍼들도 베이징에서 가장 선호하는 골프장 중의 한 곳으로 페어웨이는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관리가 잘 돼 있고, 그린은 적당한 굴곡에 상대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자랑한다.

    전체 72개 홀로 이뤄진 코스는 산악형인 한국 골프장에 비해 겉보기에는 만만해 보이지만 거리가 상대적으로 긴 데다 그린과 해저드가 다양하게 배치돼 있어 결코 좋은 스코어를 내기가 쉽지 않다. 맑은 날에는 코스 어디에서나 베이징 북서쪽을 감싸고 있는 산들이 바라다 보이는 경치도 일품이다.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만리장성도 멀리 눈에 들어온다. 이 골프장을 처음 찾는 손님들은 누구라도 이처럼 기막힌 골프장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고는 못배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화교로 통하는 옌빈(嚴彬) 화빈그룹 회장이다. 그는 개인 재산이 지난 2012년 기준 500억위안(약 9조원)으로 중국 부호 순위 5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많다.

    그러나 달력을 거꾸로 넘겨 옌 회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그가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인지를 금세 확인할 수 있다.

    1954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집이 가난했다. 겨우 중학교까지 졸업하기는 했지만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날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에 바빴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태국 방콕으로 밀입국했다. 방콕의 차이나타운에서 막노동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던 그에게 처음으로 작은 기회가 찾아왔다.

    공사판 책임자가 모든 일이든 열심히 해내는 소년 옌빈을 귀엽게 여겨 자기 밑으로 와서 일할 것을 제의한 것. 옌빈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 늦게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막노동이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는 어느새 돈을 만지는 경리 일까지 맡게 됐다. 수년간 열심히 일한 옌빈은 월급을 꼬박꼬박 모은 돈이 어느정도 쌓이자 드디어 결심을 했다. 자기 사업을 해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작은 가게부터 시작한 옌빈은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불렸다. 30세가 되던 1984년 그는 드디어 태국화빈국제그룹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처음 시작은 길거리나 집에서 버려진 캔을 수집해 수출하는 무역업이었다.

    태국에서 인기를 끌던 여행업도 병행했다. 매출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1989년에는 부동산 분야로도 사업을 확대했다. 태국은 당시 부동산 건설 붐이 한창 불고 있을 때였다. 방콕 시내에 위치한 호텔의 1개 층을 사들여 숙박업에 대한 경험을 쌓은 그는 곧바로 호텔 건물 전체를 사들였다. 이 호텔은 지금도 화빈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방콕에서 운영되고 있다.

    홍뉴비타민음료의 최대 히트상품 레드불
    홍뉴비타민음료의 최대 히트상품 레드불
    태국에서 번 돈으로 중국에서 음료사업 태국에서 돈을 번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개방의 성공으로 한창 성장 가도를 달리던 고국 중국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사업을 시작할 여건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옌 회장은 1995년 중국으로 들어와 광둥성 선전시에 홍뉴비타민음료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최대 히트상품이 바로 중국 기능성 음료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레드불(중국명 홍뉴)이다.

    레드불은 원래 오스트리아 음료 회사가 만들어낸 글로벌 브랜드다.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로 1987년에 처음 출시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옌 회장이 레드불 음료 사업을 중국에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사실 그가 태국 화교인 이유가 크다. 레드불 음료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디트리히 마테쉬츠와 태국 국적의 찰레오 유비디야가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다. 원래 태국에서 판매되던 ‘크라팅 다엥(붉은 황소)’이라는 음료에서 영감을 받아 서구인 입맛에 맞게 개량된 음료가 바로 레드불이기 때문이다. 태국 국적의 옌 회장이 이 레드불 음료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레드불의 중국 출시는 옌 회장의 선구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기능성 음료 시장이 미미했다. 전통적으로 차를 즐기는 중국인들에게 카페인이 들어간 인스턴트 음료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입맛이 서구화되자 레드불에 대한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지금 레드불은 중국 기능성 음료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옌 회장은 레드불의 성공 원인에 대해 “레드불은 중국 경제의 성장과 같은 흐름을 탔기 때문에 지난 10여년간 중국에서 고품질의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빈그룹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간간이 제기되는 불법 첨가제 논란이 그것이다. 지난 2012년 2월에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식품약품감독관리국(SFDA)에서 자체 실시한 품질조사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당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 대형 마트에서는 일제히 레드불 음료에 대한 판매 중단과 수거 조치가 내려졌다. 레드불 음료에 표기된 함유 성분이 실제와 달랐던 데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사태가 확산되면서 화빈그룹 측에서 제품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소동을 거친 끝에야 파문을 일단락시킬 수 있었다.

    옌 회장 자신도 자주 라운딩하는 화빈골프클럽은 2000년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골프장이 아니라 직원들의 연수원을 짓기 위한 용지를 알아보다가 기가 막힌 땅을 찾아냈다. 베이징 창핑구에 있는 화빈골프장의 전체 용지는 무려 120만평에 달한다.

    잭 니클로스가 설계한 골프 코스 이외에 국제회의장과 승마장, 고급숙박 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는 종합 회원제 클럽으로 운영된다.

    2005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옌빈 회장
    2005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한 옌빈 회장
    아시아 외환위기때 역발상 투자로 부 늘려 그는 자신이 골프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 사회인들은 스트레스가 많고 생활 리듬이 빠르다. 많은 사람들이 실내 운동을 즐기는 경향이 강하지만 나는 실외운동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골프장에서는 잔디와 햇빛, 맑은 공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를 즐기려면 마음이 편안하고 태도가 온화해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홀을 조준하는 집중력과 긴 시간 동안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끈기도 필요하다. 자주 골프를 치면 신체를 단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지와 성격까지 연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골프 예찬론자인 셈이다.

    그는 중국의 골프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LPGA를 화빈골프클럽으로 유치하면서 대회를 후원했다. 그는 LPGA 대회를 유치한 것에 대해 “중국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는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사실이 그려져 있다. 현재 중국 국가대표 골프팀 주장은 지난해 화빈 LPGA 대회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한 펑산산이다.

    태국에서도 그를 성공하게 했던 부동산 사업은 중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다른 사람 모두가 구매를 말리던 베이징 소재 낡은 건물을 사들여 재건축한 뒤 베이징의 중심가인 창안제에 화빈국제빌딩을 지어 가치를 수십 배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이 건물은 현재 화빈그룹의 본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의 돈 버는 능력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가 있다.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해 헤지펀드 공격을 받은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했을 때였다. 다른 중국계 태국인들이 너도나도 재산을 정리해 중국으로 되돌아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옌 회장은 반대로 보유중이던 달러로 값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바트화를 사들였다. 외환위기로 흔들리고 있지만 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믿음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을 선택한 그는 이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대외활동도 매우 열심이다. 중국외국기업투자기업협회 부회장과 중화자선총회 명예회장, 태국 상원의장 경제고문 등을 맡고 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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