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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 뉴 리더 6인 “새판짜기 그림 나왔다”
입력 : 2013.08.09 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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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 리더십의 새 판이 짜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금융정책과 감독을 주도할 금융당국 사령탑은 새로운 진용을 갖춘 지 100일을 넘겨 서서히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도 대거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돼 후속 인사에 한창이다.
저성장·저금리 장기화라는 복병을 만난 한국금융의 운명은 이들 ‘뉴 리더(New Leader)’들의 어깨에 달렸다. 이들이 우리금융 민영화를 비롯한 금융권 새판짜기, 정책금융 개편, 고령화에 대비한 금융, 해외진출, 수익성 개선 등 굵직한 당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10년간 금융산업 부가가치 10%로 UP신제윤 금융위원장
신 위원장은 그 길로 박 대통령 공약 이행 속도전에 돌입했다.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켰으며 창조경제를 뒷받침할 성장사다리펀드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4대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정책금융체계 개편, 지배구조 선진화, 감독체계 개선, 우리금융 민영화가 그것이다. 3개 TF가 마무리됐고 현재 정책금융체계 개편 TF만 막바지 조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주가조작 근절 종합대책도 내놓았고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에 이어 금융전산 보안 강화 대책도 곧 나온다.
좌고우면하는 법 없이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스타일에 박 대통령의 신임까지 더해지면서 신 위원장의 일처리는 거침이 없었다.
표현도 직설적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고 우리금융 민영화는 “직을 걸고 하겠다”고 했다.
과감한 결단과 직선적인 일처리 탓에 ‘관치금융’ 오명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일을 하다 넘어질지언정 결코 보신을 위해 복지부동할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금융 분야 공직자들을 ‘변양호 신드롬’에서 구제할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다.
신 위원장은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올해 말부터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본연의 업무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로 내세운 것이 향후 10년간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를 10%로 끌어올리겠다는 이른바 ‘10-10(텐-텐)’ 전략이다. 신 위원장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이 역시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 위원장의 이 같은 일처리 방식은 그의 커리어에서도 읽을 수 있다.
58년생으로 휘문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 경제협력국, 국제금융국,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심의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금융위 부위원장 등 직선대로를 달려왔다. 대인관계도 좋아서 재경부 노조가 선정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과 통화스왑을 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 개최에도 기여했다.
다만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는 그의 과제로 꼽힌다.
이헌재 초대 금감위원장이 금융시장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최근의 난제를 풀려면 시장에 대한 이해가 선결돼야 한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이다.
한편 든든한 가족은 그의 일을 돕는 우군이다. 큰 딸 신아영 SBS ESPN 아나운서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어와 독일어 등 완벽한 외국어 능력으로 주목받는 스타 아나운서다. 부인 이진주 씨는 한국무용 전도사로 나서 최근 <아주 작은 변화>라는 포토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금감원 새 코드 ‘서민과 중소기업’최수현 금융감독원장
최 원장의 첫 외부 방문지는 창원 산업단지였다. 중소기업을 직접 만나 애로사항을 듣겠다는 의도였다. 대부업체 행사에 금감원장이 참석하기는 최 원장이 처음이었다. 서민 금융소비자와 밀접한 대부업체에 과도한 추심 자제를 당부했다. 지난 6월 25일에는 신용카드 CEO들을 만나 소비자 보호를 호소했다.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분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현재 관련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최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을 외부에서 발탁하고 위상을 격상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소비자 보호 조직도 과감하게 늘렸다.
소비자가 금감원에 금융회사 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국민검사청구제는 그의 아이디어다. 취임 후 첫 일성이 금융권 민원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소비자단체와 공동으로 금융회사 검사를 나가기도 했다.
타고난 성실함은 최 원장이 가진 최고의 무기다.
새벽 해뜨기 전에 출근하며 저녁을 집에서 먹는 법이 없다. 일요일에도 늘 사무실로 출근한다. 취임 3개월 만에 10차례의 간담회를 치렀고 240개의 발표 자료를 내놓았다. 하루에 서너 차례 회의는 기본이고 외부일정도 2~3개씩 소화한다. 위기도 없지 않다. 최근 들어 BS금융지주 회장 사퇴를 둘러싸고 금감원의 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금융회사의 왜곡된 경영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철학이지만 방법이 매끄럽지 못했다. 지금은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독립과 금융위원회와의 사이에 제재권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해 ‘감독과 제재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칫 금융위와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들 문제만 잘 극복한다면 최 원장의 금감원은 앞으로 탄탄대로만 남았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다양한 경험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 원장의 인맥은 향후 금감원 운영에 탁월한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옛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 등에서 금융정책을 수립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도 근무했고 옛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지냈으며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3년의 경험을 쌓았다. 누가 보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금융계 마당발이자 전문가다.
최 원장은 충남 예산 출신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사범대 생물교육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행시 25회로 옛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했으며 신제윤 금융위원장과는 행시 1년 후배로 사무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외형 확장보다 내실 챙긴다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사장 시절 모든 직원들의 생일에 자필로 쓴 편지와 책을 선물했다. “민간 금융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보다 더 오래 일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선물을 받은 어느 부장은 “가족들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축하를 사장님께 받았다”며 고마워했고 한 여직원은 “올해도 어김없이 책을 선물로 주셨네요. 감사합니다”라는 답장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6월 초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으나 노조의 반대로 열흘이 넘도록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겉으로는 매번 출근을 시도하면서 원칙을 지켰고 물밑으로는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출근 저지 투쟁을 해산시켰다.
앞으로는 저수익 저금리라는 어려운 은행 경영환경을 맞아 부실을 정리하고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매진할 생각이다. 외형 확장을 위해 시도했던 사업들은 당분간 정리하고 다가올 어려움에 대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다. 과거에 시도했던 해외진출 사업을 중단하고 실속 없는 이벤트성 사업들도 점검할 예정이다.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원천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행정고시를 패스했고 재무부에서 일하다 재정경제부 차관까지 한 경력만 놓고 보면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하다. 그러나 그의 기억에는 아픔이 더 많다. 선생님을 하던 아버지가 광산사업에 실패해 서울 봉천동 달동네로 옮겨와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며 고학을 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고도 서울대 법대와 상대 출신들에게 밀려 ‘만년 국장’ 소리를 듣다가 결국엔 재경부 제2차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민영화· 경영효율·조직혁신 세 토끼몰이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1977년 상업은행 을지로지점 때 일이다. 이순우 행원 등을 보고 일하던 양택기 대리(68, 상업은행 방배동지점장 등 역임 후 퇴임)는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 양 전 지점장은 “참 착한 사람인데 주위를 맴도는 모습을 보고, 남들은 부러워하는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나가라”고 직언했다. 그는 “욕도 하고 살아라.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라. 많이 웃어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소중한 선배”라고 말했다.
입바른 소리를 할 때는 과감하게 ‘돌직구’를 날린다. 1992년 과장 시절에 당시 김추규 상업은행장이 실적을 보고 듣기 좋은 소리만 늘어놓자 그 자리에서 정색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고 쓴소리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용기를 높이 산 김 행장은 그를 비서실 등 요직에 기용했다.
이순우 회장은 은행장을 겸직하며 우리금융 민영화를 이끌어 나갈 중책을 맡았다. 이 회장은 민영화뿐 아니라 경영효율화, 조직혁신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이 회장은 과감하게 지주사를 슬림화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화려한 집무실도 포기했고 초대형 세단도 반납했다. 이 회장은 “스테이플러 한 알이라도 아끼는 모습을 보여야 조직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주사 인원도 30% 이상 축소해 힘을 뺐다.
이 회장은 “지주사는 최대한 몸을 낮춰야 한다. 지주사부터 변해야 조직이 변한다. 왜 쓸데없이 많은 임원들이 지주사에 앉아서 월급만 받아가느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른 금융지주가 나의 이런 행동을 불편해 할지 모르겠지만 변해야 한다”며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나같이 밑바닥에서 시작한 은행원들에게 희망이 사라진다. 모범적인 지주사의 모델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시나리오별 리스크관리, 위기 대응력 높여라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
올해 3월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을 마지막으로 33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임종룡 회장은 산은, KB금융지주 등 다른 금융기관장 자리를 마다하고 6월 농협금융지주 행을 택했다. 출범 갓 1년을 넘긴 농협금융은 전산 사고, 실적 부진 등 대외적인 부침에다 2대 신동규 회장이 중앙회와의 갈등을 문제 삼고 전격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앞날이 캄캄한 상황이었다. 임 회장은 이 같은 농협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회장직 추천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농협금융은 다른 지주와 달리 수익성뿐 아니라 농업 발전이라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공직 생활에서 배운 철학과 노하우가 각별하게 쓰일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임종룡 회장은 기획재정부에서 과거 재무부와 경제기획원(EPB)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기획·예산 등 거시경제와 금융·세제 등 미시경제를 두루 섭렵해 기재부를 대표하는 금융·기획통으로 꼽힌다.
임 회장은 은행 제도과장 시절부터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승승장구했다. 시작부터 남들보다 빨랐다. 아버지 뜻에 따라 일찍이 공직에 꿈을 품은 임 회장은 대학교 3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바로 재무부 생활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 금융기업 구조개혁반장으로 일하며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으며 ‘위기 해결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재경부 시절부터 매년 직원들이 뽑는 ‘닮고 싶은 상사’에도 여러 번 이름을 올렸다. 2010년 ‘기수 파괴’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재부 1차관에 승진했다. 그는 현재 금융지주회장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다.
‘튼튼한 농협 금융’은 임종룡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소명이자 사명이 됐다. 그는 80년대 후반 재무부 사무관 시절부터 경제 위기에 닥쳐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임 회장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사전 대비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안다”며 “지금 농협금융도 외형적인 성장보다는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고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게 농협은 마지막 직장이 아니다”며 “농협 이후의 거취를 생각해서라도 지금 여기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며 결연하게 말했다.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지역과 함께하는 은행’ 다시 새롭게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중국 청나라를 이끌었던 강희제의 좌우명이기도 한 이 사자성어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춰, 온 힘을 다한다’는 뜻으로 은행과 직원들을 위해 소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1979년 부산은행에 입행한 성세환 회장은 “단 한 번도 은행장이나 회장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일을 즐기며 주어진 자리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보니 길목 길목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봐주는 선배를 만났다. 자연스레 임원이 되고 행장,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은행원에게 필요한 기본 덕목은 경제·금융관련 지식이 아니라 고객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과 서비스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신뢰와 성실도 기본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성실하지 못하면 조직에서 인정받기 어렵고, 성실한 자세로 신임을 얻게 된 사람에게는 보다 큰 역할과 업무가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부산 시민·기업과 30년이 넘게 동고동락한 그는 부산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부산시민 중 83%인 300만명이 부산은행 고객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성세환 회장은 “부산에서만큼은 부산은행이 삼성전자보다 더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회사”라며 “지역에서 창출된 경제적 부가가치가 다시 지역경제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지역공헌에도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은행은 기업 대출금의 90%를 지역 중소기업에 대출했으며, 당기순이익의 9%를 지역사회 사회공헌에 쓸 정도로 ‘지역과 함께하는 은행’의 길을 걷고 있다.
성 회장은 “지역 기업들의 내력과 경영능력을 잘 알기 때문에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을 외면하지 않고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지주사 설립 등을 주도하며 오늘의 부산은행을 만든 일등 공신인 성 회장 앞에는 이제 ‘경남은행 인수’라는 과업이 놓여 있다.
[이은아·이진명·박용범·배미정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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