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싱 머신을 가로막는 것들

    입력 : 2013.08.09 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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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스포츠 산업은 그야말로 급성장 중이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국제대회만 5개에 달할 정도다. 여기에 (사)한국자동차경주협회에 따르면 올해 모터스포츠 예상 관람객은 무려 40만명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프로야구, 축구, 농구에 이어 배구(연간 35만여명)와 비슷한 규모의 스포츠로 발전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터스포츠 산업의 발전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더딘 편이다. 전국 곳곳이 고속도로로 연결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서킷을 찾을 수 있지만 정작 경기가 열리는 날의 관중석은 허탈할 정도로 비어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CJ슈퍼레이스를 주관하고 있는 CJ그룹 스포츠마케팅팀의 김동빈 팀장과 KSF를 주관하는 이노션의 서원 팀장과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봤다.

    불필요한 법령과 열악한 환경 서원 이노션 스포츠팀장은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의 발전이 더딘 가장 큰 원인으로 ‘불필요한 법령’과 ‘열악한 환경’을 지목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순정상태 중심으로 시장이 조성돼 있어 성능향상, 외관개조 등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의 희망사항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면서 “모터스포츠 산업은 튜닝시장의 발전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를 법률로 규제하고 있어 산업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튜닝 기술력은 유럽과 미국, 일본 등 모터스포츠 선진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시장보다 뒤떨어져 있다. 법률로 자동차 튜닝을 가로막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기술력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국내 튜닝 제품들이 동남아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튜닝을 금지한 법률이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뿐 아니다. 서원 팀장은 열악한 인프라도 모터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법률에 따라 차량을 튜닝해도 정작 달릴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일반인 모터스포츠 마니아가 주행을 할 수 있는 곳은 전남 영암의 F1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과 강원도 태백의 레이싱파크가 유일하다. 용인의 스피드웨이는 현재 문을 닫은 상태고, 근래 개장한 인제 스피디움은 일반인들을 위한 ‘스포츠 주행권’에 대한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이 밀집한 서울 및 수도권 내에 서킷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앞서 밝힌 일반인 주행이 가능한 서킷 중 영암 F1 서킷은 왕복 8시간, 태백 레이싱파크는 왕복 6시간이 걸린다. 당일 코스로는 가기 어려운 셈이다.

    법률이 정하는 선에서 어렵사리 튜닝을 한다 해도 정작 마음 편히 달릴 곳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서원 팀장은 “모터스포츠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모터스포츠 산업의 활성화의 지름길인데, 체험할 수 있는 곳들이 마땅치 않으니 모터스포츠 산업 육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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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메이커들의 무관심 CJ슈퍼레이스의 김동빈 팀장은 모터스포츠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국내 자동차 메이커’를 지목했다.

    그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로 인해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터스포츠 산업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모터스포츠대회를 자동차 기업이 아닌 생활문화 기업인 CJ그룹과 지자체들, 그리고 타이어 회사들이 후원하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가 약 80%에 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경쟁 메이커들의 마케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별하게 기술개발을 하거나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아도 시장 구조가 굳어버린 상황에서 굳이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 업체들 역시 모터스포츠 산업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GM의 경우 쉐보레 레이싱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르노삼성과 쌍용차는 아예 모터스포츠대회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타이어 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타이어 업체로 성장한 금호타이어와 한국타이어는 국내 모터스포츠대회에 오피셜(타이어 공급 업체)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정작 해외 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후발업체인 넥센타이어가 ‘스피드 챌린저’를 주관하며 모터스포츠 산업을 주도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동빈 팀장은 “모터스포츠 산업의 주체가 돼야 할 기업들이 해외로만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이 발전하기는 요원하다”면서 “모터스포츠 산업을 즐길 수 있는 수도권 내의 서킷 확충과 함께 자동차 메이커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MW그룹이 영종도에 드라이빙센터를 짓는 속사정 지난 6월 7일 BMW그룹코리아(이하 BMW)가 인천시 영종도에서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 미국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BMW그룹 드라이빙센터’의 착공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생산기지 없는 드라이빙센터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점(독일과 미국의 경우 드라이빙센터 인근에 BMW 생산공장이 자리해 있음)에서 주목을 받았다.

    축구장 33개가 들어갈 수 있는 24만㎡의 부지에 총 7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이번 프로젝트의 백미는 2.6km로 건설되는 트랙에 있다. 급가속과 제동력, 핸들링, 다이내믹, 서클, 멀티, 오프로드 등 6가지 코스로 구성되며, BMW 고객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들도 사전 예약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BMW가 본사를 설득해 드라이빙센터를 유치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하는 모습이다. 수입차 업계 1위의 BMW가 생산기지조차 없는 국내에 700억원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 드라이빙센터를 짓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BMW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금 당장 드라이빙센터가 판매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BMW를 경험한 분들은 앞으로 우리 고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 우리의 슬로건인 ‘Joy(재미)’와 ‘Efficient Dynamics(효율적인 역동성)’을 드라이빙센터를 통해 알릴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BMW 드라이빙센터의 착공 소식이 알려진 뒤 자동차 마니아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BMW의 결단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한 중소 자동차부품 업체 대표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마다했던 일을 수입차 업체인 BMW가 해냈다”면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BMW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 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BMW. 그 과감한 결정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는 이미 자동차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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