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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엘 에리언 핌코 CEO…미국경제 위기 넘겼지만 자생력 잃고 있다
입력 : 2013.06.07 14: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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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뉴노멀 당분간 계속된다 지난 4월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켄글로벌컨퍼런스 현장에서 만난 엘 에리언 CEO는 글로벌 경제가 리세션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당분간 저성장·고실업을 의미하는 뉴노멀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봤다. 공격적인 양적완화 조치 등 인위적인 부양책만으로는 미국 경제가 진짜 성장(Genuine Growth)세에 들어설 수 있을 만큼의 탈출속도(Escape Velocity)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엘 에리언 CEO는 미국 경제가 올해는 물론 앞으로 3~5년간 3~4% 잠재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2%대 저성장에 그치고 고실업률도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엘 에리언 CEO는 연준 양적완화 조치가 효과를 발휘해 미국 경제가 진짜 성장을 할 수 있는 확률을 50대 50으로 봤다.
엘 에리언 CEO는 미국 경제가 연준이 지지하는 인위적 성장(Artificial Growth)에서 벗어나 진짜 성장을 하려면 미국 정치권이 즉각적인 재정긴축(시퀘스터·정부예산자동삭감)보다는 중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합의에 나서는 등 의회가 경제성장의 맞바람이 아닌 뒷바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럽의 경우 재정위기가 유로존 주변국에서 독일·프랑스 등 유럽 핵심국으로 확산되는 점이 염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기업, 은행들이 살아남아 근근이 버티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유럽이 좀비경제(Zombification)화 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놨다.
중국 등 신흥개도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선진국보다는 낫지만 중요한 내부적 전환 과정을 겪으면서 과거보다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공격적인 양적완화로 반짝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 회복 지속여부도 불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 회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저성장·고실업률로 특징지을 수 있는 뉴노멀이 당분간 글로벌 경제를 지배할 것이라는 게 엘 에리언 CEO의 진단이다.
주가 펀더멘털에 비해 과도하게 올랐다 연준 양적완화로 대거 풀린 시장유동성이 기업투자 확대 등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주식 등 위험자산으로 집중되는 자산배분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과도한 위험추구 현상으로 위험자산 가격이 펀더멘털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는 등 시장에서 가격신호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엘 에리언 CEO는 주장했다.
자산거품에 따른 시장붕괴 가능성도 경고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듯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파도(Wave)를 타고 있지만 대다수 자산가격이 펀드멘털과 단절된 상태”라며 “투자자들이 양적완화라는 유동성 파도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보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동성 파도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과도한 위험감수가 정당한지에 대해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엘 에리언 CEO는 “핌코 포트폴리오 내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펀드 매니저들에게도 보다 방어적인 투자전략을 짜라고 주문한 상태다. 위험 자산가격이 펀더멘털보다 한참 위에 위치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연일 사상최고치를 넘어서고 있는 미국 증시도 과열된 상태지만 유럽의 경우, 펀더멘털과 자산가격 괴리가 훨씬 심각하다는 게 엘 에리언 CEO의 판단이다.
스페인 실업률이 27%, 청년실업률은 57%에 달하는 데도 국채가격은 오름세(국채금리는 하락)를 보이고 있다. 스페인 실물경제도 좋지 않고 실업률도 높지만 ‘할수 있는 건 다하겠다’는 유럽중앙은행(ECB)을 더 믿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과도한 위험감수 행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엘 에리언 CEO는 “실물경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서지 않은 상태에서 (연준 양적완화로 풀린 유동성 때문에) 자산가격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며 “(시장에서 기대하는) 성장률이 현실이 되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그간 거둔 수익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Collateral Damage)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일본 양적완화는 근린궁핍화 정책 엘 에리언 CEO는 일본 양적완화로 인해 다른 나라들도 잇달아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는 과정에서 통화가치 절하경쟁이 연출될 수 있다고 봤다.
일본 양적완화 조치를 20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부적인 경기부양 전략으로 볼 수는 있지만 양적완화 과정에서 엔화가치가 급락하고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일본기업들이 어부지리로 시장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진단했다. 수출시장 파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일본기업들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결국 다른 나라 시장점유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제로섬게임하에서 수출의존적인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 양적완화에 불만을 표시하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15~120엔까지 떨어지면 직접적인 경쟁자인 한국, 중국, 독일 등이 직접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게 엘 에리언 CEO의 경고다.
[로스앤젤레스 =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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