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이사…이젠 아이리버에 꿈이 생겼다

    입력 : 2013.06.07 14: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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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한 셔츠에 베이지색 치노팬츠가 썩 잘 어울렸다. 정장차림에 근엄함을 떠올렸던 여물지 못한 선입견은 만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꼬리를 감췄다. 본인은 IT기업의 특성이라 에둘렀지만 캐주얼한 분위기는 이미 쓰러져가던 기업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박일환 아이리버 대표는 “어려운 형편은 여전하지만 이젠 우리에게 꿈이 생겼다”며 “올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먹고살기 위해 고민 또 고민 최근 박 대표는 여러 언론에 등장하며 인기 인터뷰이가 됐다. ‘집념’ ‘회생’ ‘부활’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은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아이리버의 영업이익(11억7000만원)에 집중했다. 그만큼 스토리가 드라마틱했다.

    돌아보면 세계 최고였던 때가 있었다. 2005년 아이리버의 전신이던 레인콤의 티저광고에는 그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신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성모델이 사과를 베어 무는 게 전부였던 광고는 누가 봐도 선전포고였다. 애플을 누르고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가 넘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늘 위를 날던 자신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최고 품질의 MP3플레이어와 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를 무기로 전장에 나섰지만 아이폰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장해제, 당연히 경영 실적은 바닥을 쳤다.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잘못 판단했지요. 우리가 잘하던 게 MP3플레이어, 전자사전, PMP였는데, 어느 날 이 세 가지를 앞지른 기기가 생겼어요. 스마트폰이죠. 처음 소개됐을 때만 해도 시장이 커지긴 하겠지만 이렇게 빨리 커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TV가 100년, PC가 20년, 무선전화가 10년이었거든요. 스마트폰은 단 5년 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세 가지 제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턴어라운드 할 수가 없더군요. 시장이 줄어드는 속도가 엄청났습니다.”

    그랬다. 실제로 아이리버가 잘했던 분야는 시장 규모가 꾸준히 감소했고 업계에선 사양산업이란 말이 돌았다. 일례로 2010년 전체 전자제품군 중 35.47%를 차지하던 전자사전은 2012년 15.39%로 감소했다.

    2008년 481억원이었던 아이리버의 전자사전 매출액은 5년 후인 2012년에 98억원까지 떨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매출은 하염없이 사그라졌다. 당시 삼보컴퓨터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기술연구소 소장(사장)이던 박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한 건 2011년 9월. 그는 부임하자마자 지인과 직원들에게 묻고 또 물었다. 만나는 이들은 달랐지만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회사가 살 수 있을까요?”

    고민을 거듭하던 박 대표는 뮤직 플레이어에 탁월한 기술을 지닌 아이리버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스마트폰과의 차별화된 무엇을 찾았다. “스마트폰은 음악을 편하게 들려주지만 음질은 떨어진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그때 마침 TV에서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인기더군요. 왜 TV에 비친 관객들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릴까 의아했지요. 알아보니 현장에 있는 관객은 아날로그 음을 듣는 것이고, TV는 풀HD여도 MP3 음질이었어요. 차이가 확연했지요.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플레이어를 만들자, 티어드롭(Tear Drop)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011년 하반기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실을 맺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국내 최초로 스튜디오 마스터링 품질의 음원(MQS·Mastering Quality Sound: 앨범 마스터링 시 무손실 음원 파일 포맷. 리코딩 당시의 사운드를 거의 그대로 담아낸 음악 파일이다)을 재생할 수 있는 휴대용 플레이어 ‘아스텔앤컨(Astell&Kern)’이다. 동영상이나 인터넷 검색 기능이 전무한, 오로지 음악만 재생되는 이 기기의 가격은 약 70만원. 하지만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비자의 반응은 새로운 시장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리버 비전의 새로운 축은 아스텔앤컨입니다. 전에 없던, 우리가 최초로 만드는 시장이죠. 지금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우리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규모가 달라질 겁니다. MP3가 CD를 제압했던 것처럼 MQS가 MP3를 제압하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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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잘하던 것에 승부를 건다 박 대표는 아스텔앤컨과 함께 패드비즈니스와 액세서리비즈니스를 아이리버의 성장동력으로 꼽았다. 이미 잘하고 있는 분야에 주력하겠다는 게 박 대표의 목표이자 승부수다.

    “태블릿, 전자책, 스마트폰은 기술적으로 보면 같아요. CPU와 플래시 메모리를 쓰고 안드로이드 OS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린 패드비즈니스라 분류했는데,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또 하나의 성장동력은 디자인 액세서리죠.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액세서리 시장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어폰, 스피커폰 등 다양한데 아이리버의 강점 중 하나가 디자인이거든요. 지난 CES에 소개한 제품 중 하나가 ‘아이리버 온’인데, 무선 이어폰 안의 바이오센서로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하던 분야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물론 이러한 승부수에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업계 일각에선 사업방향이 분산돼 오히려 주력분야가 없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 오가기도 한다.

    “전혀 다른 방향이 아니죠. 사실 아스텔앤컨에서 파생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스텔앤컨에서 오디오블록을 빼고 스크린으로 바꾸면 스마트폰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이 다르지 않거든요. 우린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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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아이리버 온, (오른쪽) 아이리버가 공개한 아스 텔앤컨(Astell & Kern) 의 두 번째 MQS 플레이 어 ‘AK120’
    (왼쪽)아이리버 온, (오른쪽) 아이리버가 공개한 아스 텔앤컨(Astell & Kern) 의 두 번째 MQS 플레이 어 ‘AK120’
    성장의 조건은 단 하나, 믿음이 필요하다

    지난 4월 초 4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한 아이리버가 새롭게 시도하는 사업분야도 아스텔앤컨과 궤를 같이한다. MQS 파일을 재생하는 아스텔앤컨에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MP3 외에 MQS 음원을 공급하는 회사가 전무한 국내 시장에 유일한 음원사업자다.

    “아스텔앤컨으로 CD나 MP3 파일을 재생할 순 있지만 완전한 음질을 경험할 순 없습니다. 음원이 필요하죠. 이미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선 MQS 서비스 회사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아이리버 콘텐츠 컴퍼니’를 설립하고 ‘그루버스(www.groovers.kr)’를 통해 음원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리버가 꿈꾸는 10년, 20년 후의 아이리버는 어떤 모습일까. 슬쩍 던진 우문(愚問)에 박 대표의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10년 후라, 사실 그 정도로 여유가 있는 건 아니고.(웃음) 아이리버에 오고서 이 세상엔 두 가지 회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디자인 컴퍼니, 또 하나는 디바이스 컴퍼니인데 이노베이션이 전제가 된 디자인은 전에 할 수 없던 일을 가능케 합니다.

    혁신적인 이노베이션을 하거나 파괴적인 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회사. 아이리버는 CD와 MP3가 동시에 구동되는 플레이어를 최초로 만들었어요. 태생적으로 잘할 수밖에 없는 DNA를 가졌습니다.

    성장하려면 우선 믿어야죠. 이 제품이 만들어지면 살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 그간 우왕좌왕하던 아이리버는 이제 방향을 확실히 잡았습니다. 이젠 꿈꿀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으니 실현해내야죠.”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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