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종열 기자의 혼맥지도]⑮ LG그룹 구인회家 ① “모든 혼맥은 LG가로 통한다”

    입력 : 2013.06.07 14:36:32

  • 지난해 4월 24일 구자경 LG 명예회장(아랫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88번째 생일)연을 맞아 구본무 LG 회장(아랫줄 맨 왼쪽), 구본능 희성 회장(윗줄 왼쪽 네 번째), 구본준 LG전자 회장(윗줄 왼쪽 두 번째) 등 자녀들이 참석했다.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차장(윗줄 왼쪽 세 번째)도 함께 했다.
    지난해 4월 24일 구자경 LG 명예회장(아랫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88번째 생일)연을 맞아 구본무 LG 회장(아랫줄 맨 왼쪽), 구본능 희성 회장(윗줄 왼쪽 네 번째), 구본준 LG전자 회장(윗줄 왼쪽 두 번째) 등 자녀들이 참석했다. 구본무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차장(윗줄 왼쪽 세 번째)도 함께 했다.
    ‘All Roads Lead To Rome(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라 퐁텐의 소설 <우화>에 등장한 이 말은 유럽의 모든 길이 로마를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어떤 길에서 걸어도 로마를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재계에서 회자된다. “모든 혼맥은 범(凡)LG가로 통한다”라는 것. 이처럼 재계서열 4위의 LG그룹은 혼맥을 통해 정·재계는 물론 학계에까지 다양한 사돈들을 두고 있다. 여기에 방계그룹인 LIG금융그룹과 LS그룹, 사돈 간인 GS그룹의 혼맥까지 더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LG그룹의 혼맥이 이처럼 방대하고 다양한 데는 이유가 있다. 故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많은 가족들이 그룹 경영에 참여하며 다양한 혼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특히 6형제의 장남인 구인회 회장이 자녀들은 물론, 조카들의 혼사에까지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자손이 많은 LG그룹의 특징 역시 방대한 혼맥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 재계 혼맥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범(凡)LG가문을 살펴봤다.

    손(孫)이 많은 진주의 명문가 구인회 창업회장이 일으킨 LG그룹이 오늘날 재계 혼맥의 총본산으로 불리게 된 데는 다른 재벌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두 가지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오랜 역사다. 긴 시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당시의 유력가문들과 다양한 혼사를 맺었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포목점이던 ‘구인회 상점’을 통해 오늘날의 범LG가를 일궈냈다. 명망 높은 유교 집안의 장손으로 사업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구 창업회장은 포목점을 통해 사업을 번창시키며 당대의 재력가와 명문가를 찾아 자녀들과 조카들을 결혼시켰다.

    두 번째 요인은 자녀가 많다는 점이다. 자녀가 많다는 것은 혼사 역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6형제(여자형제들도 있었으나 어릴 적 사망) 중 장남이었던 구인회 창업회장은 부인인 故 허을수 여사와의 사이에서 6남 4녀를 둘 정도로 자손이 많았다.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 역시 4남 2녀의 자녀를 뒀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많은 자손들을 결혼시키면서 LG그룹은 국내 굴지의 재벌가들과 다양하게 사돈관계를 형성했다. 삼성그룹을 포함해 현대, 효성, SK, 벽산, 대림산업, 두산, 한진에 이르기까지 국내 유력 재벌가들과 직접 혹은 한 다리 건너 사돈을 맺고 있다. 반면 정계나 관가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 故 구두회 예스코 (전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과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등이 정계 혹은 관가와 직접 사돈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방대한 범LG가의 혼맥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LG그룹의 성장사와 함께 구인회 회장의 직계자녀들의 혼사와 형제들의 혼사를 구분해 짚어나가야 한다. 자손들이 많기도 하지만 현재는 계열분리가 완료돼 LG그룹에서부터 분리된 가문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LG그룹의 역사를 살펴보자. 재계서열 4위 LG그룹은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에서 시작하지만, 그 기원은 이보다 앞선 1931년이다. 당시 구인회 창업회장이 경남 진주시에서 ‘구인회 상점’을 세웠기 때문이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포목점에서 번 돈을 종잣돈으로 40년대 후반 락희화학을 세우며, 오늘날 4대 그룹 중 하나인 LG그룹을 일궈냈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일궈낸 LG그룹은 1995년 손자인 구본무 현 회장이 취임한 뒤, 1999년부터 계열분리에 나서 현재는 4개 주요그룹으로 분리됐다. 직계인 구본무 회장이 전자와 화학으로 구성된 LG그룹을 이끌고 있고, 유통과 에너지 및 건설 부문은 사돈이자 동업자였던 허씨 일가가 맡아 GS그룹을 설립하며 분가했다.

    이에 앞서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 동생이었던 故 구철회 LG화재 명예회장의 일가들은 LG화재를 갖고 독립해 현재는 LIG금융그룹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또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태회, 평회, 두회 씨의 가족들은 LG전선을 갖고 분가해 오늘날의 LS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구인회 창업회장이 세운 LG그룹은 현재 GS, LIG, LS그룹을 포함해 4개의 대기업집단으로 나눠진 상태다. 그럼에도 LG그룹은 여전히 재계서열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0남매의 화려하고 방대한 혼맥 구인회 창업회장은 1907년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이곳에서 구인회 창업회장은 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공부했으며, 효성그룹의 창업주인 故 조홍제 회장과도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중앙고보 2년을 마친 20세의 구인회 창업회장은 귀향을 결심했다. 고향에서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포목점인 ‘구인회 상점’이다.

    이에 앞서 구인회 창업회장은 14세의 나이에 결혼했다. 경남 진주의 대지주로 같은 동네에 살았던 故 허만식 씨의 장녀 을수 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당시 신부의 나이는 신랑보다 두 살 많은 16세였다. 이 결혼을 통해 LG그룹은 ‘허씨’라는 사돈이자 동업자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슬하에 모두 6남 4녀를 뒀다. 장녀인 故 구자숙 씨는 15세에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 씨의 아들인 박진동 씨에게 시집갔다. 박진동 씨는 그러나 해방 후 좌우익 투쟁으로 일어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1942년 대주지 가문인 하순봉 씨의 장녀 정임 씨와 결혼했다.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은 17세로 진주공립중 4학년의 학생이었다.

    ※ 33호에서 계속...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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