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ster]제 바둑 스타일이요? 조조랑 비슷하죠…반상의 제왕 이세돌

    입력 : 2013.04.08 15: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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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전 세계 바둑 팬의 이목은 대한민국의 이세돌 9단과 중국의 구리 9단 사이에 자리한 반상에 쏠렸다. 피겨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선수의 관계에 종종 비유되기도 하는 이 둘은 세계 정상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다. 이 대결은 특히 세계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과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랭킹 1위들 간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일전이었다. 3연전의 첫 대국부터 심상치 않았다. 박빙의 난타전을 거둔 끝에 겨우 반집차로 승부가 갈렸다. 이세돌의 승리였다. 2차전에서는 구리의 반격이 거셌다. 90집 이상 차이의 만방으로 이세돌은 맥없이 물러섰다. 승부를 가른 마지막 세 번째 대국에서는 기세를 탄 구리의 우세가 드러났다. 대국이 종반으로 갈수록 승기가 기울어져 이세돌의 패색이 깊게 드리워졌다. 그러나 이세돌은 특유의 뒷심을 발휘해 격전지 곳곳에서 끈질기게 상대방을 물고 뜯었다. 결과는 1차전에 이어 다시 반 집차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드라마틱한 승부의 잔상은 바둑 팬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승부에 관한 후일담은 지속적으로 회자 됐고 우승 후 이세돌이 남긴 “우승은 한집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폭풍 같은 일전이 끝난 지 3개월쯤 지난 시점 그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정상에서 맞은 이립(而立) 새 목표 찾아 전진 올 1월 이세돌은 라이벌이자 동갑내기 절친이기도 한 구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승리의 쾌감은 마냥 달콤하겠지만 패배의 아픔은 더 클 터인데 결혼식에 참석해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패배 후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결혼식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나마 나았다고 하는데… 위로는 차마 못해줬어요. 결혼식에서 그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거든요.(웃음) ”

    이세돌은 라이벌인 구리의 이야기가 나오자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눈이 반짝거렸다. 부담스러울법한 구리와의 승부는 항상 즐겁다고 덧붙였다.

    “둘 다 틀에 얽매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대결을 하면서도 참 재미있어요. 그래도 부담스러울 때는 있죠. 32강이나 16에서 마주칠 때는 사실 피하고 싶어요. ‘4강이나 결승에서 마주치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죠.”

    2012년은 이세돌에게 의미가 깊은 해다. 구리와의 명승부를 치른 것은 물론 조훈현, 이창호, 서봉수, 유창혁, 서능욱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 이어 1000승 클럽에 가입한 기념비적인 해다.

    “프로 입단 후 18주년이 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갔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데뷔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제가 생각해도 승부욕이 많았죠. 우상이었던 이창호 사범님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향상심이나 목표의식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은 있어요.”

    그의 말에서 더 높은 계단을 밟을 수 없는 1인자의 고독이 느껴졌다.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바둑에서 그가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었다.

    “물론 우승의 숫자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솔직히 토너먼트 프로로서의 목표의식을 가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향후 바둑의 세계적인 보급을 새로운 목표로 삼아 계획을 구체화 하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 바둑을 보급하고자 하는 꿈이 있다고 밝힌 그는 최근 자신이 공동기획하고 개발자로도 나서 ‘go9dan.com’이라는 바둑 전문 사이트를 오픈했다. 영어권 바둑 보급에 초점을 맞춘 이 사이트는 해외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법인을 홍콩에 세우고 서버는 미국에 뒀다. 단 그는 최근 언론지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기 은퇴설에 대해서는 바로잡았다.

    “미국에 진출해 바둑을 체스처럼 대중적인 스포츠로 키우고 세계시장에도 보급시키고자하는 계획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3년 안에 은퇴하고 떠나겠다는 부분은 오해가 있어요. 사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잖아요.(웃음) 확률은 반반이라고 보시면 돼요. 여건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준비도 더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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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방진 괴짜?’ 잘못된 편견일 뿐 대한민국 국민 중 바둑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이세돌 이름정도는 들어본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보수적인 바둑계에 젊은 1인자 이세돌은 항상 이슈의 중심에 섰다. 언론매체 속 그는 ‘괴짜’ ‘건방지고 당찬’ ‘돌연변이’ 등 특이한 ‘종’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틀에 박힌 수 보다는 창의적인 방식을 찾아 대국에 임하고 자신의 소신을 가감 없이 밝히는 모습은 ‘말없는’ 바둑계에서는 파격적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기자가 마주한 이세돌은 더없이 진중하고 속 깊은 오히려 보수적인 젊은이였다.

    “제가 말이 없는 편은 아니에요.(웃음) 바둑의 이미지나 다른 기사들이 워낙 과묵해 제가 좀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죠. 그러나 제가 예전에 했던 말들을 돌이켜 보면 표현은 투박하지만 큰 틀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어요. 괴짜나 특이하다는 수식은 저와는 사실 어울리지 않아요.”

    단 이세돌 프로의 삶을 되짚어보면 ‘요즘 젊은이’ 답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만 12세에 프로에 데뷔한 이세돌은 16세에 중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프로생활을 지속해온 그는 24세 이른 나이에 결혼해 현재 8살 된 딸을 둔 어엿한 가장이다.

    캐나다에 건너가 있는 아내와 딸 덕에 이세돌은 2년 전부터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이른 결혼이 프로생활에 도움이 됐는지 다소 뻔한 질문을 던져봤다.

    “항상 득이라고는 얘기하죠.(웃음) 장단점이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결과적으로 (성적이) 좋은 쪽으로 나왔죠.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이세돌을 아는 사람이면 대부분 그의 독특한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아이 같은 얇은 미성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늘어났지만 그 속에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 온 아픈 상처도 서려있다.

    “목소리는 사실 선천적인 것이 아니에요. 프로입단이후인 13~14세에 스트레스성 기관지염으로 실어증에 걸렸었죠. 다시 목소리를 찾았는데 정상적인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 거죠. 지금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20세가 될때까지는 조금 힘들었어요. 상처도 많이 받고 이야기도 잘 안했는데 지금이야 뭐(웃음).”

    기자가 만난 당일은 맥심커피배 결승3번기 중 첫 대국이 벌어진 날이었다. 공교롭게 이날 이세돌은 랭킹 2위 박정환에게 패했다.

    “워낙 (박정환 사범이) 잘 두니까 그럴 수 있죠(웃음). 예전에는 지고 나면 분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조금 벗어난 것 같아요. 나이가 차면서 스타일도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직진으로만 갔지만 이제는 다양한 길을 보게 됐죠. 사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너무 많은 길을 보면 괜히 실수만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웃음)”

    보통 바둑 프로기사들은 30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유지하고 이후 하향세를 그린다. 이제 30대에 들어선 그는 패기에 완숙미를 더해 대국 안팎에서 한층 여유로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바둑스타일을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에 비유해달라고 부탁했다.

    “제 바둑의 특징이라면 상대방이 정말 힘들어 하겠구나 하는 수를 많이 두는 편이죠. 굳이 비유한다면 제갈공명은 아닌 것 같고 조조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조조가 완벽한 영웅은 아니잖아요. 효웅(사납고 용맹스러운 영웅)정도되는 것 같아요”

    랭킹 1위 이세돌은 적지 않은 상금을 받는다. 작년과 재작년 모두 7억원이 넘는 상금을 가져갔다. 자금관리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상금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고 이곳에 투자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많이 오는데 뭐 그렇다고 제 성격이 남의 말을 잘 듣지만 휘둘리는 성격은 아니네요. 그렇다고 재테크에서 재미를 봤느냐 하면 아니에요. 마이너스라 할 말이 딱히 없네요.” (웃음)

    그는 바둑기사들에 대한 환상을 깨뜨릴 수 있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을 건넸다. 먼저 그는 프로들은 150수 200수 앞을 내다보는 ‘천리안’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과장됐다’고 실토(?)했다.

    “어려운 대국에서는 20~30수 앞도 내다보기 힘들죠. 특히 초읽기 싸움에서는 감각적으로 두는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수가 향후 어떤 형세로 가게 될지 예측은 되거든요. 아마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또한 긴 시간의 대국 중 잡념이 없냐는 질문에도 솔직한 답변을 들려줬다.

    “중요한 부분보다 주로 초반에 심하죠. ‘나오면서 가스를 잠그고 왔나?’ ‘오늘 끝나고 저녁 약속이 있었나?’ 소소한 거죠. 특히 쉬운 수에 상대방이 장고를 하고 있을 때 많이 하게 되죠. 물론 중요한 부분에 들어서면 잡념이 들 새가 없죠.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웃음)”

    ‘대마불사’ 이제 옛날 말이죠 인터뷰가 무르익자 그는 바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쏟아냈다. 먼저 그는 최근 프로들의 바둑 스타일이 정형적인 틀에 갇혀 버리는 것 같아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요새는 새로운 수가 나오면 분석을 통해 공유하는 성향이 강해졌습니다. 바둑은 엄연히 개인전인 만큼 기사별로 특유의 스타일을 찾아야 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요새는 많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또 수를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창의적인 수가 나와도 수명이 짧아졌어요. 안타까운 측면이 있죠.”

    그는 현재 바둑 교육시스템에 대해서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바둑 도장들이 장사에만 매달려 있고 학부모들이 사범을 믿지 못해 지나치게 닦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점차 바둑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부족해진 저변, 잘못된 교육시스템 등으로 그는 향후 한국 바둑이 퇴행의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했다.

    “일본의 경우 바둑에 대한 저변이 약해지면서 국제대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습니다. 한국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위기라고 볼 수 있죠. 개선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중국에 밀려 정상의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고 봅니다.”

    보다 많은 투자와 젊은이들의 관심을 촉구한 그에게 바둑의 진짜 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예전에 스타크래프트도 참 좋아했어요. 세 종족이 잘 어울리게 잘 만든 게임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둑은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게임이자 스포츠죠. 조금만 배우고 나면 훨씬 더 재미있고 수준 높은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바둑과 관련된 명언이 있는지 물었다.

    “대마불사는 근래 틀린 말이 됐죠. 많이 죽으니까.(웃음) 저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란 말을 항상 되새깁니다. 자신의 돌부터 강하게 해놓고 상대방을 잡으란 뜻인데 참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삶에서나 대국에서나 실상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확실히 ‘이세돌은 이세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질문이 와도 고민은 하되 피해감은 없었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바둑계에 애정 어린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 그에게서 조용한 바둑계에서 좀처럼 탄생하기 힘든 ‘영웅’의 풍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스포츠든 간에 대중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타가 필요하다. 이세돌의 조기 은퇴는 분명 국내 바둑계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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